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찬 방위산업진흥회 방산정책연구센터 책임연구원.
트럼프 행정부가 제시한 황금함대(Golden Fleet)는 미국 해군의 노후화된 함대를 신속히 복원하고, 압도적 해군력을 재구축하겠다는 정치·전략적 구상이다. 이는 특정 공식 문서의 명칭이라기보다, 대규모 함정 건조와 유지·보수를 통해 해군력을 다시 황금기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상징적 표현이다. 그러나 핵심은 속도다. 가능한 한 빠르게 함정 수를 늘리고, 가동률을 회복해 해군력을 재정비하겠다는 목표지만 이 구상은 실행 단계에서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냈다. 함정을 늘리는 것보다 더 어려운 과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를 지속적으로 유지·정비하고 뒷받침할 조선업과 기자재 산업 기반이 이미 구조적으로 약화돼 있었다는 점이다.
지금 필리 조선소를 포함한 미국 내 주요 조선소들은 선체를 건조할 수 있는 능력보다, 그 선체를 완성시키고 유지할 기자재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산업 생태계가 붕괴된 상태에 가까운 상황이다.
미국 해군력의 위기도 더 이상 추상적인 경고가 아니다. 함정 유지·보수·정비(MRO)는 계획보다 늦어지고, 신규 함정 건조 일정은 반복적으로 지연되고 있으며, 이를 떠받쳐야 할 조선 산업과 기자재 공급망은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미국은 해군 전력 회복을 위한 새로운 해법을 모색해 왔고, 그 결과로 등장한 한국의 전략적 구상이 바로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다. 동맹국의 산업 역량을 해군력 유지와 확장에 적극적으로 결합하겠다는 접근이다.
그러나 마스가는 선언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구상을 실행 가능한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제도적 기반이 있다. 그 핵심이 한미 국방상호조달협정(RDP-A)이다. 국방분야의 FTA라고 불리는 RDP-A는 국방무역장벽 완화를 통해 공정한 경쟁 환경을 제공함으로써 체결국과의 방산협력·교역을 증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마스가를 현실로 만드는 유일한 해법은 RDP-A다.
◇쉬라함 MRO 사례가 보여준 현실적 제약
이런 구조적 인식 속에서 한국이 선택한 전략이 MASGA(Maintenance and Sustainment Global Alliance)다. 동맹국인 한국의 산업 역량을 활용해 미국 해군 전력 유지·보수 체계를 재구성하겠다는 접근이다. 방향성은 현실적이다. 그러나 MASGA 역시 제도 없이는 작동하지 않는다.
최근 한화오션에서 수행된 미 해군 쉬라함 MRO 사례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 조선소는 대형 도크, 숙련된 인력, 군함 정비 경험까지 모두 갖추고 있었다. 기술과 시설의 문제는 없었다. 그럼에도 미국 함정의 한국 내 MRO는 기대만큼 효율적으로 이뤄지지 못했다. 핵심 부품과 기자재를 미국 본토에서 조달해야 했기 때문이다. 승인 절차와 물류 이동이 중첩되며 시간이 소요될 수 밖에 없었다. 즉, 현재 구조에서는 미국 함정이 한국에서 MRO를 수행하더라도, 핵심 부품과 기자재 상당수를 미국 본토에서 가져와야하는 불편함이 있다는 것이다.
이 사례의 본질은 명확하다. MRO 능력이 아니라 제도다. 정비는 한국에서 이루어지지만, 조달은 미국 제도에 묶여 있다. 이 구조를 해소하지 않는 한 MASGA는 동맹의 산업 역량을 ‘활용 가능한 자산’이 아니라 ‘잠재력’ 수준에 머물게 만든다.
RDP-A가 체결되면 이러한 구조는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한국에서 생산되는 방산 기자재와 조선 관련 부품을 동맹국 조달로 인정함으로써, 현지 조달이 가능해진다. 이는 곧 MRO 기간 단축, 비용 절감, 전력 가용성 향상으로 이어진다. MASGA가 목표로 하는 ‘빠르고 유연한 해군 전력 유지’는 바로 이 지점에서 비로소 실현된다.
◇RDP-A·SOSA, 마스가 작동하는 제도적 기반
함정 건조 분야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미국 내 필리 조선소를 포함한 주요 조선소들은 선체 건조 역량 자체보다 기자재 공급 기반의 약화라는 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핵심 장비와 부품을 안정적으로 생산·공급할 수 있는 생태계가 충분히 유지되지 못하면서, 건조 일정 지연과 비용 상승이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든 기자재를 미국 내에서 조달하려는 접근은 현실적이지 않다. 오히려 시간과 비용을 동시에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반면 한국은 글로벌 조선 기자재 분야에서 이미 경쟁력을 입증해 왔다. 품질, 납기, 비용 측면에서 효율적인 공급망을 갖추고 있으며, 군함 건조 경험을 통해 방산 기준에도 익숙하다.
RDP-A를 통해 한국산 기자재를 합법적이고 안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면, 미국 조선소는 공급문제를 해소할 수 있고, 건조 효율성은 크게 개선된다. 이는 단순한 수입 확대가 아니라 동맹 간 산업 역량을 전략적으로 결합하는 선택이다.
여기에 더해 이미 체결된 한미 공급안보약정(SOSA)의 실질적 활성화도 중요하다. SOSA는 반도체, 에너지, 방산 등 전략 산업의 공급망을 안보 차원에서 관리하고, 위기 시 상호 협력하겠다는 약정이다. 그러나 현재 SOSA는 조선과 MRO 영역에서 선언적 수준에 머물러 있다.
RDP-A가 조달의 문을 여는 제도라면, SOSA는 공급망 안정성을 지속적으로 보장하는 안전장치다. 두 제도가 결합할 때 한국의 조선·기자재 산업은 단기적 보완재가 아니라 동맹 해군력의 구조적 구성 요소로 편입된다. 특히 필리 조선소가 정상화되기까지의 과도기 동안 한국 기자재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임시방편이 아니라 현실적인 유일한 선택지다.
◇정책·전략적 결단 필요 …美 황금함대 구상 현실화 가능
RDP-A를 단순히 방산 물자의 상호 구매를 위한 협정으로 이해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오늘날 조선과 함정 MRO는 산업을 넘어 안보 인프라로 인식되고 있다. 반도체와 에너지처럼, 공급망의 안정성과 신뢰성이 곧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영역이 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RDP-A는 마스가를 작동시키는 핵심 인프라다. 미국에는 해군력 회복의 속도를 제공하고, 한국에는 조선·방산 산업의 전략적 위상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기회를 제공한다. 나아가 동맹 차원에서는 산업 역량을 전력의 일부로 통합하는 새로운 안보 모델을 가능하게 한다.
RDP-A는 선언만으로 체결되는 협정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정책 협의 개시 △조달 제도 및 법령 정합성 검토 △산업 영향 평가 △정부 간 협정 체결 △실무 이행 체계 구축의 단계를 거친다. 이는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정책적·전략적 결단의 영역이다.
한국은 이미 조선·방산 역량을 입증했고, 미국은 해군력 회복이라는 명확한 전략적 필요를 안고 있다. 황금함대 구상을 떠받칠 현실적인 제도가 필요하다. 마스가는 그 현실을 인식한 전략적 진화다. 그리고 그 전략을 현실로 만드는 출발점이 바로 RDP-A와 공급안보약정의 실질적 작동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추가적인 설명이 아니라 결단이다. 마스가는 구상이 아니라 전략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전략은 제도로 완성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