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화산업, 구조적위기 방치하면 3년안에 기업 절반 ‘도산’”

경제

이데일리,

2025년 12월 09일, 오후 04:34

[이데일리 정두리 기자] 국내 석유화학산업이 구조적 위기 속에서 방치될 경우, 현재와 같은 업황이 3년간 이어지면 석유화학 기업의 절반이 도산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현재 석화 산업에 대규모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만큼, 정부 차원의 지원을 비롯해 산업용 전기요금 구조개편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다.

9일 국회의사당에서 열린 ‘석화업계 구조개편, 어떻게 경쟁력을 높일 것인가’ 정책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3년 안에 석화기업 절반 문 닫을 수도”

최홍준 한국화학산업협회 대외협력본부장은 9일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열린 ‘석화업계 구조개편, 어떻게 경쟁력을 높일 것인가?’ 토론회에서 “지금과 같은 업황이 지속되면 3년 안에 전체 석유화학 기업의 50%가 문을 닫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회는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실이 주최하고 한국화학산업협회 주관으로 국내 석화 업계의 경쟁력 확보 정책을 공유하기 위해 마련됐다.

최 본부장은 글로벌 공급과잉과 중국·중동발 저가 공세, 고금리·고비용 구조가 겹치면서 국내 석화업계의 가동률과 수익성이 급락했고, 이미 상당수 기업이 적자와 유동성 위기에 내몰려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여수·울산·대산 등 산단을 중심으로 협력업체 폐업과 지역 상권 침체가 현실화되고 있다”면서 “지금은 개별 기업의 경영 개선만으로 버틸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 시스템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중국은 러시아산 저가 원유·납사, 낮은 전기요금과 인건비를 바탕으로 우리보다 15% 이상 낮은 생산원가를 구현하고 있고, 미국은 셰일가스 기반 에탄크래커(ESCC)로 톤당 300달러 안팎의 원가우위를 확보한 상태다. 반면 국내 기업들은 고정비 비중이 높은 납사분해시설(NCC) 중심 구조에서 가동률이 80% 아래로 떨어지며 영업적자가 누적되는 국면에 들어섰다.

최 본부장은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한국이 러시아산 납사를 전혀 쓰지 못하는 사이 중국과 인도가 저가 물량을 흡수하며 ‘기울어진 운동장’이 됐다고 진단했다. 이 상태에서 구조조정이 시장 자율에만 맡겨질 경우, 개별 기업의 도산이 2·3차 벤더 연쇄 부도, 지역 상권 붕괴, 대규모 실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최 본부장은 “결국 정부가 뒤늦게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에 최 본부장은 석화산업 위기 대응의 핵심으로 ‘질서 있는 사업재편’을 제시했다. 그는 노후·비효율 설비를 줄이고 고부가·친환경 제품으로 포트폴리오를 바꾸는 사업재편에 대해 세제·금융·규제특례가 결합된 정부의 패키지 지원을 제안했다.

또 최 본부장은 최근 산업용 요금이 집중적으로 인상되면서 에너지 다소비 업종인 석화업계에 치명적인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이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부담을 여러 차례 호소해왔지만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석유화학산업 지원을 위한 특별법’에는 전기요금 인하 방안이 빠졌다.

그러면서 최 본부장은 △산업위기지역 한시 감면 △전력 직접구매제도 완화 △기본요금 산정 방식 손질 등 산업용 전기요금 부담 완화 방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최 본부장은 최근 기업들이 한국전력을 거치지 않고 전력거래소에서 직접 전기를 사는 전력 직접구매 제도에 관심을 보이지만, 약관 개정 이후 최소 거래 유지기간 3년, 조기 종료 제한, 재진입 지연, 과도한 재정보증 요구 등으로 사실상 이용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최 본부장은 “정부가 공식적으로 허용한 제도를 사실상 못 쓰게 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선택지가 없다”며 “최소한 계약 기간과 재진입 규제, 보증 요건을 합리적으로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 “금융·세제·R&D 묶은 구조조정 지원안 곧 공개”

정부도 석화산업의 구조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산업 구조 개편 로드맵’을 본격 가동하고 있다.

앞서 정부는 연말까지 기업별로 최대 370만t 규모의 NCC 감축을 목표로 사업재편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으며 10개 석유화학 기업이 참여한 ‘석유화학산업 재도약을 위한 산업계 사업 재편 자율협약식’을 체결한 바 있다.

이에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이 최근 대산 NCC을 통폐합하는 재편안을 제출했으며, 여천NCC도 3공장 감축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산과 여수에 이어 울산에서는 대한유화, SK지오센트릭, 에쓰오일 등 3사가 외부 컨설팅 기관의 자문을 통해 재편안 마련을 추진 중이다.

이날 하원석 산업부 화학산업팀 사무관은 “정부가 선제적으로 방향과 원칙, 지원 방식을 제시해 기업들과 구조 개편을 함께 추진 중”이라면서 “위기가 본격화되기 전에 정부가 방향을 제시하고 기업과 논의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정부 지원에는 사회적 비용이 수반되는 만큼, 기업이 충분한 자구 노력과 타당성 있는 사업재편 계획서를 먼저 마련해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이미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사업재편안 제출 데드라인으로 정한 연말까지 시한을 맞추지 못할 경우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거듭 경고한 바 있다.

하 사무관은 “정부가 방향만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프로젝트 단위 사업재편 승인과 연계해 금융·세제·R&D·규제 완화를 묶은 지원이 이뤄질 것”이라면서 “현재 업계와 소통하며 과제를 검토 중이고, 프로젝트별 사업재편 승인이 나면 지원 방안도 동시에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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