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위력 재확인…루센트블록 탈락이 남긴 3가지 메시지

경제

이데일리,

2026년 2월 14일, 오전 12:31

[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보도자료라기보다는 해명·반박자료 같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13일 오후 2시께 토큰증권발행(STO) 장외거래소 최종 결과(KDX·NXT 인가, 루센트블록 탈락)를 발표하자 시장에서 나온 반응이다. 19페이지에 달하는 자료 분량도 이례적이지만, 내용 역시 예사롭지 않았다. 보도자료 곳곳에는 지난 한 달여 동안 불거진 인사 과정의 불공정 논란에 대한 금융위의 전면적인 반박이 묻어났다.

결과는 나왔고 금융위가 시장에 던진 메시지는 분명했다. 금융당국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분명히 보여준 것이다. 당국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시장에는 분명한 ‘학습효과’가 각인됐다. 단지 시작일 수 있다. 향후 이재명정부 4년여 동안 이번에 드러난 당국 기조는 곳곳에서 드러날 수 있다. 이번 결과가 루센트블록 탈락을 넘어 시장 전반에 던진 메시지, 그리고 이 메시지의 명암을 무심코 넘길 수 없는 이유다.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 위치한 금융위원회. (사진=이데일리DB)
우선 이번 결정은 단순한 인가 결과를 넘어 금융당국의 위력을 재확인시켰다. “관은 치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의 ‘관치금융’ 인식이 다시 소환된 이유다. 검찰과 기재부가 쪼개지고 대부분의 부처가 세종으로 이전했음에도 금융당국만은 조직 논란이나 이전 논의에서 비켜서 있었다. 그 배경에 있는 관치의 힘이 이번 인가 과정에서도 다시 드러났다.

중소벤처기업부·공정위원회 등 관계부처가 움직였고, 여당 의원들(박범계·장철민·허영)이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했으며, 이재명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까지 있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루센트블록 인가에 대한 기대감이 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최종 결과는 돌고돌아 금융위 원안 즉 1월7일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 결정 그대로 확정됐다.

이 결과가 시장에 던진 메시지는 분명했다. “당국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된다”는 메시지다. 당국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시장이 느끼는 ‘학습효과’다. 업계 한 관계자는 “증선위 탈락 결정 직후인 1월12일 허세영 루센트블록 대표가 기자회견을 할 때 ‘아차’ 싶었다”며 “사지에 몰린 루센트블록이 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고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생각하지만, 당국의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됐다”고 돌이켰다.

이번 결정은 관가 내부의 또다른 불문율(不文律)을 강화했다. ‘소관부처의 사안은 건드릴 수 없다’는 인식이다. 앞서 이 대통령 발언 이후 금융위·공정위·중소벤처기업부가 ‘대책회의’를 했다. 스타트업 정책을 담당하는 한성숙 중기부 장관까지 팔을 걷어붙였고 국무회의 공개 발언까지 하자 시장에서는 조정 가능성에 대한 기대도 나왔다.

그러나 관가 내부의 분위기는 달랐다. 취재 과정에서 공무원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이번 사안은 소관부처인 금융위 소관”이라는 것이었다. 소관부처인 금융위의 증선위가 ‘KDX·NXT 인가, 루센트블록 탈락’ 결정을 한 만큼, 다른 부처가 이를 뒤집기는 어렵다는 게 관가 내부 분위기였다. 금융위가 지난 13일 NXT컨소시엄에 대해 공정위의 행정조사가 개시되면 인가절차를 중단(본인가 심사중단)한다고 했지만, 관가에선 ‘소관부처’ 결정을 공정위가 뒤집을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금융위원회가 공개한 금융감독원 외부평가위원회 심사결과에 따르면 루센트블록은 자기자본 등에서 3등을 했다. 이에 박범계 민주당 의원도 샌드박스 형태로 새로운 신산업 만들었는데 나중에 자금력, 지배력 조건 등의 허들을 만들어 사업을 못하게 한다면 혁신을 가로막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이번 결정은 또 하나의 메시지를 남겼다. 금융혁신은 언제든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는 점이다. STO 1호 기업으로 혁신을 먼저 시도한 스타트업이 시장에서 오히려 퇴출될 위기에 처했다는 점은 상징적인 증표다. 이는 단지 루센트블록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의 규제 샌드박스를 믿고 도전한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제도화 과정에서 어떤 대우를 받는지, 어떻게 혁신이 물거품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이건 일각의 시각이 아니다. 장철민 민주당 의원은 지난 10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지금 여러 스타트업들이나 샌드박스를 거쳐온 기업들이 이 건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 굉장히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범계 민주당 의원도 “샌드박스 형태로 새로운 신산업 만들었는데 나중에 자금력, 지배력 조건 등의 허들을 만들어 사업을 못하게 한다면 혁신을 가로막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 같은 우려는 실제 평가 결과로 드러났다. 13일 금융위가 공개한 금융감독원 외부평가위원회 심사결과에 따르면 넥스트레이드의 NXT컨소시엄은 750점, 한국거래소의 KDX는 725점, 루센트블록은 653점이었다. 루센트블록이 탈락한 것은 자기자본, 사업계획, 지배구조를 비롯한 이해상충방지 평가에서 3위로 밀렸기 때문이다. 1인 기업으로 시작해 혁신을 추진한 스타트업들이 느끼기엔 불리한 평가 방식이었다.

과거에 샌드박스를 통해 은행과 협업했다가 서비스가 중단된 경험이 있는 한 스타트업 CEO는 루센트블록 사례는 드러난 사례일뿐 상당수 스타트업들이 실제 겪고 느끼는 고충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전통금융권은 샌드박스를 돈도 안 되고 신경만 쓰이는 서비스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이번 결과는 혁신 서비스 확산을 더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허영 민주당 의원이 샌드박스 관련 법 개정(금융혁신지원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지만, ‘샌드박스 신뢰’가 깨진 상황에서 법 개정 효과가 미지수라는 반응도 나온다.

STO 1호 기업인 루센트블록 직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대전에 본사를 둔 루센트블록은 2018년 금융위에서 혁신금융서비스(규제 샌드박스)로 지정돼 부동산 조각투자 플랫폼을 운영해왔다. 충청권에서 유일한 블록체인 핀테크 기업이다. 허세영 대표는 이데일리 인터뷰에서 변방에서 역사를 만든 실리콘밸리 신화처럼 충청권 유일한 블록체인 핀테크 기업으로서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허세영 대표 페북)
셋째로는 ‘스테이블코인 관련 디지털자산기본법’도 이번과 비슷한 전철을 밟을 것이란 메시지다. 민주당 디지털자산태스크포스(TF)는 오는 24일 디지털자산기본법 여당안에 대한 가닥을 잡고 이달 중에 디지털자산기본법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시장은 이번 사례가 디지털자산기본법에서도 반복될 가능성에 주목한다.

디지털자산기본법 관련해서도 혁신 우려가 제기된다. 시장에서는 “‘은행 51%룰’을 반영해 은행 중심으로 가면 보수적으로 운영되면서 혁신이 훼손될 것”, “시장을 개척해 성장한 디지털자산(가상자산) 거래소 지분 규제를 이제와서 하겠다고 하면 누가 창업을 하고 혁신을 하겠는가”라는 반발이 나온다. 여당(민병덕) 내부에서도, 민주당 디지털자산TF 자문위원들 내부에서도 51%룰과 일률적 지분 규제에 우려하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하지만 금융위는 은행 지분이 과반을 차지하는 ‘50%+1주’ 은행 중심 컨소시엄과 가상자산 거래소에 대한 15~20% 지분 규제를 추진할 방침이다. 금융위는 여당과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 은행 51%룰, 거래소 지분 규제를 포함한 정부입법을 추진하고 이를 관철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금융당국이 킹”이라는 것이 재입증될지 지켜보고 있다.

특히 루센트블록 평가에서 드러났듯이 금융위가 지분 규제는 반드시 관철시킬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두나무(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스트리미(고팍스) 모두 15~20%로 지분 규제를 적용할 것이란 것이다. 금융위는 지난 13일 “루센트블록은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등의 지분이 51%로 실질적으로 컨소시엄 형태로 보이지 아니하며, 루센트블록 자체가 개인 대주주의 개인회사의 성격을 가진다”면서 루센트블록에 최저점을 부과했다고 밝혔다. ‘주인 없는 회사’ 구조여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금융안정이라는 명분 아래 당국이 중심을 잡는 것이 필요한 측면도 있다. 빗썸 사태에서 보듯이 규제의 역할이 긍정적으로 작동하는 경우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인공지능(AI), 스테이블코인을 비롯한 금융 대전환 시대에 정부가 모든 것을 틀어쥐고 갈 수는 없다. 시장이 당국 눈치를 보며 위축될수록, ‘그림자 규제’가 늘어수록 혁신 시도는 사라지고 기회는 박탈된다.

금융정책의 명분·취지뿐만아니라 시장에 미칠 ‘후유증’도 함께 봐야 한다. 금융안정을 이유로 혁신을 가로막는 허들, 기존 거대 플레이어 위주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있는 것은 아닌지 봐야 한다. 설 연휴를 앞두고 탈락 소식을 접한 스타트업 루센트블록이 우리 사회에 남긴 메시지 역시 되돌아봐야 할 때다.

“우리는 특혜를 원하는 게 아니라 공정한 경쟁 기회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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