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축하고 제한하고”…새해도 유통업계는 ‘규제法 포비아’

경제

이데일리,

2026년 1월 18일, 오후 05:19

[이데일리 김정유 기자] 올해도 국내 유통업계는 ‘규제법안 포비아(공포)’에 시달릴 전망이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규제법안이 잇따라 발의되고 있어서다. 최근 대규모 유통업자들을 향한 정산기일 단축 법안부터 배달 플랫폼 수수료 상한제를 겨냥한 법안까지 유통업계를 향한 압박이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밟고 있는 홈플러스의 기업형 슈퍼마켓 ‘홈플러스 익스프레스’의 매장 모습. (사진=연합뉴스)
18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송재봉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의원은 지난 7일 ‘대규모 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대규모 유통업자 대상 정산기일 단축이 핵심이다. 현행 대규모 유통업법에선 특약매입·매장임대·위수탁거래의 경우 월 판매마감일부터 40일, 직매입의 경우 상품 수령일로부터 60일내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번 개정안에선 이를 10일, 20일로 단축 시킨 것이 골자다.

또한 정산대금을 대규모 유통업자의 고유재산과 분리해 외부 금융사를 통해 별도 관리하는 항목도 신설했다. 또한 별도 관리되는 정산대금에 대한 청구권도 납품업체들에게 타 채권자보다 우선적으로 변제받을 수 있는 권리도 부여했다. 최근 2년새 티메프와 홈플러스 사태가 연달아 터지자, 이를 겨냥해 만든 법안으로 풀이된다.

앞서 박상웅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31일 대규모 유통업자 대상 정산기일을 특약거래의 경우 현행 40일에서 20일로, 직매입의 경우 40일에서 30일로 단축시키는 내용의 법안을 냈다. 납품업체들의 판매촉진비용 분담 비율도 기존 ‘100분의 50 초과 금지’에서 ‘거래액 비율’로 바꿨다.

여야를 막론하고 유통업계를 겨냥한 법안이 새해부터 잇따르는 모습이다. 유통업계는 구체적인 법안 내용보다도, 이처럼 규제 일변도로만 흐르는 입법 양상에 대해 우려감을 금치 못하고 있다. 현재 대부분의 대규모 유통업자들은 정산기일을 현행 법 기준보다 더 빡빡하게 운영하고 있다. 대형마트 A사만 해도 한 달에 2번 정산을 하는데, 정산기일로 따지면 약 15일 수준이다.

업계에선 단순 정산기일 단축은 오히려 대규모 유통업자들의 발주 감소, 납품업체들의 물량 감소 등 생태계 자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또한 소비자 청약 철회권(계약과 다를시 3개월 이내 청약철회 허용) 차원에서도 환불의 책임소재가 모호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통업체 B사 관계자는 “정산주기 단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현재 많은 기업이 ESG 경영과 동반성장 차원에서 법정 기한보다 빠른 정산을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며 “정산주기는 소비자 청약철회 권리와도 연결돼 있는 만큼, 업계의 자율적 노력과 소비자 혜택을 함께 고려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배달 플랫폼 시장을 향한 규제 공세도 여전하다. 김남근 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9일 발의한 ‘음식배달플랫폼 서비스 이용료 등에 관한 법률안’이 대표적이다. 배달 플랫폼에 입점한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우대 수수료율을 반영시키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현재 소규모 신용카드 가맹점에 대해 일반 가맹점보다 현저히 낮은 우대 수수료율을 강제 적용하고 있는데, 이를 배달 플랫폼으로까지 확대하겠다는 의미다.

앞서 같은 당 이강일 의원도 지난해 10월 ‘배달플랫폼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수수료 상한제 도입)을 발의했는데, 비슷한 내용으로 또 하나의 법안이 나온 셈이다. 현재 배달 플랫폼 수수료 논의를 위한 을지로위원회 사회적 대화 기구가 지난해 하반기 이후 공식적인 논의를 멈춘 상황에서, 규제 법안만 연달아 나온 것이어서 업계의 근심이 쌓여가는 모습이다.

배달 플랫폼 한 관계자는 “실질적인 논의가 멈춰 있는 상황에서 비슷한 법안들만 줄줄이 나오고 있어 혼란이 가중되는 상황”이라며 “특히 배달앱만을 특정해서 규제한다면 숙박앱, 커머스앱, 포털 등은 왜 포함이 안 되는 건지 형평성 차원에서도 문제가 많아 보인다”고 말했다.

유통업계는 올해 ‘쿠팡 사태’로 인한 유탄도 걱정하고 있다. 쿠팡 사태를 빌미로 다각도의 유통업계 규제법안·정책들이 설계되고 추진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업계에선 풍선 효과를 우려한다. 과거 오프라인 유통업체만을 겨냥했던 규제들이 ‘온라인 공룡’ 쿠팡을 키운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규제가 많을 수록 두더지 잡기처럼 이곳저곳서 관련 부작용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며 “현재 규제 흐름을 보면 이런 문제들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보이는대로 때리는 느낌이어서, 기업이나 학계 의견을 최대한 많이 수렴해 규제나 법을 설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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