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 AI 골드러시 ‘청바지’ 된 발전소…전력 인프라 투자 경쟁 '치열'

경제

이데일리,

2026년 1월 28일, 오후 06:41

[이데일리 마켓in 김연지 기자] 미국 서부 골드러시 시대에는 청바지가 돈이 됐다. 금을 캐는 사람은 늘어났지만, 가장 확실한 수혜는 곡괭이와 작업복을 판 쪽이 가져가면서다. 당시 금을 찾는 사람들은 흥망을 반복했지만, 채굴 활동이 이어지는 한 장비와 작업복에 대한 수요는 꾸준히 유지됐다. 눈에 띄는 금이 아니라 그 과정을 지탱한 필수품이 안정적인 수익을 가져다준 셈이다.

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한 현재 국내 자본시장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화려한 AI 기술 기업에도 큰 관심이 쏠리고 있지만, 호흡을 길게 가져가는 사모펀드(PEF)운용사들은 그 기술을 실제로 작동시키는 전력 인프라 자산에 주목하고 있다. 발전·집단에너지·재생에너지 등 전력 자산이 단순 유틸리티를 넘어 디지털 인프라의 기반 설비로 재평가되는 모습이다.

(사진=셔터스톡 갈무리)


28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전력 자산을 둘러싼 국내 사모펀드(PEF) 운용사들의 딜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AI 연산 확대와 함께 데이터센터, 에너지저장장치(ESS), 전기차 보급이 늘면서 전력망 부담이 커지고, 안정적인 전력 공급 능력이 산업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떠오른 영향이다.

실제 자본시장에서 발전소와 집단에너지, 재생에너지 설비는 장기 계약과 규제 기반 수익을 내는 안정적 현금흐름 자산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런 인식 변화는 실제 거래에서 가격 경쟁으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SK그룹이 추진한 울산GPS·SK멀티유틸리티 지분 49% 매각이 대표적이다. 해당 딜에서는 스틱얼터너티브자산운용과 한국투자프라이빗에쿼티 컨소시엄이 IMM 컨소시엄과 글로벌 사모펀드운용사 KKR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상태다.

이에 대해 자본시장 한 관계자는 “발전 자산을 단순 설비가 아닌 디지털 인프라로 인식하는 흐름이 반영된 것”이라며 “AI 전력 수요가 늘수록 관련 자산의 전략적 가치도 더 부각될 것으로 보고 운용사들이 치열한 경쟁을 펼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력 인프라를 둘러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거래 구조를 재정비해 재도전에 나서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KKR이 국내 최대 태양광 발전 사업자 중 하나로 꼽히는 태안안면클린에너지(TACE) 경영권 인수를 다시 추진하는 움직임이 대표적이다. KKR은 국내 자회사인 크리에이트자산운용을 통해 우리은행과 중국은행이 보유하던 TACE 대출채권을 인수하며 해당 자산에 대한 이해관계를 확보했다.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향후 거래 구조에 따라 경영권 확보로 이어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발전소의 위상 변화는 금융시장에서도 감지된다. 메리츠증권이 SK이노베이션 LNG 발전 자회사 현금흐름을 기반으로 구조화 자금 조달에 나선 사례가 대표적이다. 발전소가 앞으로 벌어들일 전력 판매 수익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한 것으로 발전 설비가 금융 투자 대상 자산으로 활용된 사례라는 평가다. 발전소가 단순 설비를 넘어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자산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셈이다.

이처럼 발전 자산이 실물 거래와 금융시장에서 동시에 주목받는 배경에는 자산시장 전반의 투자 환경 변화가 자리한다. 저출산과 저성장 흐름이 이어지면서 장기 계약과 규제 기반 수익을 내는 안정적 현금흐름 자산이 재평가되는 분위기다. 여기에 AI 확산으로 전력 수요가 늘면서 전력 공급 능력과 계통 안정성이 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발전소와 전력 인프라가 구조적인 수요 증가의 수혜 자산으로 거론되는 이유다.

그렇다고 리스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전력시장 제도 변화와 연료비 변동, 계통 접속, 환경 규제 등은 수익성을 좌우하는 변수로 꼽힌다. 발전 자산 투자는 전력 판매 구조와 정산 체계, 인허가와 계통 리스크까지 함께 고려해야 하는 복합적인 영역이라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전력화 흐름이 이어질수록 관련 자산의 가치는 높아질 수 밖에 없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국내 자본시장 한 관계자는 “AI 확산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산업 구조 변화에 가까운 만큼 전력 인프라에 대한 수요도 구조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며 “예전에는 발전 자산을 방어적인 인프라로 봤다면 지금은 디지털 인프라를 떠받치는 전략 자산에 가깝다. AI 확산 속도가 빨라질수록 관련 자산을 선점하려는 경쟁도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