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한 스타트업 잘못되면 금융사 탓?…"CEO에 책임전가 안돼"

경제

이데일리,

2026년 2월 09일, 오후 06:57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금융회사들이 위험을 지면 처벌부터 받는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생산적 금융은 작동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공식 제기됐다. 정부가 생산적 금융을 금융 대전환의 핵심 과제로 내세운 가운데, 금융회사가 실제로 자금을 움직일 수 있는 제도적 조건을 손봐야 한다는 요구가 금융당국 자문기구 논의에서 구체화됐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9일 오후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서 신진영 금융발전심의회 위원장과 공동 주재로 개최한 금융발전심의회 전체회의에서 한국 금융의 현 상황을 진단하고, 생산적 금융으로의 개혁 방향에 대해 모색했다.(사진=금융위원회 제공)
9일 금융위원회가 주최한 ‘생산적 금융 세미나’에서 자본시장연구원은 금융회사의 모험자본 공급이 위축된 가장 큰 원인으로 ‘책임 구조’를 지목했다. 생산적 금융 분야 투자는 필연적으로 실패 가능성을 수반하지만, 현행 제도에서는 투자 손실이 발생할 경우 CEO와 임직원 개인에게 제재 위험이 과도하게 전가되고 있다는 판단이다.

자본시장연구원은 주의·관리 의무를 충실히 이행한 경우에는 금융회사 임직원에 대한 면책 범위를 확대하고, 자본시장법상 경미한 위반 사항은 형사처벌이 아닌 행정 제재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실패에 대한 합리적 보호 장치가 마련되지 않으면 금융회사가 혁신 투자에 나서기 어렵다는 것이다.

보증 제도의 경직성도 주요 병목으로 지적됐다. 현재 기보·신보 보증은 신용등급과 재무지표 중심으로 설계돼 있어, 첨단기술을 보유했거나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일수록 오히려 자금 접근성이 떨어지는 구조라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첨단기술 보유 여부나 기술 확보 가능성을 보증 심사에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기술평가등급에 대한 가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 나왔다. 또 AI·반도체·바이오·에너지 인프라 등 비주택·비등기 자산에 대해서도 주택사업과 유사한 보증 요건을 적용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정책금융과 민간 자금의 결합 방식도 재설계 대상으로 꼽혔다. 자본시장연구원은 국민성장펀드와 같은 정책펀드에서 정부와 공적기관이 후순위로 참여해 민간 자금의 위험 부담을 일부 흡수하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를 통해 금융회사가 생산적 금융 분야에 참여하더라도 과도한 손실 우려 없이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민간 자금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저율 분리과세나 일정 수준의 소득공제 등 세제 인센티브 제공 필요성도 언급됐다.

자본시장 기능 강화 역시 생산적 금융의 핵심 축으로 제시됐다.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의 모험자본 공급 기능을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중소기업 특화 증권사의 역할을 강화해 혁신기업의 자본시장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를 위해 종투사에 대한 연간 사업 평가 제도를 도입하고, 우수 성과를 낸 금융회사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도 검토 과제로 제시됐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다른 연구기관들도 문제의식에 힘을 보탰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자금의 ‘규모’보다 ‘흐름’이 중요하다고 강조했고, 금융연구원은 생산성이 높지만 금융 제약으로 성장이 어려운 기업에 자금이 배분되도록 금융의 선별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세재정연구원은 배당소득 분리과세 등 세제 개편을 통해 자본시장 투자 매력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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