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각 파빌리온인베스트먼트 회장은 한미 투자패키지 문제가 단기 이슈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국가 간 계약이기 때문에 민주당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취소는 불가능하다”고 전망했다. (사진=이영훈 기자)
윤영각(73) 파빌리온인베스트먼트 회장은 한미 관세협상 합의에 따른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했다. 일본이 5000억달러를 요구받은 것과 비교하면 액수는 적지만 우리 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일본은 보유 채권만 팔아도 감당할 수 있지만 우리는 구조가 다르다”고 말했다.
한국은 향후 2000억달러의 직접 투자와 1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조선 협력 투자를 이행해야 한다. 윤 회장은 “1500억달러를 조선업으로 묶어낸 건 그나마 잘한 선택”이라며 “자금은 나가지만 산업은 남는다”고 평가했다. 반면 “3500억달러 가운데 최소 2000억달러는 미국이 가져가는 구조”라며 “이 정도 자본 유출은 국내 경제에 공황에 가까운 충격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이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 임기와 무관하게 이어질 사안이라고 예상했다. 윤 회장은 “국가 간 계약이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어도 취소는 어렵다”며 “일본도 결국 요구를 이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회장은 해법으로 정부와 기업이 함께 참여하는 상설 ‘모니터링 커뮤니티’ 구성을 제안했다. 그는 “미국이 최종 결정을 하더라도 우리의 이해를 관철할 채널이 필요하다”며 “아무 전략 없이 내주면 3500억달러는 한국 경제를 비워내는 비용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과 연계해 이 자금을 활용토록 지속 협의해야 달러 유출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수합병(M&A) 업계의 큰손’으로 불려 온 윤 회장은 국내 대표 회계·컨설팅 기업인 삼정KPMG를 20년간 이끌어온 인물이다.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맏사위로도 잘 알려졌다. 기업과 시장, 국가의 변곡점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그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미국에 일찍 건너갔다.
△고교 때 공부를 안 했다. 가수 윤형주, 극단 ‘학전’ 대표를 지낸 고 김민기 씨가 선배들이다. 함께 보이스카우트를 하면서 음악에 심취했다. 친구들과 밴드를 만들어 활동했다. 한마디로 쫌 놀았다. 부모님이 보기엔 ‘글렀다’고 생각했는지 미국으로 쫓아 보냈다. 그래서 고3 때 미국에 혼자 건너갔다. 조지타운 랭귀지스쿨을 다니면서 영어를 배웠다.
-미국 명문대에서 경제학, 경영학을 공부하고 미국 공인회계사 및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사실 미국에서 정신을 좀 차린 사례다. 당시에는 해외 송금이 안 될 때였다. 그래서 생활비를 벌어서 공부를 해야 했다.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정말 열심히 병행했다. 나름 기대에 부응하지 않았나 싶다. 아버지께서 미국에서 공부하더라도 미국 ‘앞잡이’가 돼서는 안된다고 하셨다. 배워서 한국을 위해 일하라는 거였다. 사실 미국을 위해 일했다면 훨씬 많은 돈을 벌었을 거다. 파격적인 제안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아버지의 그 말씀 때문에 못 갔다.
-미국의 유수한 기업과 회계법인, 법률사무소 등에서 근무하다 1991년에 귀국해 삼정KPMG그룹을 설립하고 국내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1981년을 전후해 미국이 통상법을 굉장히 강화했다. 이른바 ‘슈퍼301조(미국 무역대표부가 불공정 무역국을 지정해 시정 요구를 하고 이를 따르지 않으면 보복 관세 등 강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한 강력한 통상 압박 수단)’를 비롯해 각종 통상 규제를 본격화했다. 1980~1990년대 한국을 포함한 여러 수출국이 주요 대상이 됐다. 당시 로스쿨에서 통상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한국 기업들이 수출을 조금만 해도 무차별적으로 제재를 받는 현실을 직접 보게 됐다. 심지어 길거리에서 음반을 팔아도 통상 문제로 걸릴 정도였다. 미국은 국제경쟁력강화법을 통해 자국 산업을 체계적으로 보호하면서도 다른 나라에는 슈퍼301조 같은 수단으로 강하게 압박했다.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내가 공부한 통상과 법률을 한국을 위해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귀국을 결심했다. 귀국 이후에는 통상 관련 일을 정말 열심히 했다. 정부의 요청을 받아 자문도 많이 했고 한국 기업들이 국제 통상 환경 속에서 불리하지 않도록 돕는 데 힘을 쏟았다. 삼정KPMG를 설립한 것도 그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왜 로펌 대신 회계법인을 선택했나.
△통상 분쟁, 특히 반덤핑 사건을 하다 보니까 결국 핵심은 가격이었다. 반덤핑이라는 게 싸게 팔았느냐를 따지는 문제이지 않나. 그러다 보니 법보다도 회계가 훨씬 중요했다. 법적인 부분은 내가 직접 하면 되는데 문제는 회계사였다. 반덤핑이나 상계관세 사건을 하려면 현지에 가서 기업 자료를 직접 보고 원가 구조를 하나하나 따져야 한다. 그러니까 회계사가 훨씬 많이 필요했다. 실제로 인력 구성도 회계사 비중이 압도적으로 컸다. 처음에는 회계와 법을 같이 했다. 외국에서는 회계사랑 변호사가 한 팀으로 움직이는 게 자연스러웠다. 자격에 맞게 각자 역할을 하면 되니까. 그런데 당시 한국은 제도가 꽤 까다로워서 법무법인은 변호사 자격자만 할 수 있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판단했다. 그때 가장 필요하다고 느낀 건 회계였고 거기에 집중하려고 했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삼정이 성장했다는 말이 나온다.
△잭 웰치는 “강한 사람이나 똑똑한 사람이 아닌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사람이 살아남는다”고 말했다. 나 역시 시대 변화를 읽는 것이 경영의 핵심이라고 믿어왔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은행이 무너지고 부실채권이 쌓이던 시기, 재무분석보다 부실채권과 구조조정을 아는 전문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당시 우리나라엔 자산유동화법도 없었다. 미국에 있는 지인들의 자문을 백서로 정리해 정부에 제출했고 그게 자산유동화법의 기초가 됐다. 부실채권은 유동화하지 않으면 팔 수가 없다. 묶어서 시장에 내놓아야 신규 자금이 들어오고 그래야 구조조정도 가능하다. 실제로 자산유동화가 가능해지자 해외자본이 들어오고 구조조정도 본격화됐다. 이런 흐름을 주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이 우리 쪽으로 몰렸다.
윤영각 회장은 일본의 미쓰비시와 함께 기후테크를 전문으로 투자하는 펀드, ‘마루노우치 이노베이션 파트너스’도 설립했다. 그는 “컨설팅과 회계법인에서 일한 뒤 투자 쪽으로 영역을 넓혀 자산운용사를 설립했다. 당시 기후변화 이슈가 본격적으로 부상하면서 제조업 중심인 한국이 탄소 배출을 줄이거나 대체에너지를 키우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고 봤다. 문제는 기술이었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는 관련 기술과 경험이 부족했다. 그래서 일본 미쓰비시와 함께 기후테크에 특화된 펀드를 만들어 직접 투자에 나섰다. 우리 기업들에게도 이런 방향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사진=이영훈 기자)
△우리나라 국내 총생산(GDP)가 지금 1조 8000억~1조 9000억달러(2613조~2758조원) 수준이다. 그런데 홍콩이나 싱가포르를 보면 우리보다 훨씬 잘 번다. 싱가포르는 1인당 GDP가 9만달러로 우리보다 2.5배쯤 높다. 국토도 좁고 인구가 5000만명이 넘는 한국에서 국내 생산만으로 1인당 GDP를 8만~9만달러까지 끌어올리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1960년대부터 근대화를 시작해 여기까지 왔지만 이제 GDP 2조달러를 전부 국내에서 만들어내는 구조는 한계에 다다랐다. 답은 해외에 있다. 해외에서 벌어서 가져와야 한다. 싱가포르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수출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지 기업을 전략적으로 인수·합병(M&A)해 가치와 수익을 국내로 가져오는 방식이 필요하다. 시도는 늘고 있지만 쉽지 않다. 그래서 더 길게 보고, 더 전략적으로 가야 한다.
-맞다. 요즘은 회사를 자력으로 일으키는 게 어려운 구조다.
△자력으로 회사를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 결국은 사와야 한다. 노하우를 처음부터 내부에서 만드는 건 쉽지 않다. 이미 잘돼 있는 회사를 인수하는 게 훨씬 빠르다. 문제는 사놓고도 운영을 못 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그래서 관리역량이 중요하다. 처음부터 직접 M&A에 나서기엔 부담이 크다. 나는 우회적인 방식을 권한다. 예를 들어 화학산업에 관심이 있다면 국내에 없는 기술에 투자하는 해외펀드에 먼저 들어가는 거다. 투자자로 참여하면 산업 흐름과 정보를 자연스럽게 보게 된다. 그러다 펀드가 투자한 기업 중에서 ‘이 회사다’라고 생각되는 곳이 있으면 인수를 검토하면 된다. 일본 기업들도 초기에 이런 방식을 많이 활용했다. 소수 지분으로 시작해 점점 지분을 늘려 회사를 가져왔다. 펀드에 LP(Limited Partner·출자자)로 참여해 코인베스트 방식으로 투자하면 단순 투자자를 넘어 정보 접근과 일정 수준의 영향력도 확보할 수 있다. 이런 단계적 접근이 가장 현실적이다.
-최근 파빌리온그룹을 글로벌 ‘머천트 뱅크’(Merchant Bank)로 전환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는데.
△기업들 중에는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곳이 적지 않다. 머천트뱅크의 역할은 바로 거기서 시작된다. 단순히 보고서만 쓰는 컨설팅이 아니다. 어떤 사업을 해야 할지 방향을 잡고 재무 구조까지 함께 설계한다. 맥킨지식 전략 컨설팅과는 다르다. 전략을 정한 뒤에는 M&A를 실제로 실행할 수 있도록 펀드 조성, 자금 조달, 금융 구조 설계까지 맡는다. 투자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인수 이후에도 회사가 제대로 성장하도록 끝까지 관리하고 자문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가는 구조다. 한국에는 이런 의미의 머천트뱅크가 사실상 없다. 유럽은 이 분야가 강하고 미국은 투자은행이 중심이다. 한국에도 경쟁력 있는 중견기업은 많지만 ‘그다음 단계’를 모른다. 그 한 걸음을 떼도록 도와줄 역할이 필요하다. 일본과 유럽은 그렇게 성장해 왔다.
-머천트 뱅크로의 전환은 장남인 윤재호 대표가 이끄는 건가.
△후계자 역할을 염두에 두고 있다. 아들이 내세운 키워드가 ‘머천트뱅크’다. 디지털과 인공지능(AI) 시대에 들어선 지금의 이 영역은 솔직히 우리 세대가 잘 알지 못한다. 모르는 분야를 붙잡고 있을 수는 없다고 봤다. 결국 젊은 세대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기업의 세대교체는 선택이 아니라 시기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AI 시대로 넘어온 지금이 바로 그 시점이고 한국 기업들도 과감하게 세대교체를 해야 할 때다.
-맞다. 세상이 바뀌고 있다.
△막상 해놓고 보니 너무 편하다.
윤영각 회장은 일본 상사의 경쟁력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일본 종합상사는 속도부터 다르다. 미쓰비시에서 영어 못하는 직원을 본 적이 없다. 대학 졸업 전부터 사람을 뽑아 영어 교육시키고 기준에 못 미치면 바로 탈락시킨다. 그렇게 선별된 인력을 해외 지사로 내보내니 ‘일본 회사’가 아니라는 느낌을 받는다. 이들은 상사를 통해 언제 투자하고 언제 팔아야 하는지 기회를 몸으로 익힌 조직이다. 트레이딩과 투자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정보와 경험을 갖고 있다. 반면 한국은 한때 10여개나 있던 종합상사가 거의 다 사라졌다. 미쓰비시처럼 상사 조직을 투자 조직으로 진화시켰다면 한국 GDP는 지금보다 훨씬 커졌을 거다. 정보와 판단 능력을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대우인터내셔널을 인수한 포스코인터내셔널이 해외 투자로 1조원 이상의 성과를 낸 사례만 봐도 답은 분명하다.” (사진=이영훈 기자)
△다른 나라가 어려워질 때 그걸 기회로 삼는 기업들이 있다. 우리가 그동안 ‘먹튀’를 당했다고 느끼는 것도 결국은 우리가 약해서다. 선진국이 되려면 그만한 자본력과 역량을 갖춰야 한다. 과거에는 해외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세제 혜택과 금융 지원을 과도하게 줬고 그 결과 돈을 벌고 빠져나가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 부분은 지금은 많이 조정됐지만 교훈은 분명하다. 싱가포르는 자본 유입은 자유롭게 두되 단기 차익만 노리는 자금은 쉽게 못 나가게 막는다. 우리는 그런 장치가 부족했다. 중·후진국 단계에선 유치가 우선이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선진국 문턱에 선 만큼 우리 경제를 보호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더 나아가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름을 달고 한국에 피해를 주는 한국계 미국인들도 있다.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남기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우루과이라운드(UR: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의 제8차 다자간 무역협상)가 타결된 1993년 이후 반덤핑법 개정의 적절성을 검토하는 국제회의에 우리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회의에 정부 요청으로 동행했다. 160여개국이 모인 자리에서 한국은 테이블 맨 끝에 앉아 있었다. 미국 통상법을 논의하던 중이었지만 손을 들어도 발언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팻말을 흔들었고 그제서야 “누구냐”고 묻더라. 한국이라고 하니 말해보라고 해서 미국법의 몇 가지 허점을 지적했다. 이후 쉬는 시간마다 미국 대표가 찾아왔다. 처음엔 무마하려 했고 나중엔 노골적으로 불편해했다. 그 과정에서 “너희 나라는 대통령이 왜 늘 감옥에 가느냐”라는 말까지 듣자 “닉슨도 비슷한 경우가 아니냐”고 받아쳤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당시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은 분명히 약했다. 그 경험을 계기로 한국의 반덤핑법 제정에도 관여했다. 미국 기업의 덤핑을 한국 입장에서 조사해 제소까지 이끌었다. 정치가 아니라 전문가로서의 역할이었다. 이후 국회의원 제안도 받았지만 관심은 없었다. 대신 내 방식대로 국가에 기여해 왔다고 생각한다.
-다국적 포렌식 컨설팅 기업 포렌식리스크얼라이언스(FRA)의 고문도 맡고 있다.
△국내법에는 기업의 부정행위를 발견하는 즉시 이를 조사할 외부 전문가를 선임토록 되어있다. 통상 거대 회계법인이 맡던 이 역할을 FRA가 맡는 식이다. 그래서 2년 반 전에 영국에 본사를 둔 포렌식 회계 전문 기업과 합작해 포렌식 컨설팅을 시작했다. 국내 몇몇 기업을 디지털로 데이터를 돌려 보는데 한국은 ‘횡령 공화국’이었다. 직원이 하기도 하고 총수가 경리와 짜고 하기도 한다. 돈 버는 사람과 빼먹는 사람이 따로 있는 구조였다. 안 걸릴 것으로 생각하지만 패턴은 다 남는다. 이 상태로는 선진국 진입이 어렵다. 제대로 찾아내고 바로잡아야 기업도, 나라 경제도 정화된다.
-경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실적 디커플링’ 현상과 함께 주식시장은 활황을 보이고 있다.
△주식시장은 늘 ‘바람’을 탄다. 지금은 AI·반도체 바람이다. 대선 전후로 불기 시작한 이 흐름이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지수는 5000선을 넘겼지만 솔직히 불안하다. 실적을 앞질러 간 상승이다. 삼성전자(005930)나 SK하이닉스(000660)가 한 번만 삐끗해도 시장은 급락한다. 그때 손실은 크다. 투자자는 지금 정말 선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ETF도 더 오를 수는 있겠지만 전반적으로는 오버슈팅 구간에 들어왔다고 본다. 오버슈팅은 반드시 조정을 부른다. 환율, 경기 모두 걱정스럽다. 수입업체들은 이미 한계다. 외환위기 때처럼 부실채권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일부 섹터를 제외하면 경기 체력은 약하다. 손실은 결국 은행으로 넘어갈 것이고 자금력이 튼튼해도 실적 악화는 피하기 어렵다. 그래서 나는 ‘MPA’(Mortgage Portfolio Acquisition·주택저당채권 포트폴리오 매입) 비즈니스를 다시 고민하고 있다. 위기 국면에서는 기회가 된다. 채권에 붙은 담보, 특히 부동산을 보는 일이다. 방산·전자·AI는 활황이지만 그 외 산업 대부분은 쉽지 않은 국면에 들어가고 있다.
-요즘 고민이 궁금하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으로서 ‘내가 져야 할 십자가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늘 붙들고 있다. 그 고민은 개인적인 차원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나라와 무관하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요즘은 바로 그 지점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다. 동시에 국가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도 고민 중이다. 어떤 보상이나 대가를 바라는 마음은 전혀 없다. 자리를 원하거나 직함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그동안 쌓아온 경험과 배움을 국가를 위해 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회사와는 상관없이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 계속 묻고 있다.
윤영각(왼쪽) 회장과 예종석 명예대기자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이영훈 기자)
△1953년 경북 청송 △경기고 △미국 펜실베니아대 졸업 △미 시카고대 MBA(경영학 석사) △미 듀크대 법학박사(JD) △미 뉴욕주 공인회계사 △미 뉴욕주 변호사 △삼정KPMG 창업 △파인스트리트그룹 설립 △KTB프라이빗에쿼티(KTB PE) 회장 △현 파빌리온그룹 회장 △현 FRA(Forensic Risk Alliance) 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