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러시아 시장 아깝지만 내려놓나

경제

이데일리,

2025년 12월 30일, 오후 07:09

[이데일리 이배운 기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종전 협상 논의가 난항을 거듭하면서 현대자동차의 러시아 재진입 가능성도 한층 멀어지는 분위기다.

현대차는 내년 1월 안에 러시아 현지 공장 재매입(바이백) 옵션 행사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옵션을 행사할 경우 막대한 추가 비용 부담이 불가피한 반면 수익성은 여전히 불투명해 당분간 러시아 시장 재진입을 보류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현대차가 2023년 12월 철수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 전경(사진=현대차)
30일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현대차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고 있어 공장을 재매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며 현대차가 바이백 옵션 행사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중재로 종전 협상이 가시화되는 듯했지만 러시아 대통령 관저 공격 사건 등으로 정세가 다시 악화되면서 종전 시점은 다시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런 불확실한 정세 속에서 현대차로서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공장 재매입과 재가동을 추진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바이백 조건은 통상 행사 시점의 공정 시장 가치를 기준으로 산정된다. 매각 당시에는 전쟁 중이라는 특수 상황으로 공장 가치가 ‘0’에 가깝다고 보고 14만원에 매각됐지만 재매입 시점에는 러시아 측이 공장 가치를 다시 평가해 제값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설령 공장을 다시 매입하더라도 부담은 적지 않다. 약 2년간 멈춰 있던 생산시설을 재가동하려면 설비 보수와 라인 재정비, 신규 부품 공급망 구축 등에 대규모 추가 비용이 투입돼야 한다. 매각 과정에서 이미 수천억원 규모의 손실을 본 상황에서 다시 수천억원을 들여 공장을 사들이는 것은 재무적으로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러시아 시장 환경도 전쟁 이전과 크게 달라졌다. 과거 현대차·기아가 러시아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며 안정적인 지위를 구축했던 것과 달리 지금은 저렴한 가격을 앞세운 중국 브랜드들이 시장 상당 부분을 장악하고 있다. 이미 자리를 잡은 경쟁자들을 밀어내야 하는 만큼 막대한 마케팅 비용과 가격 경쟁이 불가피한 셈이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러시아 자동차 수출량은 117만대로 2년 만에 7.6배 급증했다. 러시아 승용차 시장에서 중국계 브랜드가 차지하는 점유율은 60.4%에 달한다.

전쟁이 종료되더라도 서방의 대러 제재가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 역시 배제할 수 없다. 이서현 한국자동차연구원 산업분석실 선임연구원은 “러시아 시장은 전쟁 이전에도 글로벌 완성차 업체 입장에서 절대적으로 규모가 큰 시장은 아니었다”며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은 러시아 내수 판매뿐 아니라 수출 기지 성격이 결합된 생산 거점으로 주로 활용됐다”고 설명했다.

이 선임연구원은 이어 “종전 이후에도 서방의 제재가 계속될 경우 러시아를 생산·수출 기지로 활용하는 전략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고 수익성 확보도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대차는 러시아 공장을 재매입하는 대신 카자흐스탄 등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국가에 구축한 생산 거점을 활용해 러시아 시장을 간접적으로 공략할 수도 있다”며 “EAEU 회원국에서 생산한 차량은 러시아 수출 시 관세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어 직접 재진출 대비 리스크가 낮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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