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 설탕 등 당류가 진열되어 있다.(사진=연합뉴스).
제분사들 역시 2020년 1월부터 작년 10월 사이 국내 밀가루 가격의 변동 여부, 변동 폭과 그 시기 등을 상호 합의를 통해 결정하는 방식으로 시장 질서를 교란한 혐의를 받는다. 이 기간 담합 규모는 5조 9913억원으로 알려졌고, 밀가루 가격은 최고 42.4%까지 오른 것으로 파악됐다.
황태희 성신여대 법학대학 교수는 제당·제분 시장에 대해 ‘담합의 모든 필요조건을 갖춘 교과서적 시장’이라고 정의했다. 지난 수십년간 신규 사업자나 해외 경쟁자의 진입이 사실상 차단된 채 소수 업체가 시장을 분점해 왔고, 이러한 폐쇄적 구조는 경쟁의 동력을 상실시키고 업체 간 ‘침묵의 카르텔’을 강화하는 토양이 됐다는 설명이다.
특히나 제품 간 품질 차이가 미비한 분야기 때문에 기업들은 가격으로 경쟁해야 하는데 모두가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으로 ‘담합’을 선택한 셈이다. 원재료의 해외 의존도가 90%를 상회하는 산업 구조 역시 담합의 ‘타이밍’을 맞추기 좋게 만들었다.
황 교수는 “국제 곡물 가격이나 환율이 변동할 때마다 업체들은 이를 명분 삼아 가격 조정 폭과 시점을 조율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외부 변수를 이용해 ‘언제, 얼마나 올릴지’ 합의하는 것이 매우 용이한 구조인 셈이다. 그는 이어 “산업 협회를 중심으로 한 정보 교환 체계는 담합의 물리적 장을 제공했다”며 “특히 설탕의 경우 대한제당협회 회원사가 사실상 3사에 불과해, 회장사를 번갈아 맡으며 상시적인 접촉이 이어졌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협회가 사실상의 ‘담합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 2006년과 2007년 제분업계와 제당업계는 각각 대한제분협회, 대한제당협회 실무자 회의 등을 통해 오랜기간 출고량과 가격을 담합했던 사실이 적발된 바 있다. 당시 제분업계에는 430억원대, 제당업계에는 1000억원대 과징금이 부과됐다.
황 교수는 “담합으로 얻는 부당 이득이 적발 시 지불해야 할 과징금과 손해배상액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담합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행 공정거래법의 리니언시(자진신고 감면)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황 교수는 “3개 업체가 담합한 뒤 적발 조짐이 보이면 1위 신고자는 100%, 2위 신고자는 50%를 감면받는다”며 “이는 막판에 내부 결속을 깨는 효과는 있지만 ‘먼저 신고하기’를 통해 처벌을 피하는 면죄부로 악용되며 제재의 실효성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CJ제일제당은 2006년 밀가루 담합, 2007년 설탕 담합에 이어 최근 사건에서도 리니언시 제도를 활용했다. 담합을 통해 부당 이득은 누리고, 자진신고를 통해 처벌도 피한 셈이다.
황 교수는 “현행 시스템이 담합을 적발하는데 성과를 내고 있지만, 애초에 시도조차 못 하게 만드는 ‘억제력’은 부족하다”면서 “해당 산업의 모든 사업자가 반복적으로 담합을 하고 있는 경우에 리니언시 기회를 박탈하거나, 3진 아웃과 같이 담합 범죄가 누적된 기업의 경우 리니언시 적용을 제한하는 등의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황 교수는 또 “공급 안정이라는 명분 아래 기존 사업자들의 (독과점적)지위를 보호해온 기존 산업 정책을 ‘소비자 후생’과 ‘공정한 경쟁’ 관점에서 재점검하고 경쟁 촉진형 산업 정책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으로 △주유소처럼 수입원가 대비 제품 가격을 상시 모니터링 및 공개하는 가격 표시제 시스템 구축 △중소 식품업체와 베이커리 협동조합 등이 직접 원료를 수입하거나 공동 구매할 수 있도록 유통 인프라와 금융 지원 확대 등을 제안했다.
황 교수는 마지막으로 “설탕과 밀가루는 제과, 제빵, 분식, 빙과, 음료 산업 등 많은 영역에 영향을 주기에 파급효과가 크다. 때문에 공정 경쟁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면서 “이제는 기업 내부통제 강화와 감시 체계 혁신을 통해 담합이 아예 불가능한 시장 환경을 조성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