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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 관세' 카드를 또다시 예고하면서 연초부터 산업계가 '관세 불확실성'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반도체는 지난해 우리나라 수출의 30%를 일으킨 견인차이자, 북미 시장을 중심으로 사상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는 무관세 품목만큼 재계는 물론 정부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당장 한미 협상이 급물살을 탈 전망인데, 15일(현지시각) 타결된 미국과 대만의 무역합의가 기준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만은 15% 상호관세를 약속받은 대가로 2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對美) 투자를 약속한 만큼, 향후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 등 국내 기업에 대한 추가 투자 압박이 커질 수 있다.
'반도체 관세' 꺼낸 트럼프, 美 공장 더 짓는 TSMC
16일 업계와 정부에 따르면 미국과 대만은 상호관세율을 20%에서 15%로 낮추고, 대만 반도체·기업들이 미국에 2500억 달러(약 368조 원)를 신규 투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무역합의를 체결했다. 대표적으로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인 TSMC는 미국 애리조나주에 짓는 6개 공장에 더해, 5개 공장을 추가 증설하게 된다.
이에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4일(현지 시각) 미국으로 수입된 뒤 제3국 재수출되는 특정 첨단 반도체에 25% 관세를 부과하는 포고문에 서명했다. 일단 엔비디아 'H200'과 AMD의 'MI325X'이 대상인데, 두 칩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3E)가 탑재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지난해부터 예고됐던 반도체 품목 관세 리스크가 현실화 국면에 진입했다고 평가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미국에 공급 중인 HBM은 대부분 현지 AI 데이터센터에 사용돼 단기적 영향은 미미할 전망이다. 다만 관세 적용 범위가 향후 수입 반도체 및 파생 제품 전반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커졌다.
한아름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이번 포고문은) 반도체 관세에 사실상 많은 예외를 두고 있어 국내 업계에 미칠 영향은 극히 제한적"이라면서도 "포고문 서명 자체로 '미국이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관세 부과 조처에 나설 준비가 됐다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대만에 적용하던 상호관세를 20%에서 15%로 내리기로 15일(현지시간) 합의했다. 이를 대가로 대만 기술 기업들은 미국 내 반도체·에너지·인공지능(AI) 분야 생산 확대를 위해 2500억 달러(약 367조 원)를 직접 투자하기로 약속했다. © News1 김지영 디자이너
"다음 타자는 우린데"…韓 반도체 '추가 투자' 압박 가능성
당장 국내 반도체 업계는 '신규 대미 투자' 압박을 받을 공산이 크다. 미국은 대만 기업이 미국 내에 반도체 생산시설을 신설할 경우, 건설 기간에는 계획된 생산능력의 2.5배까지 관세를 면제하도록 했다. 완공 후에는 신규 생산능력의 1.5배까지 반도체를 무관세로 수입할 수 있다.
한미는 지난해 11월 발표한 공동 팩트시트에서 '대만보다 불리하지 않은 조건'이라는 큰 틀의 최혜국 대우에만 합의한 상태다. 이에 트럼프 정부는 한국과의 반도체 관세 협상에서 국내 기업의 추가 투자를 종용할 가능성이 있다. 삼성전자가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짓고 있는 파운드리는 연내 준공을 앞두고 있다.
한 수석연구원은 "지난해 한미가 관세 협상을 타결할 때 (3500억 달러 규모) 투자 분야에 AI 반도체가 포함됐기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가) 추가적인 요구를 할 명분은 많지 않다"면서도 "우리보다 앞서 합의한 대만의 사례(반도체 기업 투자분 무관세 쿼터)를 근거로 추가 투자 방안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 적법성을 심리하는 미 연방대법원 판결이 '분수령'이 될 것이란 관측도 있다. 연방대법원 선고는 이르면 다음 주 나올 전망인데, 상호관세가 원천무효가 돼 환급 대상이 되면 트럼프 행정부가 국고 손실분을 메우기 위해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품목 관세를 더 난폭하게 휘두를 수 있다는 시각이다.
"美, 칼 빼기 쉽지 않을 것" 전망 속 예의주시
업계는 정부의 협상 과정을 예의주시하면서 내부적으로 다양한 시나리오를 가정한 '플랜 B'를 검토 중이다. 다만 반도체 관세는 중국 견제를 위한 정치적 성격이 짙고, 미국은 전 세계에서 AI 반도체 수급이 가장 절실하기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도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특히 한국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비교우위'를 확보하고 있다. HBM 등 첨단 메모리 시장은 수요가 공급을 아득히 초과하는 '쇼티지'(태부족)가 뚜렷한데, 글로벌 메모리 '빅3' 중 두 곳(삼성전자·SK하이닉스)이 한국 회사다. 쉽게 말해 아쉬운 쪽은 미국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예컨대 미국이 수입 반도체 전반에 고율 관세를 부과할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익 극대화 전략에 따라 북미향(向) 출하를 조정하거나 가격 인상분을 고객사에 전가할 수 있다. 이 경우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 빅테크 등 자국 내 거센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
김동영 한국개발연구원(KDI) 전문연구원은 "반도체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요 공약 중 하나인 '리쇼어링'이 먹혀든 거의 유일한 분야이고, 한국은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에서 매우 한정적인 축"이라며 "한국이라는 공급망을 놓치고 자국 반도체 전략을 세우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반도체 관세 협상이) 우리에게 예상보다 불리하지 않게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dongchoi89@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