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봉쇄에 '나프타 쇼크'…석화업계 연쇄 셧다운 공포 확산

경제

뉴스1,

2026년 3월 09일, 오후 04:23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나프타 수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석유화학 업계가 가동 중단 위기에 직면했다. 국내 최대 에틸렌 생산기지인 여천NCC가 업계 최초로 불가항력을 선언했고 롯데케미칼(011170)과 LG화학(051910), 대한유화(006650) 등 주요 석유화학 기업들은 공장 가동률을 낮추거나 정기 보수 일정을 앞당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국내 석화기업들이 사용하는 나프타의 절반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고 이 물량의 절반 이상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국내로 들어오고 있다.

특히 중동 주요 산유국들까지 잇따라 생산 감축에 들어가면서 원료 공급 불안은 더욱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국내 석유화학 단지 전반으로 '연쇄 셧다운'이 확산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여천NCC 최초 '불가항력' 선언…도미노 가동 중단 위기

9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최대 에틸렌 생산기지인 여천NCC가 지난 4일 고객사에 제품 공급 이행 지연을 통보하며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선언했다. 불가항력은 전쟁 등 통제 불가능한 외부 요인으로 계약 이행이 어려울 때 책임을 면제받는 조치다.

국내 석화 기업이 이를 선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여천NCC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인해 3월 인도 예정이었던 원료 나프타의 도착이 크게 지연되면서 더 이상 정상적인 제품 공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여천NCC만의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다. 국내 석유화학 기업 대부분이 나프타를 핵심 원료로 사용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주요 NCC 업체들이 보유한 나프타 재고는 약 2주 수준으로 파악된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할 경우 원료 부족이 빠르게 현실화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의 나프타 공급 구조도 취약한 편이다. 국내에서 사용되는 나프타의 약 절반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약 54%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 들어온다. 나머지 절반은 원유를 들여와 국내 정유사들이 정제해 공급하는 구조다. 그러나 이 역시 중동 의존도가 높아 원유 가격 상승의 영향을 직접 받는다.

실제 국제 나프타 가격과 국제원유 가격은 빠르게 치솟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CIS에 따르면 지난 8일 기준 국제 나프타 가격은 톤(t)당 약 737달러로 전쟁 전 대비 약 25% 급등했다. 중동 지역 공급 차질이 현실화하면서 대체 수입 물량 확보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국제 원유 가격도 급등하고 있다. 중동 사태 이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110달러를 넘어섰고 일부에서는 150달러까지 상승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게다가 산유국 5위인 쿠웨이트가 감산에 돌입했고 아랍에미리트(UAE) 등 인접 국가들도 감산을 예고하면서 원료 수급 불확실성은 극에 달했다.

이미 롯데케미칼(011170)과 LG화학(051910), 대한유화(006650) 등 주요 석유화학 기업들은 공장 가동률을 낮추거나 정기 보수 일정을 앞당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현재 약 70~80% 수준인 국내 NCC 평균 가동률이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재고 상황을 고려하면 단기 대응은 가능하지만 해협 봉쇄가 한두 달 이상 지속되면 대부분의 NCC가 원료 부족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11일 오후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 여천NCC 3공장 앞.2025.8.11 © 뉴스1 김동수 기자


가격 전가 막힌 석화업계…중국발 공급과잉에 재편 동력도 약화

석유화학 업계는 관세 인상에 따른 비용 상승이 발생하더라도 이를 제품 가격에 전가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점을 가장 큰 부담으로 꼽는다. 중국발 공급 과잉이 장기화하면서 글로벌 석화 제품 가격이 이미 낮은 수준에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신용평가사인 나이스신용평가는 최근 보고서에서 "석유화학 업황은 구조적 공급 과잉 국면에 있어 원료 가격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즉각적으로 전가하기 어려운 환경"이라며 "국제 유가 변동과 원료 조달 환경 변화가 기업 실적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적 수익성 악화가 국내 석유화학 산업 재편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시설 통폐합과 고부가가치 제품 전환을 위해서는 막대한 투자 자금과 기초 체력이 뒷받침돼야 하지만 원료 수급난과 마진 악화가 겹치며 기업들의 재무 건전성이 급격히 저하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 가동률을 유지하기 위해선 비싼 대체 나프타를 도입해야 하는데 미래를 위한 투자 재원을 마련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결국 '호르무즈 쇼크'가 장기화할 경우 국내 석화 기업들은 체질 개선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고사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이미 가격 경쟁이 심한 상황에서 원가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기는 사실상 어렵다"며 "수익성이 계속 악화하면 설비 효율화나 사업 재편 같은 중장기 전략도 추진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kha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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