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정보기술(IT)·가전 전시회 'CES 2025’에서 자동 미정맥 투여 장치'가 시연되고 있다. 2025.1.9 © 뉴스1 신웅수 기자
저성장 국면 속에서 바이오헬스 산업이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국내 산업은 데이터 활용 부진으로 혁신 경쟁력 확보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한국은행은 공익성이 인정된 연구에 한해 데이터 활용을 허용하는 '국가 승인형 바이오 데이터 개방 체계'를 도입해 병목 구조를 해소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9일 한국은행 경제연구원이 발간한 'BOK 이슈노트: 첨단 바이오헬스 산업 육성방안'에 따르면 고령화에 따른 의료 수요 증가와 AI·생명공학 융합 가속화로 글로벌 AI 바이오헬스 시장은 향후 5년간 연평균 5.0% 성장할 전망이다. 이는 국내 주력 산업인 자동차 산업 성장률(2.7%)의 약 두 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국내 바이오헬스 산업은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혁신 신약과 첨단 의료기기 분야에서는 선도국과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세계 매출 상위 30위 제약사 가운데 국내 기업은 없으며, 국내 1위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매출(28억 달러)도 글로벌 상위 3개 제약사 평균(578억 달러)의 약 5% 수준에 그친다.
한은은 이러한 격차의 원인으로 특허 등을 통해 고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원천기술 부족을 지목했다. 2016~2023년 미국 내 바이오헬스 특허출원 건수는 세계 4위에 그쳤고, 전체 특허 대비 비중도 3.6%로 낮은 수준이다. 의약품 개발 기술 역시 미국과는 수년의 격차가 존재하며, 중국 대비 상대적 기술 우위도 희석된 상황이다.
다만 AI 기술이 바이오헬스 산업의 경쟁 구도를 재편하는 '게임체인저'로 부상하면서 우리나라에도 기회가 열리고 있다는 평가다.
성원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미시제도연구실 과장은 "AI는 신약 개발 기간을 30~50% 단축하는 등 R&D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고, 정밀의료나 수술 보조 로봇 같은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다"며 "우리나라처럼 추격국에 있는 국가가 선도국을 따라잡거나 추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단일 건강보험제도를 기반으로 전 국민 건강보험 데이터와 병원 임상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어 데이터 측면에서 잠재력이 크다. 미국 출원 AI 특허와 FDA 승인 AI 의료기기 건수 모두 세계 4위이며, 서울은 글로벌 임상시험 유치 규모에서 세계 2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데이터 활용은 여전히 저조하다. 2023년 의료·헬스케어 AI 기업의 81.4%는 데이터 확보와 품질 문제를 주요 애로사항으로 지적했다. 한은은 그 배경으로 데이터 활용 과정에서의 인센티브 불일치를 들었다.
정보주체인 개인은 공익적 활용 가치에는 공감하지만 개인정보 침해를 우려해 데이터 제공을 꺼리는 경향이 강하다.
설문조사에서 데이터 제공 의향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26.9%에 그쳤고, 제공을 거부한 이유로는 해킹·유출에 따른 개인정보 침해 우려(52.5%), 고용·보험 차별 등 실질적 피해 우려(20.9%)가 주로 꼽혔다.
병원 등 데이터 수집·관리자는 정제 비용과 법적·평판 리스크를 부담하는 반면 보상은 미미해 데이터 공유를 기피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 되고 있다.
기업과 연구자 역시 복잡한 접근·결합 절차와 법적 불확실성으로 데이터 활용에 제약을 받고 있다. 2020년 10월부터 2023년 10월까지 3년간 보건의료 분야 데이터 결합 활용 건수는 78건에 불과했다.
한은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의 해법으로 '국가 승인형 바이오 데이터 개방 체계'를 제시했다. 사전 심사를 통해 법에서 정한 공익성 요건을 충족한 연구에 한해 데이터 활용을 승인하고, 승인된 연구에는 사전 동의 면제나 포괄적 동의 허용 등 규제 완화를 적용하는 방식이다.
성 과장은 "국가 승인형 바이오 데이터 개방 체계는 공익성이 인정된 연구에 대해서만 데이터 활용을 허용하고, 대신 정보주체에게는 언제든 활용을 거부하거나 재허용할 수 있는 실질적인 통제권을 부여하는 구조"라고 말했다.
실증분석 결과 공익적 활용 보장과 정보 통제권 강화를 결합한 정책은 일반 신체정보와 정신건강정보 제공 의향을 각각 8.2%포인트(p), 15.5%p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은 국가 승인 체계가 도입될 경우 바이오 데이터의 전략 자산화를 통해 글로벌 바이오헬스 허브 도약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thisriver@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