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법무부 반독점 수장 슬레이터 사실상 ‘경질’…백악관·법무장관 측과 충돌(종합)

경제

이데일리,

2026년 2월 13일, 오전 05:41

[뉴욕=이데일리 김상윤 특파원] 미국 법무부 반독점국 수장인 게일 슬레이터 차관보(AAG)가 12일(현지시간) 전격 사임했다. 취임 11개월 만이다. 겉으로는 자진 사퇴 형식이지만, 백악관과 팸 본디 법무장관 측과의 권한 충돌이 격화된 끝에 사실상 밀려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경쟁정책은 산업정책·국가안보·무역전략과 긴밀히 엮이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독립적 법 집행기관으로서 반독점국의 위상이 약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번 인사 파동은 단순한 인적 교체를 넘어, 미국 경쟁정책의 정치적 독립성이 어디까지 유지될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게일 슬레이터 법무부 반독점국 차관보(AAG) (사진=AFP)
슬레이터 차관보는 이날 엑스(X·옛 트위터)에 “반독점 담당 차관보직을 떠난다”고 밝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백악관이 본디 장관 측근들과의 갈등 끝에 슬레이터의 퇴진을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법무부는 초기에는 사임설을 부인했지만, 결국 수장 교체가 현실화됐다.

FT에 따르면 슬레이터 차관보는 취임 이후 장관실과 주요 사건마다 이견을 보였다. 그는 대기업 결합에 대한 강경 집행과 빅테크 규제를 강조해왔지만, 백악관과 일부 고위 인사들은 산업정책·국가안보·외교적 고려를 반영한 보다 유연한 접근을 선호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행정부 내부에서 ‘강경한 반독점 노선’과 ‘거래 중심의 실용 노선’이 충돌하는 양상이 나타났다는 분석도 나온다.

가장 큰 갈등은 약 140억달러 규모의 휴렛팩커드엔터프라이즈(HPE)의 주니퍼네트웍스 인수 심사 과정에서 불거졌다. 슬레이터 차관보는 경쟁 제한 가능성을 이유로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지만, 정보·안보 당국은 화웨이 등 중국 기업과의 기술 경쟁을 고려한 전략적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합의 과정에서 내부 반발이 이어졌고, 반독점국 고위 간부 2명이 사임하는 등 조직 내 균열도 노출됐다.

최근 몇 달 사이 슬레이터 측근 인사들이 해임되거나 배제됐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기업결합 심사에 대해 장관실의 통제가 강화됐다는 내부 증언도 이어졌다. 슬레이터의 수석 부차관보였던 마크 해머 역시 이번 주 초 사임했다. 법무부 안팎에서는 “정책적 판단을 넘어 정치적 개입이 늘고 있다”는 불만이 제기돼 왔다.

슬레이터 차관보는 JD 밴스 부통령과 가까운 인사로 알려져 있으며, 빅테크에 대한 강경 노선을 공개적으로 지지해왔다. 법무부 반독점국은 현재 구글, 애플, 비자, 라이브네이션 등 대형 기업을 상대로 주요 반독점 소송을 진행 중이다. 특히 라이브네이션 사건은 다음 달 재판을 앞두고 있어 수장 교체가 소송 전략과 집행 기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미 법무부 반독점국은 대기업 결합 심사와 독과점 소송을 총괄하는 핵심 기관이다. 법적으로는 행정부 산하 조직이지만, 시장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정치적 중립성과 집행의 독립성이 관행적으로 존중돼 왔다. 그러나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정책적 우선순위와 정치적 고려가 반독점 집행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본디 장관은 성명을 통해 “소비자 보호와 경제적 기회 확대를 위한 그의 헌신에 감사한다”고 밝혔지만, 이번 사임을 두고 법무부 내부에서는 정책 노선과 권한 배분을 둘러싼 구조적 갈등의 결과라는 해석이 우세하다. FT는 “슬레이터가 행정부의 보다 유화적인 접근에 동조하지 않으면서 고립이 심화됐다”고 전했다.

후임으로는 반독점국 고위 간부 오미드 아세피가 직무대행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새 수장이 누구로 낙점되느냐에 따라 반독점 집행의 강도와 방향은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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