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정책 방향 설명하는 이창용 한은 총재 (사진=연합뉴스)
윗쪽만 향하는 환율의 큰 물줄기를 트는 건 차츰 더 버거운 일이 되고 있다. 애초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나서 미국 주식 투자에 매달리는 서학개미들을 겨냥한 것부터 단추를 잘못 뀄다. ‘신(神)도 모른다’로 할 만큼 복잡다단한 변수로 움직이는 환율을 하나의 현상만으로 얘기할 순 없는 법이다. ‘개인들의 맹목적인 미국 주식 사랑이 환율을 끌어 올렸다’고 말하는 건, ‘한은이 유동성을 너무 많이 풀어 환율이 올랐다’는 비판과 마찬가지로 단순화의 오류다.
더욱 우려스러운 건 당국자들이 현상에만 매몰돼 초조함과 조급함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임기를 얼마 안 남긴 이 총재는 일부 경제학자나 심지어 유튜버들이 내놓는 환율 상승에 대한 한은 책임론을 반박하는데 에너지를 다 쏟고 있다. 지난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선 “한은이 돈을 풀어서 환율이 올랐다는 얘기는 사실이 아니다”고 일축하며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러면서 “6개월 전만 해도 한은이 금리를 안 내려 성장률을 떨어 트린단 지적이 많았다가 이젠 갑자기 환율이 오르니 금리 안 올린다 비판한다”고 꼬집으며 “환율을 (기준)금리로 잡으려면 한 200bp(2%포인트) 이상 올려야 한다”고도 했다. 평상시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이런 엄중한 상황에서 ‘환율 대응에 금리 카드는 쓰지 않을 것’이라는 잘못된 신호를 줄 필요가 없었다.
정부 측에서도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구윤철 경제부총리가 잇달아 수출 기업들을 소집해 보유한 달러를 시장에 풀어달라고 당부하고 있고, 지난해 10월 중순 이후 석 달 남짓한 기간동안 벌써 10차례나 발표한 환율 대책에는 은행권 선물환 포지션 규제 완화, 해외주식 매도 후 국내주식 투자 시 양도세 감면, 수출기업 해외 달러 보유 기획검사 등이 총망라돼 있다. 모두 눈 앞에 보이는 외환시장 수급에만 집중한 조치들이다.
그러나 기업들이 달러를 쟁여놓고, 서학개미와 국민연금이 해외 투자를 늘린 게 당장 하루이틀새 일어난 일이 아니다. 세계 최대 순채권국 중 하나인 일본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도 본격적으로 해외 자산을 축적해 가는 시기에 접어들었다. 투자수익이 해외 투자로 나가는 돈을 넘어서는 시점까지는 원화가 지속적인 약세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1400원대 환율이 당장의 외환위기를 불러올 게 아니라면, 중장기적으로 겪어야 할 고환율 시기에 적응할 수 있도록 시간은 좀 더 걸리더라도 구조적 문제에 집중할 때다.
무엇보다 잠재성장률 아래로 떨어진 우리 경제 성장의 동력을 되살리기 위해 혁신투자를 늘리고 규제를 획기적으로 줄여나가는 일이 급선무다. 이는 우리 기업과 경제에 대한 투자 매력도를 높여 한국에 대한 국내외 투자자들의 직·간접투자를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길이 될 것이다. 또한 향후 유동성이 늘어날 것이라는 경제주체들의 전망을 부추기는 과도한 재정팽창을 제어하기 위한 재정 규율 강화도 큰 숙제다. 4월 예정된 한국 국고채의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에 이어 코스피시장의 모건스탠리캐피탈인터내셔널(MSCI) 선진국지수 편입을 위한 제도 개선에 속도를 내야 한다.
경제관료들이 자주 듣는 조언 중에 “시장과 싸우지 말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정책 목표를 관철하기 위해 시장참가자들을 적대시하지 말라는 경계의 메시지다. 현재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자신이 가진 기대심리에 따라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선택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의 경제적 활동을 중단시키겠다는 식의 정책은 늘 실패해왔다. 성공은 큰 물줄기가 바꾸기 위해 터부터 파는 우직함에서 비롯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