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헬스, 자동차 2배 성장한다…韓, 저성장 돌파구 삼아야"

경제

이데일리,

2026년 2월 09일, 오후 07:52

[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우리가 강점을 가진 바이오 데이터 분야에서 경쟁력을 강화하면 경제 성장률을 높이고 선도국과의 격차를 좁히는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란 제언이 나왔다. 우리 경제의 반도체 의존 심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바이오 헬스 분야를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 바이오헬스 시장은 향후 5년 동안 연평균 5% 성장하며, 그 속도가 국내 주력 산업인 자동차(2.7%)의 두 배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사진= SK바이오사이언스)
◇ 세계 최고 수준 바이오 데이터, 저성장 ‘돌파구’

한국은행은 9일 발표한 ‘BOK 이슈노트: 첨단 바이오헬스 육성방안’ 보고서에서 “우리나라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바이오 데이터 수집·연계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면서 “이 인프라를 전략적으로 활용해 바이오헬스 산업을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육성해야 할 시점”이라고 진단했다.

바이오헬스 분야는 이미 선도국과 기술 격차가 벌어져 있지만 고령화 사회에서 성장이 확실한 유망 분야다. 인공지능(AI)이 게임체인저로 부상한 현 상황을 고려하면 선도국을 단순 추격하기 보단 우리가 경쟁력을 확보한 바이오 관련 빅데이터를 이용하는 것이 ‘달리는 말에 올라탈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는 이야기다.

국내 바이오헬스 산업은 복제약(바이오시밀러)과 위탁생산개발(CDMO) 등 틈새시장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했으나, 혁신생태계 부족으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혁신 신약과 첨단 의료기기 분야에서는 선도국과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2016~2023년 미국 내 우리 기업의 바이오헬스 특허출원건수는 4800건으로 세계 9위에 그쳤다. 이는 인구 규모가 훨씬 작은 스위스(8700건)나 후발 주자인 중국(5900건)보다도 낮다. 2024년 기준 의약품 개발 기술 수준에서 미국과 3년 6개월의 격차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자료= 한국은행)
한은 연구진은 이 격차를 뒤집을 수 있는 방안으로 AI와 데이터를 제시했다. 보고서를 공동 집필한 성원 한은 경제연구원 미시제도연구실 과장은 “우리나라는 단일 건강보험제도를 기반으로 수집하는 5000만 인구의 건강보험 및 병원 임상 데이터는 ‘AI 시대의 다이아몬드’라 불릴 만큼 세계적으로도 희소성이 높은 국가 전략 자산이 될 수 있다”며 “AI 혁신 시대에 고품질·대규모 데이터가 바이오헬스 산업의 성패를 가르는 강력한 경쟁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기존에는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 데 평균 10~15년, 수 조원대 비용이 들어갔지만, AI 도입으로 후보물질 발굴·임상 설계·환자 모집 과정이 자동화되면서 개발 기간과 비용이 30~50% 단축될 것으로 예상됐다.

특히 한국은 데이터 측면에서 글로벌 최상위권의 잠재력을 갖고 있다. 단일 건강보험제도 아래 건강보험공단·심사평가원·질병관리청 등이 전 국민 진료·청구·검진·예방접종·역학조사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고, 병원 현장에선 전자의무기록(EMR)과 의료영상 등 방대한 임상 데이터가 쌓이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바이오 데이터 가용성 부문에서 한국을 세계 최상위권으로 평가했다.

AI와 데이터가 결합하면 새로운 시장도 열린다. AI 기반 의료 영상 진단, 수술 보조 로봇, 재활 로봇, 정밀의료, 원격의료 등 신산업들이 향후 연평균 두 자릿수 성장이 예상되는 분야로 꼽혔다. 후발주자인 한국 입장에선 기존 실험 인프라·브랜드 경쟁에서 열세를 안고 출발하기보다, 데이터·알고리즘 중심의 새 판에서 선도국과 비슷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드문 기회다.

(자료= 한국은행)
◇ 데이터는 많은데, 못 쓴다…“국가주도형 인프라 구축해야”

문제는 ‘보유’와 ‘활용’의 간극이다. 2023년 인공지능산업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의료·헬스케어 AI 기업의 81.4%가 ‘데이터 확보·품질 문제’를 주요 애로사항으로 들었다. 우수한 데이터 수집·연계 인프라를 갖추고도 정제, 공유 등 활용 단계에 병목 현상이 존재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바이오 데이터의 활용성이 떨어지는 원인으로는 이해관계자 간 인센티브 불일치가 지목됐다. 환자(정보주체)는 공익성엔 공감하지만 해킹·유출, 보험·고용 차별 등에 대한 우려로 데이터 제공을 주저한다. 병원 등 수집관리자는 정제·비식별 처리·보안 투자와 법적·평판 리스크를 떠안지만, 그 대가는 ‘실비 수준’으로 묶여 있어 데이터를 공유하기보다는 독점하는 쪽이 합리적 선택이 된다. 기업·연구자 등 활용자는 복잡한 승인 절차, 법적 불확실성 등으로 적극적인 활용에 나서기 어렵다.

한은이 제시한 해법은 ‘국가 승인형 바이오 데이터 개방 체제’다. 핵심은 국가가 공익성을 엄격히 심사해 승인한 연구에 대해서는 규제를 과감히 풀고, 데이터 유통은 공적 허브를 통해 지원하자는 구상이다.

성 과장은 “국가 승인형 개방 체제가 정착되면 바이오 데이터가 단순한 의료 기록이 아니라 ‘국가 핵심 전략자산’으로 전환될 수 있다”며 “대외적으론 글로벌 바이오헬스 연구·개발(R&D) 허브로의 도약하고 국내에서는 새로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선순환 구조를 이끌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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