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충격 대응 금리만으론 안돼…이창용 총재가 소개한 'K-통화정책'은

경제

이데일리,

2025년 9월 18일, 오후 10:50

[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K-콘텐츠’가 전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가운데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세계 무대에서 ‘K-통화정책’ 사례를 소개하며 이목을 끌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주최하는 연례 최고위급 행사인 ‘미셸 캉드쉬 중앙은행 강연’(캉드쉬 강연)에서다. 이 총재는 금융중개지원대출(금중대) 등 우리나라의 ‘통합정책체계(IPF)’ 사례를 들어, 단순히 금리 정책에만 의존하던 기존 통화정책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접근법의 실효성을 강조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사진= 공동취재단)


◇ 한은 총재 최초로 ‘캉드쉬 강연’ 나서…‘K-통화정책’ 알려

이 총재는 1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캉드쉬 강연에서 한국의 통화정책을 주제로 “한국은 지난 30여 년간 신흥국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면서 발전단계마다 IPF의 필요성과 효용성을 직접 경험한 특수한 사례”라고 말했다, IPF는 복합적인 경제 위기에 대응해 통화정책, 외환개입(FXI), 자본이동관리조치(CFM), 거시건전정책 및 재정정책을 통합적으로 운용해 대내외안정을 도모하는 정책조합 체계다.

전통적인 통화정책은 ‘정책 목표가 하나면 정책 수단도 하나면 충분하다’는 ‘틴버겐 법칙’에 따라 물가안정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 정책금리라는 하나의 수단만 사용해왔다. 그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환경이 근본적으로 바뀌면서 이런 단순한 접근법의 한계가 드러났다.

특히 한국과 같은 신흥국에서는 선진국 통화정책의 변화가 자본유출입과 환율 변동성을 크게 확대시켜 물가안정과 금융안정 간의 상충관계(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를 버려야 하는 관계)를 심화시켰다. IMF는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2020년 통합정책체계를 제시하며, 통화정책과 환율정책, 거시건전성정책, 자본이동관리조치를 유기적으로 결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창용 총재는 강연에서 한국이 지난 3년간 어떻게 IPF를 실제로 활용해왔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줬다.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물가 급등을 억제하기 위한 금리 인상기(2022~2023년)에는 기준금리를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인상하면서도, 동시에 외환시장 개입을 통해 원·달러 환율의 급등을 조절했다. 여기에 거시건전성 정책으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강화해 부동산 과열을 억제했다.

지난해 정책 전환기에는 물가가 안정되면서 금리 인하 압력이 커졌지만, 부동산 가격 재상승 우려로 기준금리를 상당 기간 동결했다. 대신 금중대를 확대해 중소기업과 취약계층에 대한 선별적 지원을 강화했다. 금중대는 한은이 시중은행에 낮은 금리로 자금을 공급하면 은행이 이를 중소기업에 대출하는 구조다.

비상계엄 이후 내수 침체와 증시 폭락 등으로 경기에 대한 우려가 컸지만 환율이 급등하고 대외 신인도가 낮아질 수 있는 상황을 감안해 금리 인하 대신 금중대와 유동성 공급 확대, 외환시장 안정화 조치를 통해 시장을 안정시켰다.

이 총재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완화될 때까지 금리 인하를 잠시 보류하는 대신 통화정책을 보완하기 위해 금중대를 활용해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에 선별적으로 자금을 지원했다”며 “이는 선별적 정책수단이 ‘크고 무딘 칼(blunt tool)’인 금리정책의 한계를 어떻게 보완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고 말했다. .

◇ 복잡다단한 상황에선 ‘정책 공조’ 필요성 증대

이 총재가 IMF 강연에서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현재의 글로벌 경제환경에서 어느 나라든 단일 정책수단만으로는 복합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점으로 해석된다. 미국과 같은 기축통화국도 인플레이션과 고용, 금융안정 간의 상충관계로 고민하고 있고, 유럽중앙은행도 통화정책과 거시건전성정책의 조화를 모색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상황이 더욱 복잡하다. 경제 규모와 기술력은 선진국 반열에 들었지만, 대외 의존도가 높고 불확실성이 크다는 면에선 신흥국으로 분류된다. 글로벌 금융여건 변화에 민감하고, 자본유출입과 환율 변동성이 국내 경제와 국민 심리에 미치는 영향도 크기 때문이다.

이런 제약 상황에서 한은이 선택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 바로 IPF라는 게 이 총재의 판단이다. 금리나 외환개입에 의존하지 않고도 금중대 확대, 유동성 공급 조절, 거시건전성 정책 조합 등을 통해 정책 목표를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작년 12월 예상치 못한 계엄 선포로 한국 경제는 급속히 침체하기 시작했고 경기만 생각하면 금리를 인하해야 했지만 1월 금통위는 금리를 동결했다”면서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해외 투자자들의 시각이 부정적으로 변하며 원화 가치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하락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정치적 불확실성이 완화될 때까지 금리 인하를 잠시 보류하는 대신 통화정책을 보완하기 위해 금중대를 활용해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에 선별적으로 자금을 지원했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가 IMF라는 글로벌 무대에서 소개한 K-통화정책의 사례는 단순히 한국만의 경험이 아니라, 복잡한 글로벌 경제 환경에서 중앙은행들이 직면한 복잡다단한 공통된 과제에 대한 해답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캉드쉬 강연은 IMF가 회원국 중앙은행과 협력을 강화하고 통화정책 및 글로벌 경제·금융 이슈를 심도 있게 논의하기 여는 행사다. 가장 오랜 기간 IMF 총재로 재임한 미셸 캉드쉬 전 총재를 기리기 위해 그의 이름을 땄다. 캉드쉬 전 총재는 1987년부터 2000년까지 13년간 IMF의 수장을 맡았으며, 1997년 우리나라가 외환위기를 맞았을 때 한국을 방문해 구제금융 합의서에 사인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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