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승용 기자
[이데일리 김나경 기자] 5대 금융그룹이 올해 반도체·인공지능(AI) 등 첨단IT 기업에 약 87조원을 투입하는 등 생산적 금융을 본격화하기로 한 가운데, 이 정책이 실효성을 높이려면 규제 완화 및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금융그룹으로서는 위험·비용부담이 큰 기업 투·융자를 늘리고 있지만 수요-공급 매칭 플랫폼, 기업 신용평가 데이터 지원 등 기본적인 정책 인프라가 부족한게 현실이다. 특히 무엇이 생산적금융인지 범위·기준이 불명확해 실적 평가와 이에 따른 인센티브 체계도 마련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무엇보다 생산적금융을 할 수록 위험가중치가 높아져 금융사에겐 부담이 커지는 구조다.
◇생산적금융 늘리면 금융사 자본비율 하락
9일 각 금융그룹이 국회 정무위원회 간사 강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2026년 생산적금융 계획안 및 위험가중자산(RWA) 전망치’에 따르면 KB·신한·하나·우리NH농협금융은 올해 총 87조 4000억원을 생산적금융에 투입한다. 신한금융그룹이 20조원으로 가장 많고 KB(약 17조 7000억), 하나(17조 1000억), 농협(16조 5000억), 우리(16조 1000억) 등 각 그룹이 최소 16조원 이상씩 생산적금융에 자금을 공급키로 했다. 금융그룹은 부동산과 담보·보증 위주의 대출에서 제조업·정보통신(IT) 등 생산성이 높은 산업 부문으로 자금을 융통한다는 생산적금융의 취지에는 이견 없이 공감대를 이루고 있다.
문제는 금융그룹의 위험(리스크)·비용 부담에 비해 정책 인프라와 구체성이 부족해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위험가중자산(RWA)이 늘어나는 데 대해 금융당국의 세부 규제완화 방안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작년 9월 은행의 비상장주식 투자 RWA를 400%에서 250%로 낮춰 은행이 혁신기업 등 모험자본에 투자할 때 위험가중자산이 급격히 늘지 않도록 조정했지만, 업계가 희망하는 후속조처는 아직이다.
은행·자산운용사 등을 가진 금융그룹에서는 구체적으로 △인프라·벤처투자 △펀드 결성 △모험자본 △기업대출 등 생산적금융 각 분야에 대해 RWA 추가 조정이 필요하다고 본다. 한 금융그룹 임원은 “비상장주식 등에 대해 RWA를 낮췄지만 신산업·혁신기업 대출에 대한 위험가중치를 완화하는 등이 세분화된 조정이 필요하다”며 “그래야 금융그룹도 생산적금융 투입 규모를 늘리고 더욱 빠르게 이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5대 금융그룹이 강준현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87조 4000억원의 생산적금융 자금을 투입할 때 위험가중자산은 총 50조 2000억원 늘어날 전망이다. 위험가중자산이 늘어나면 각 금융그룹의 자본비율이 하락해 주주 배당을 늘리는 데 제약 요인으로 작용한다. 예컨대 A은행의 경우 올해 기업대출 등 등 생산적금융을 확대하면서 자본비율이 약 0.50%포인트 떨어질 것으로 추정했다. 특히 금융그룹들은 조세특례법상 ‘배당소득세 분리과세 기업’으로 개인투자자의 유입을 늘리려 하는데 자본비율이 하락하면 배당을 계속 확대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데이터 부족, 전문성 확대해야
생산적금융은 결국 ‘생산성이 높은 업종·기업’을 선별하는 것이 핵심인데 금융그룹만의 인프라로는 한계도 있다. 각 그룹이 은행·증권·자산운용 통합 조직을 만들거나 은행의 첨단산업 발굴·심사·평가 특화 부서를 신설하는 등 조직을 확충했지만 전문성을 키우는 데는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
한 금융그룹 관계자는 “은행이나 금융그룹 자체적으로도 반도체, AI 등 각 산업 업황과 동향·미래성장성·리스크를 분석하기는 하지만 실시간 데이터가 아니다. 앞으로 미래성장성이 있는지 보려면 전반적인 업황 데이터, 해외 동향, 규제 환경을 모두 봐야 하는데 개별 그룹 차원에서는 한계도 있다”며 “특히 AI와 같은 신산업들은 외부 신용평가사의 데이터가 부족한 경우도 있어서 빠른 심사와 자금공급에는 애로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금융권에서는 외부 신용평가사, 정부부처의 산업 데이터 공유 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금융당국이 강조하는 ‘기업 선별기능’ ‘산업 분석 전문성’이 강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생산적금융 매칭 플랫폼도 당국의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다. 혁신성·기술력을 가진 기업이 생산적금융 플랫폼을 통해 금융그룹에 자금융통을 요청하고, 각 금융그룹이 경영전략 및 계획에 맞는 기업을 빠르게 발굴할 수 있도록 하는 플랫폼이다. 자금을 공급하는 금융사가 수요처를 찾는 것보다는 자금 수요가 있는 혁신기업들이 먼저 손 들고 요청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생산적금융의 인정기준과 범위가 모호한 점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금융그룹 고위 관계자는 “은행, 증권, 자산운용 등 금융사들에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생산적금융 기준이 필요하다”며 “국민성장펀드와 같은 정책펀드 외에 민간에서 자체 결성한 인프라·딥테크 펀드도 모두 당국의 생산적금융에 포함되는지 공통적인 인정기준이 있어야 한다. 기준이 분명하면 금융사 간에 실적 경쟁이 붙어 생산적금융 더욱 활성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공통기준을 바탕으로 한 인센티브 정책도 필요하다. 기본적으로 생산적금융은 신용평가를 바탕으로 한 고위험 투·융자인 만큼 당국의 보상(유인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이 상생·협력 우수사례에 포상하고 관련 신상품을 공개하듯이 생산적금융 우수사례에도 이같은 공개 포상 및 인센티브가 있어야 생산적금융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의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