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신·굴삭기 선물에 "하하하" 웃음…이상한 송년회[사(Buy)는 게 뭔지]

경제

이데일리,

2025년 12월 21일, 오전 10:34

[이데일리 신수정 기자] 사(Buy)는 게 뭔지:사는(Live) 게 팍팍할 때면, 우리는 무언가를 삽니다(Buy). 경제지 기자가 영수증 뒤에 숨겨진 우리의 마음을 읽어드립니다. 다이소 품절 대란부터 무신사 랭킹 1위까지. 도대체 남들은 뭘 사고, 왜 열광할까요? 물건의 스펙보다는 ‘그걸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합니다. 장바구니를 보면 시대가 보이고, 결제 내역을 보면 내 마음이 보이니까요. 소비로 세상을 읽는 시간, <사(buy)는 게 뭔지> 입니다.
“올해 내가 받은 선물은 ‘반짝이 굴삭기 장난감’이었어. 내 친구는 ‘짚신 한 짝’을 받았고.”

연말 송년회를 마치고 돌아온 직장인 A씨(29)의 가방엔 황당한 물건이 들어있다. 초등학생도 안 찰 것 같은 공주님 보석 세트, 도로에서나 볼 법한 주차금지 표지판, 심지어는 살아있는 새우 젓갈까지 등장한다.

바야흐로 ‘쓸모없는 선물’의 전성시대다. 12월이 되면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킹받는(열받지만 웃긴) 선물 추천 좀 해주세요”라는 글이 쇄도한다. 고물가 시대에 사람들은 왜 기꺼이 지갑을 열어 ‘예쁜 쓰레기’를 사는 걸까.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가상 이미지(출처=챗GPT)
다이소의 프린세스 미용놀이세트.
이 소비의 핵심 규칙은 ‘절대로 쓸모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통 1만 원 이하라는 가이드라인을 정해두고,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가장 엉뚱하고 황당한 물건을 찾아오는 사람이 승자가 된다.

여기서 소비되는 것은 물건의 효용(Utility)이 아니다. 포장을 뜯는 순간 터져 나오는 친구들의 폭소와 난감해하는 당사자의 표정을 보며 느끼는 재미다.

물건 자체는 쓰레기통으로 갈지언정, 그 순간의 분위기를 띄우는 데는 명품백 못지않은 위력을 발휘한다. 팍팍한 세상에서 1만원짜리 지폐 한 장으로 확실한 웃음을 살 수 있다면, 이보다 가성비 좋은 투자는 없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이 기이한 유행의 배경에는 SNS 인증 문화가 있다. 멀쩡한 향수나 핸드크림을 선물 받으면 “고마워”라는 뻔한 멘트와 함께 사진 한 장 찍고 끝나지만, 배에 힘을 꽉 줘야 들어가는 아동용 쫄티를 선물 받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숏폼(Short-form) 영상 콘텐츠가 탄생한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이 물건이 쓸모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그 ‘쓸모없음’이 SNS상에서는 가장 강력한 콘텐츠가 된다. MZ세대에게 소비란 단순히 물건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깃거리를 획득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심리적으로는 연말 모임의 부담감을 덜어내려는 의도도 숨어있다. 취향을 타는 값비싼 선물은 주는 사람도 고르는 스트레스가 크고, 받는 사람도 보답에 대한 부채감을 느낀다.

하지만 쓸모없는 선물은 서로에게 아무런 의무감도 남기지 않는다. “이게 뭐야!”라며 한바탕 웃고 넘기면 그만이다. 서로의 경제적 사정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어색할 수 있는 모임 분위기를 순식간에 무장해제시키는 관계의 윤활유인 셈이다.

올해 송년회, 당신의 손에 들린 것이 비록 다이소 표 ‘가짜 금목걸이’일지라도 실망하지 마라. 당신은 금보다 귀한 친구들의 ‘찐웃음’을 선물 받은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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