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응태 기자] “명장의 손길이 담긴 양복을 비대면 시스템으로 맞출 수 있는 서비스를 선보여 세계에서 명품 양복으로 인정받는 게 꿈입니다.”
이정구 골드핑거 대표. (사진=김응태 기자)
이 대표는 지난 1962년 충남 보령에서 10대 때 양복업에 첫발을 들였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재단사의 길로 들어선 건 다름 아닌 어려운 가정환경 때문이었다. 이 대표는 “6·25 전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학교에서 공부하고 싶었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양복점에서 기술을 배우게 됐다”며 “재단사로 이왕 시작한 만큼 성공하겠다는 각오로 일에 매진했다”고 말했다.
재단사의 일은 녹록지 않았다. 견습공으로 일을 시작한 그는 잡무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기술을 익혀나갔다. 이 대표는 “양복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양복점에 들어가 심부름부터 했다”며 “미싱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청소나 원단 정리하는 일이 주요 업무였다”고 회상했다. 또 “옛날에는 전기다리미가 아니라 불을 피우는 방식의 숯다리미를 썼다”며 “추운 겨울에 손이 터져가면서 불을 피워 작업했다. 그렇게 힘들게 일해 한 달에 500원 정도 받아 목욕탕 가고 자장면 두세 그릇 먹었던 게 기억이 난다”고 덧붙였다.
이정구 골드핑거 대표. (사진=김응태 기자)
지방에서 4년간 경력을 쌓은 그는 부푼 꿈을 안고 1966년 서울로 상경했다. 그는 더 나은 기술력을 갖추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당시 내로라하는 재단사를 찾아 일을 배웠다. 이 대표는 “서울로 상경해 유명 양복점 중에서 기술 좋은 재단사들을 찾아가 무보수로 배웠고 혼자서 양복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을 키웠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가 오랜 시간 몸으로 부딪히며 흘린 땀방울은 끝내 빛을 발했다. 1970년에 개최된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하며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석탑산업훈장을 받았다. 이어 일본 동경에서 열린 국제기능올림픽에서까지 금메달을 획득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가치를 입증했다. 이후에도 한국남성복경진대회 최우수상, 세계주문복총회 대회장 표창 등에 이어 2001년에는 고용노동부로부터 310호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됐다.
골드핑거 매장에 진열된 양복. (사진=김응태 기자)
골드핑거 양복점. (사진=김응태 기자)
이정구 골드핑거 대표가 선보일 예정인 3차원 가상 피팅 솔루션 이미지. (사진=골드핑거)
한발 더 나아가 오는 3월에는 스타트업 ‘펠로우즈’와 협업을 통해 AI 기반 비대면 양복 맞춤 시스템을 선보일 계획이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 AI 솔루션이 신체 사이즈를 추출하고, 3차원(3D) 가상 피팅을 거쳐 비대면 방식으로도 양복을 맞출 수 있는 체계를 구현한다. 이 대표는 “고객이 비대면 양복 맞춤 시스템을 이용하면 배송 시간을 포함해 국내에서 열흘에서 2주 정도면 양복을 맞출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다”며 “향후 점진적으로 서비스를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비대면 양복 맞춤 시스템을 활용해 해외 고객을 대상으로 사업 저변을 넓혀 K패션의 가치를 알리는 데 앞장서겠다는 포부다. 그는 “비대면 양복 맞춤 시스템에 글로벌 마케팅을 결합해 골드핑거 양복을 세계 명품으로 만들겠다”며 “비대면 맞춤 서비스를 활성화하면 우리나라 패션 산업도 유럽 명품과 비견할 정도로 경쟁력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