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을 겨냥한 배터리·에너지 분야 통상 압박을 강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K-배터리에 기회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미국의 탈중국 기조가 구조화될 경우 국내 기업에 반사이익이 돌아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거듭된 관세 정책 변화로 사업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낙관론을 경계해야 한다는 신중론도 적지 않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한 새로운 국가안보 관세 도입을 검토 중이다. 대상에는 대용량 배터리와 전력망, 통신 장비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232조는 수입품이 국가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될 경우 대통령이 관세 등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미 의회에서는 중국산 ESS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도 발의됐다. 그레그 스튜비 하원의원이 최근 제출한 '유해한 적대적 재충전 및 발전 에너지 대응법(CHARGE)'은 중국 법에 따라 설립됐거나 중국 공산당의 통제·감시 아래 있는 기업의 기술로 제조된 에너지저장장치(ESS)의 미국 수입을 중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위반 시 최대 5년 이하 징역 또는 25만 달러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업계는 해당 법안이 미국 ESS 시장의 약 80%를 차지하는 CATL과 BYD 등을 겨냥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도 중국산 ESS 배터리에는 40%대 고율 관세가 부과되고 있지만, 미국 내 점유율을 낮추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판단이 깔렸다는 해석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미연방대법원이 트럼프 행정부의 '상호관세'에 대해 위법 판단을 내린 이후 나왔다. 앞서 업계에서는 상호관세 위법 결정으로 중국산 ESS용 배터리에 적용되던 48.4% 관세율이 43.4% 수준으로 5%포인트(p) 낮아지면서 중국산 배터리의 가격 경쟁력이 더욱 강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여전히 40%를 웃도는 고관세가 적용되지만, 중국 업체들이 정부 보조금과 대규모 생산능력을 바탕으로 낮은 제조원가 구조를 확보했다. 관세 부담이 일부만 완화돼도 미국 시장에서 체감 가격이 빠르게 낮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는 232조를 근거로 한 추가 관세 검토와 관련 법안 논의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중국산 배터리의 가격 경쟁력이 부각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대중 견제가 강화되면서 한국 기업에 기회가 열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미국 현지 생산을 확대해 온 K-배터리 업체들에는 기회 요인이 될 수 있다. LG에너지솔루션(373220), 삼성SDI(006400), SK온 등은 전기차 업황 둔화를 돌파하기 위해 ESS 사업을 확대하는 동시에 북미 생산기지 확충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지 생산을 통해 미국의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를 적용받을 경우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특히 미국이 중국산 배터리에 대한 추가 관세 부과나 수입 제한 조치를 강화할 경우 규제 부담이 상대적으로 낮은 한국 기업으로 수요가 이동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업계 관계자는 "탈중국 공급망 재편이 본격화되면 한국·일본 기업이 대안으로 부각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업계 안팎에서는 정책 변동성 자체가 가장 큰 리스크라는 지적이 나온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행정부가 추진한 정책이 사법 판단으로 뒤집히는 상황 자체가 기업에는 부담"이라며 "관세 체계가 바뀌면 구매 계획과 원가 산출, 투자 일정까지 모두 다시 계산해야 한다. 정책 변동성이 더 커진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산 배터리를 규제하기 위한 법안 역시 발의 단계에 불과해 향후 입법 과정에서 내용이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중국산 ESS 배터리 셀의 미국 판매가 전면 차단될 경우 국내 업체에는 명확한 호재가 될 수 있지만, 규제 범위가 시스템 일부에 국한되거나 예외 조항이 포함될 경우 기대 효과는 제한적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결국 미국의 대중 통상 기조 수준과 관세·입법 조치가 실제로 실행될지 여부가 K-배터리의 수혜 강도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는 "확정된 정책이 나오기 전까지는 기대와 경계를 병행해야 한다"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