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대 무상지원' 대통령 발언에...업계 "시장 왜곡" 반발

경제

이데일리,

2026년 1월 21일, 오후 06:42

[이데일리 김영환 양지윤 기자] ‘생리대를 위탁생산해 무상으로 공급하는 방안까지 검토해 달라’는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에 생리대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며 긴장하고 있다. 생리대는 필수 위생용품이라는 점에서 여성 청소년·취약계층 건강권을 두텁게 하자는 취지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무상공급 방식이 ‘제품 현물 지급’으로 설계될 경우 품질 논란과 함께 시장이 왜곡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0일 국무회의에서 국내 생리대 가격을 언급하면서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에게 “필요한 최저 품질을 갖춘 생리대를 싸게 만들어서 무상공급하는 걸 한 번 연구해 볼 생각”이라며 검토를 지시했다. 현재 정부가 취약계층 여성청소년을 대상으로 운영 중인 ‘여성청소년 생리용품 지원’(바우처)을 넘어 ‘위탁생산’ 제품을 공급할 가능성을 열어둔 발언이다.

업계가 민감하게 보는 대목은 ‘현물 무상공급’이 최저가 중심 조달로 이어질 가능성이다. 업계 관계자는 “생리대는 본인에게 맞는 제품을 반복 구매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무상공급이 시작되면 중저가 라인 수요가 일부 이동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식약처 기준이 엄격해 기본 품질을 크게 낮추긴 어렵겠지만 정부가 어느 수준의 스펙과 단가를 요구하느냐에 따라 위탁생산을 맡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의 이해가 엇갈리고 전반적인 품질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

현재 국내 생리대 시장은 유한킴벌리, LG유니참, 깨끗한나라 등 상위 3개 업체가 점유율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 업체들은 자체 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있지만 타 브랜드는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방식으로 공급받아 제품을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신체에 직접 닿는 고관여 제품인 만큼 정부가 어느 수준의 제품 퀄러티를 요구할지, 이에 상응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업체가 어디일지는 미지수다.

업계에서는 “정부 사업이 ‘대량 조달’로 추진되면 단가 경쟁력이 있는 OEM 기반 브랜드가 기회로 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제조 설비와 연구 역량을 갖춘 업체들이 고용·투자 측면에서 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무상공급이 실제 수요로 이어질지 자체가 불확실하다는 시각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국 소비자는 제품에 대한 기대치가 높고 생리대는 특히 ‘좋은 걸 쓰고 싶다’는 선호가 강하다”며 “무상으로 제공되는 제품이 그 눈높이를 충족하지 못하면 사용 자체가 외면받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내 시장은 제조 기반을 갖춘 업체들이 연구·설비투자를 지속하며 경쟁해 왔는데 단가 중심으로 정책이 설계되면 산업 생태계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피앤지 등 외국 기업이 국내에서 생리대 판매를 해왔지만 경쟁에서 밀리면서 사업에서 철수하기도 했다.

현재 정부는 기초생활보장 급여 수급자·법정차상위·한부모가족 지원 대상 가구의 9~24세 여성청소년을 대상으로 바우처를 운영 중이다. 2026년 기준 월 1만 4000원(연 16만8000원)을 지원한다. 성평등가족부에 따르면 올해 사업 대상자는 23만 2000명이고 예산은 160억 4600만원으로 편성됐다. 지난2024년 예산 집행률은 77.8% 수준이다.

정부 내에서도 구체적인 방향성은 정해지지 않았다. 성평등가족부 내부에선 지원 대상을 더 늘리는 방안이 거론되지만 ‘전체 청소년’ 등으로 확대할 경우 예산 부담이 커질 수 있어 단계적 확대 같은 선택지를 두고 고민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바우처 사업이 확대되면 당장 업계에 미칠 영향은 위탁생산에 비해 떨어지지만 대통령이 지적한 ‘고가’ 논란을 불식시키기는 어렵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면 ‘선택권’과 ‘품질 기준’, ‘조달 구조’가 동시에 설계돼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무상공급이 오히려 현장의 혼선과 갈등을 키울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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