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대목을 앞둔 전통시장은 한산한 반면, 온라인 쇼핑몰의 새벽배송 트럭은 쉴 새 없이 달린다. 장을 보러 나갔던 주부들은 사과 세 알에 2만원이 찍힌 가격표를 보고 조용히 장바구니를 내려놓는다. 대신 스마트폰을 켜고 명절 음식 밀키트나 모듬전 세트를 검색한다. “조상님, 죄송합니다. 이번 설에는 제가 부친 전 대신 대기업 석박사들이 만든 전 올립니다.” 바야흐로 차례상의 외주화 시대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냉동모둠전이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쿠팡 화면 캡쳐)
나물 물가도 만만치 않다. 전통시장에서 산다면 시금치나 고사리가 대형마트보다 50~60% 저렴하다지만, 맞벌이 부부에게는 시간이 곧 돈이다. 흙 묻은 도라지를 사서 껍질을 까고, 고사리를 불리고 삶는 노동력(인건비)까지 계산하면, 팩에 담겨 나오는 1만원짜리 ‘삼색 나물 세트’가 훨씬 경제적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여기에 MZ세대의 합리주의가 기름을 부었다. 이들은 형식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거부한다. 하루 종일 허리가 끊어져라 전을 부치고 스트레스를 받느니, 검증된 맛의 밀키트를 사서 10분 만에 차려내고 남은 시간에 가족끼리 웃으며 대화하는 게 훨씬 남는 장사라고 생각한다. 차례상에 올리는 음식의 출처가 내 손맛인지 공장 손맛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 음식을 차려내는 과정에서 가족의 평화가 지켜졌느냐다.
덕분에 명절 풍경은 일종의 완전 범죄 현장이 된다. 새벽에 배송된 동그랑땡과 산적 꼬치를 프라이팬에 살짝 데운 뒤, 예쁜 접시에 옮겨 담으면 감쪽같다. 어차피 기름에 지지면 다 똑같은 전 냄새가 난다. 며느리와 사위들은 이 완벽한 위장술을 통해 효도라는 명분과 휴식이라는 실리를 동시에 챙긴다. 혹자는 정성이 부족하다고 혀를 찰지 모르지만, 구매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에도 나름의 간절한 정성은 담겨있다.
심리적으로는 일종의 면죄부 구매다. 조상님도 고물가와 취업난으로 고통받는 후손들의 사정을 저승에서 다 보고 계실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규격화된 맛을 보장하는 대기업의 제품이 차라리 낫지 않겠냐는 자기합리화가 지갑을 열게 한다. 결국 우리가 명절 밀키트에서 사는 건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명절 증후군 없는 평화로운 연휴다.
이번 설날, 차례상에 올라온 전 모양이 너무 완벽하게 동그랗거나 맛이 기가 막히게 균일하다면 모른 척 넘어가 주자. 그건 조상님을 무시한 게 아니라, 고물가 시대에 가정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 자식들의 스마트한 생존 전략이니까. 사과값이 금값인 시대, 조상님도 쿨하게 이해해 주시리라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