신라면세점, 인천공항 떠난다…‘면세 셧다운’ 시계제로(종합)

경제

이데일리,

2025년 9월 18일, 오후 06:53

[이데일리 한전진 김지우 기자] 신라면세점이 인천국제공항에서 철수한다. 코로나19 이후 누적된 적자에 더해 여행 소비 트렌드 변화까지 겹치며 공항 면세점의 수익성이 크게 흔들려서다. 업계에서만 회자되던 ‘셧다운’이 마침내 현실이 됐다. 신세계면세점도 철수를 검토 중이다. 이번 철수를 계기로 앞으로 DF1 권역(화장품·향수·주류·담배)의 재입찰이 불가피해지면서 국내 면세 산업 전반의 판도 변화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 관광객이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신라면세점의 운영사 호텔신라(008770)는 18일 이사회를 열고 인천공항면세점 DF1 권역의 사업권을 자진 반납하기로 결정했다. 회사 측은 “과도한 적자가 예상돼 지속운영가치가 청산가치보다 낮다고 판단했다”며 “단기적으로 매출 감소는 불가피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재무구조 개선 효과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신라면세점은 인천공항공사에 납부했던 약 1900억원 규모의 임대보증금을 계약 조건에 따라 위약금으로 전환하고, 계약 해지를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향후 6개월간의 영업 유지 기간 역시 인천공항공사와의 협의를 거쳐 조율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번 결정은 법원의 강제조정안이 무효화 되면서 급물살을 탔다. 앞서 신라면세점은 지난 5월 인천공항공사를 상대로 임대료 인하를 요구하며 민사조정을 신청했고, 인천지방법원은 지난 5일 객당 임대료를 기존 8987원에서 25% 낮춘 6717원으로 조정하라는 강제조정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인천공항공사가 법원에 이의신청서를 제출하며 조정안은 효력을 잃었다.

결국 신라면세점은 본안 소송도, 영업 유지도 아닌 철수를 결정했다. 정식 재판으로 갈 경우 수십억원대 인지세를 선납하고 3~5년간 소송을 이어가야 하는데다, 해당 기간에도 매월 수십억원의 적자와 고정 임대료를 감당해야 한다. 반면, 중도 계약 해지 시 부담해야 할 위약금은 이미 납부한 보증금으로 충당된다. 때문에 손실이 커지기 전에 사업을 정리할 수 있다는 판단이 이번 철수 결정에 크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호텔신라 관계자는 “인천공항에서 영업을 지속하기에는 손실이 너무 큰 상황이었다”며 “재무구조 개선과 기업·주주가치 제고가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고심 끝에 철수를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면세 산업의 어려움이 계속되지만 수익성을 개선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인천공항공사도 후속 절차 대비에 나섰다. 공사 관계자는 “외부 환경 변화 등으로 면세업계의 장기 부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임대료 조정 문제를 원만히 풀지 못해 사업 철수라는 결과가 나온 점은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다만 계약상 사업자는 해지 통보 이후 6개월간 의무영업을 해야 하고, 공사도 해당 기간 후속 사업자를 조속히 선정해 공항 운영과 여객 불편이 없도록 만전을 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같은 권역에서 영업 중인 신세계면세점은 아직 입장을 정하지 못했다. 법원은 최근 인천공항공사에 신세계면세점 역시 기존 객당 임대료 9020원을 6568원으로 27% 인하하라는 강제조정 결정을 내렸다. 이 역시 공사의 이의신청으로 무효화됐다. 신세계면세점 관계자는 “철수를 포함한 다양한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신라와 신세계면세점가 모두 철수할 경우, 인천공항 면세점 DF1 권역의 입찰 지형도는 급격히 달라질 수 있다. 현재로선 중도 포기 패널티로 인해 양사 모두 재입찰 참여가 어렵고, 롯데면세점 역시 입찰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서다. 이에 따라 해외 사업자, 특히 중국 국영 면세업체 CDFG(차이나듀티프리그룹)가 다시 도전장을 낼 가능성이 제기된다. 실제로 CDFG는 2023년에도 입찰에 참여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셧다운이 단순한 기업 철수를 넘어 국내 면세 산업 전반의 경쟁 구도 재편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신라가 철수하면 해당 권역에 입점해 있던 글로벌 브랜드들도 공항에서 철수할 수 있고, 이는 국내 면세점의 글로벌 경쟁력을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며 “국내 면세 산업의 생태계를 위해서라도 국내 사업자들이 공항 내 입지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면세점과 공항공사 간 갈등을 법적 대립이 아닌, 구조적 해법을 모색하는 협의로 풀어가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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