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3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전용기 마린 원 탑승에 앞서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EPA)
국회가 대미투자특별법 3월 통과를 목표로 신속처리 절차를 밟기 시작했고, 정부 역시 특별법 통과에 앞서 대미투자 약속을 이행하기 위한 임시 추진체계를 가동하는 등 전방위 대응에 나섰지만, 산업계는 당장 내일 상황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 재인상 추진을 예고하는 관보 게재를 아직까지 안 하고 있다는 점은 다행스럽지만, 그렇다고 미국이 계획을 철회한 것도 아니다.
통상 당국 관계자와 전문가 다수는 이번 관세 재인상 실행 여부를 떠나, 트럼프 대통령의 남은 3년 임기 내내 불확실성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합의한 한미 관세합의를 잘 이행함으로써 눈앞의 관세 재인상에 이르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실적으론 트럼프발 불확실성을 ‘상수’로 받아들인 채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관세 재인상, 트럼프 행정부의 진짜 의도는
이번 행보가 이전과는 다소 다르다는 해석이 나온다. 협상을 앞두고, 아무런 예고 없이 올라오는 소셜 미디어(트루스소셜)의 거친 발언이라서가 아니다. 트럼프 행정부 1~2기 5년여에 걸쳐 이 같은 행태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오히려 이전보다 구체적이고 정제됐다는 점이 이례적이다. 우리 국회의 대미투자특별법 지연을 정확히 지목해 문제삼았고, 그 결과로 관세 재인상을 예고했다. 평소의 돌발적 언행이 아니라 행정적 보고 체계를 거쳐 나온 정상적 통치 행위였을 수 있다는 것이다.
통상 전문가들은 이 같은 미묘한 변화까지 고려해가며 미국 측의 진의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힘을 앞세워 거친 발언을 한 후 상대방으로부터 최대한의 양보를 이끌어내던 기존 트럼프식 협상 공식과는 또 다른 변화가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유력한 배경으로는 트럼프 행정부 스스로의 조급함이 꼽힌다. 옛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의거한 미국 상호관세 부과 조치에 대한 미국 연방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임박해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겉으론 승소, 혹은 후속 대책 즉각 발효를 통한 관세 유지를 자신하고 있지만 상호관세 위헌 판결 시 큰 혼란이 불가피하다.
미국 내 입지도 좋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해 12월 갤럽 여론조사 결과 37% 미만으로 1930년대 이래 가장 낮았던 것으로 알려졌고, 갤럽은 그후 석연찮은 이유로 88년 역사의 대통령 여론조사를 중단한 상태다. 최근 미국 연방 하원에선 캐나다 관세 부과 반대 결의안이 여당인 공화당의 이탈표 끝에 통과되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 한국 등 주요국과의 관세합의를 주도한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도 미국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과의 관계를 거짓 부인하며 사퇴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에 부정적 여론이 이어질 경우 조기 레임덕에 빠질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을 본보기 삼은 것 아니냐는 해석이 뒤따른다. 최대 교역 상대방인 유럽연합(EU)은 연초 미국의 그린란드 점유 발언에 따른 갈등으로 추가적인 갈등 유발에 부담이 커진 가운데, 미국과의 관세합의 과정에서 주요국 중 유일하게 입법 절차를 추진키로 한 한국이 공세의 타깃이 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에 대한 관세 재인상 압력을 시작으로 일본에 대해서도 대미투자가 늦어지고 있다며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고, 최근 대만과도 25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약속을 전제로 상호관세를 20%에서 15%로 낮추는 데 합의하는 등 주요 우방에 대한 대미투자 압력을 강화하고 있다.
◇대미투자·비관세장벽 협의도 쉽지 않을듯
미국이 3주째 한국에 대한 관세 재인상 예고를 관보에 올리지 않은 건 일단 긍정적인 신호로 읽힌다. 전례상 일주일이면 가능한 관보 게재를 아직 하지 않고 있다는 건 당장은 게재할 의향이 없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통상당국 안팎에선 트럼프의 관세 재인상 발언 직후 이뤄졌던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과 조현 외교부 장관의 대미 접촉, 그리고 국회의 대미투자 특별법 조기 처리 추진과 정부의 대미투자 준비 체계 조기 가동 등 일련의 조치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2월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대미투자특별법 처리를 위한 특별위원회 구성의 건이 가결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다만, 대미투자특별법 통과만으로 미국 관세 불확실성을 완전히 걷어내기는 어렵다는 게 당국 관계자와 통상 전문가의 공통된 견해다.
우선 3500억달러(약 500조원) 규모의 대미투자가 본격적으로 추진되더라도 투자사업 선정 논의가 원활치 않을 가능성이 크다. 양국 모두에 이익이 되는 ‘상업적 합리성’을 전제하고 있다지만, 최종 결정권은 미국에 있는 만큼 미국은 언제든 관세를 무기로 한국의 의사결정권을 박탈할 여지가 있다. 애초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논의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일찌감치 논의를 시작한 일본 역시 큰 틀에서의 대미투자 계획은 확정했으나 구체적인 1호 투자사업 협의는 난항을 겪고 있다.
대미투자 협의가 원활히 이뤄지더라도, 비관세장벽 협의가 남았다. 트럼프가 직접 문제삼은 건 대미투자 지연이지만, 농산물 교역부터 자동차 환경규제, 디지털 규제에 이르는 비관세 장벽 역시 풀기 어려운 숙제다. 한미는 지난해 12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를 열어 세부 이행계획을 채택기로 했으나 미국 측의 연기 이후 아직 열지 못하고 있다.
한 통상 관계자는 “애초에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구속력 없는 합의 아래 이뤄지는 협상”이라며 “미국 측이 관세 재인상 방침을 철회하거나 유예하더라도 협상이 여의치 않을 때마다 같은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어 “당국으로선 대미투자 및 비관세장벽 해소 노력을 전제로 현안을 안정적으로 관리해나가는 한편, 미국과 주변국의 동향을 면밀히 살피며 중장기 대응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