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와 무관함.(사진=게티이미지)
“회사가 싫은데 왜 업무 장비에 돈을 쓰냐고요? 회사를 위해서가 아니라 저를 위해서 쓰는 겁니다.”
1월의 한파보다 매서운 업무 스트레스 속에서, 직장인들이 고가의 ‘데스크테리어(Desk+Interior)’ 장비에 지갑을 열고 있다.
기계식 키보드를 커스텀해 조립할 수 있다. (사진=네이버 쇼핑몰 캡쳐)
이들이 30만~40만원대 고가 키보드와 마우스를 결제하는 논리는 철저히 생존에 기반한다. 하루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가장 오래, 가장 많이 접촉하는 물건이 바로 키보드와 마우스기 때문이다.
“내 손목과 손가락 연골은 회사가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자각이, 10만원짜리 버티컬 마우스와 부드러운 키감의 기계식 키보드를 필수 의료기기이자 보험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내 몸에 닿는 것에 돈을 아끼지 않는 이른바 ‘촉각의 럭셔리’다.
기능성만큼 중요한 것은 소리다. 최근 유행하는 커스텀 키보드 시장의 핵심 키워드는 타건음(打鍵音)이다.
스위치와 내부 흡음재를 튜닝해 만들어낸, 귀에 감기는 정갈한 타건음은 그 자체로 훌륭한 ASMR이 된다. 업무가 몰아치는 순간에도 손끝에서 전해지는 쫀득한 반발력과 귓가에 울리는 경쾌한 소리는 미묘한 쾌감을 준다.
이는 일종의 청각적 도피이기도 하다. 듣기 싫은 상사의 잔소리나 주변의 소음을 내가 좋아하는 도각거림으로 덮어버리는 것이다. 스트레스 받는 업무 환경을 나만의 리듬으로 치환하려는 심리적 방어기제다.
심리학적으로 데스크테리어는 통제감(Sense of Control)의 회복을 의미한다.
출근 시간부터 업무 내용, 점심 메뉴까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는 수직적인 조직 생활에서, 유일하게 내 의지대로 바꿀 수 있는 공간은 가로 120cm 남짓한 책상 위뿐이다.
좋아하는 캐릭터 피규어를 세워두고, 내 손에 딱 맞는 키보드를 배치하고, 은은한 조명을 켜는 행위. 이것은 단순한 꾸미기가 아니라, 삭막한 사무실 안에 나만의 왕국을 건설하는 의식이다.
오늘도 직장인들은 30만 원짜리 키보드를 두드리며 시말서나 보고서를 쓴다. 비록 모니터 속 내용은 고달픈 현실일지라도, 손끝에 닿는 감촉만큼은 최고급이길 바라는 마음. 그것이 1월의 오피스를 버티게 하는 슬프고도 합리적인 소비의 본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