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되면 회사 떠나 해외로…R&D 인력 붙잡을 당근책 꺼낼 때"

경제

이데일리,

2026년 1월 07일, 오전 06:03

[이혁재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 이데일리 김소연 기자] 최근 해외 반도체 기업으로 이직한 국내 기업 전직 임직원들이 D램 핵심 공정 기술을 유출한 혐의로 무더기 기소된 사례가 있었다. 그 중 한 연구원은 이직 직전 핵심 기술 정보를 자필로 옮겨 전달한 사실이 드러났으며, 이로 인해 발생할 국가적 피해는 최소 수십조원 규모로 추정된다.

이들이 유출한 기술은 삼성전자가 5년간 1조6000억원을 투자해 세계 최초로 개발한 10나노대 D램 공정 기술이다. 수백 단계의 공정 정보가 그대로 기재된 핵심 정보다. 이들 범행에 따른 삼성전자의 손해는 최소 수십조원(2024년 추정 매출 감소액만 5조원 상당)으로 예상된다.

기술 유출 범죄가 늘어나며 국내 산업 피해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2020~2024년 5년간 기술 유출로 인한 국내 산업 피해액이 23조원에 달했다고 한다. 드러나지 않은 범죄까지 고려하면 실제 피해액은 더 클 것이다.

[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 우수 인재 해외 이직시 韓 잠재적 손실 커

이는 이공계 산업 현장에서 통상 50대 초중반이면 회사를 떠나는 풍토와 관련이 있다. 50대 초중반은 경험과 통찰이 가장 큰 가치를 발휘하는 시기다. 이 시점에 연구개발 인력이 현장을 떠나면 개인적으로는 경력 단절과 인생 계획 재정립의 어려움이 있고, 국가적으로는 핵심 기술과 인재 자산을 동시에 잃는 심각한 손실로 이어진다. 특히 이들이 해외 기업으로 이직한다면 기술 유출 위험은 더욱 커진다.

불법적인 기술 유출은 단속과 처벌이 가능하다. 그러나 50대 초중반 인력이 합법적으로 해외 기업에 취업하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더욱이 선배들의 조기 퇴직을 지켜본 젊은 후배 엔지니어들이 일찍부터 해외 이직을 고려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 기술 경쟁력에서 크게 뒤처졌던 해외 반도체 기업이 국내 기업과 빠르게 기술 격차를 좁힌 배경에는 다수 국내 엔지니어들의 해외 기업 이직이 있다. 이들이 합법적으로 해외 기업에 이직해 그들 기업의 기술력을 키웠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졌다.

국내에서도 연구개발 인력이 경력을 지속할 수 있는 중장기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그래야 해외 이직 사례를 줄이고 기술 유출 위험을 완화할 수 있다. 서울대를 비롯한 주요 대학들은 대기업 퇴임한 인력이 객원 교수나 산학협력 교수로 활동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다만 대부분 2~3년 단기 지원에 그친다. 중장기적으로 새로운 연구 계획을 수립해 실행하기에는 제약이 뒤따른다는 의미다.

◇ 우수인력 국내서 연구하도록 국가 나서야

연구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구체적인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최소 5~1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 지점에서 정부의 역할이 요구된다. 국내 기업에서 근무하며 핵심 기술을 보유한 연구개발 인력이 대학과 연구 현장에서 장기간 활동할 수 있도록 제도적·재정적 기반을 마련하고 안정적 지원을 보장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수혜 인력의 선정과 성과 관리 체계가 필수적이다. 우선 국가 핵심 산업에서 적어도 20년 이상 활동하며 국가 발전에 기여한 인력을 ‘국가핵심 연구개발 인력’으로 선정하는 제도를 신설해야 한다. 이들은 해외 이직을 선택했다면 더 높은 급여와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었음에도 그 기회를 포기하고 국내에 남기로 선택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국내 연구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예우하고 지원한다면 우수 인재들이 다시 이공계로 유입되는 동력이 될 수 있다.

특히 이들의 산업 현장 경험과 대학의 새로운 이론이 결합할 경우 대학의 연구 역량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 대학의 이론 중심 연구를 넘어 산업이 요구하는 실질적 성과 창출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정부 지원이 이뤄지는 동안에는 성과 중심의 관리·평가 체계를 확립해 연구 결과가 확실히 도출되도록 하고, 성과에 기반을 둔 추가 지원이 이뤄지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이처럼 국내 기업 퇴직 인력이 대학과 연구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면 다양한 긍정적 효과가 기대된다. 무엇보다 ‘이공계는 중년에 경력이 끝난다’는 인식을 완화할 수 있다. 게다가 국가핵심 연구개발 인력이라는 공식적인 예우 체제를 마련한다면, 젊은 세대가 다시 이공계를 주목하게 될 것이다. 이공계를 국가에서 예우하고 지원하겠다는 선언보다는 구체적으로 지원을 공식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핵심 기술을 보유한 인재들의 해외 유출을 줄이고, 대학의 연구개발 능력도 산업 수요와 맞는 방향으로 강화될 것이다. 경험 많은 인력이 장기간 연구 현장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는 일은 국가 기술 경쟁력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핵심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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