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평택시 포승읍 평택항 인근 주유소에서 화물차가 주유를 하고 있다. 2026.3.12 © 뉴스1 김영운 기자
정부가 치솟는 기름값을 잡기 위해 13일부터 석유류 '최고가격제'를 시행하는 초강수를 꺼내 들었다. 중동 사태 장기화로 국제유가가 요동치며 물가 상승 대란 우려가 커지자, 주유소에 기름을 공급하는 정유사의 도매가격을 강제로 억누르는 직접적인 시장 개입에 나선 것이다.
정부는 최고가격제 시행과 함께 매점매석 금지령을 발동해 단기적인 하향 안정화를 꾀한다는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생활물가 상승을 차단하는 1차 방어선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면서도, 제도가 장기화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시장 부작용에 대해서는 꼼꼼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정유사 도매가 통제 초강수…휘발유 109원·경유 218원 묶어
12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국내 석유가격 급등세를 진화하기 위해 13일 0시를 기해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를 전격 시행한다. 이번 최고가격제는 주유소의 최종 판매가격이 아닌, 정유사가 주유소 및 대리점 등에 넘기는 '공급가격'(도매가)을 기준으로 적용된다.
1차 최고가격은 1리터(L)당 보통휘발유 1724원, 자동차용 경유 1713원, 등유 1320원으로 확정됐다. 이는 지난 11일 기준 정유사 평균 공급가격(휘발유 1833원, 경유 1931원, 등유 1728원)과 비교해 각각 109원, 218원, 408원 저렴한 수준이다. 이 가격은 13일부터 26일까지 2주간 적용되며, 오는 27일 국제제품가 상승률 등을 반영해 2차 최고가격을 재조정할 계획이다.
정부는 제도의 안착을 위해 정유사 대상 사후정산 세부 기준을 마련하는 한편, 산업부와 재경부 합동으로 '석유제품 매점매석행위 금지 고시'를 발동해 정유사와 주유소의 반출 감소 및 판매 기피 행위를 사전에 차단하기로 했다.
유가 120달러 시나리오에 물가 비상…1년 전보다 200~300원 비싸
정부가 시장 원리에 개입하는 가격 통제 카드를 꺼낸 것은 인플레이션 급등 불씨를 끄기 위해서다. 체감 물가와 직결되는 기름값이 가공식품, 공산품, 운송비 등으로 번지는 것을 초기에 차단하겠다는 의도다.
최근 유류 가격은 중동발 지정학적 위기를 짙게 반영하며 연일 고공행진 중이다. 한국석유공사의 유가정보 사이트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 5일 1리터(L)당 1842.23원이던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불과 일주일 만인 11일 1950.48원까지 수직 상승했다. 같은 기간 자동차용 경유 역시 1822.38원에서 1931.25원으로 급등하는 등 불과 일주일 만에 1리터당 100원 이상 치솟는 뚜렷한 폭등세를 연출하고 있다.
1년 전인 2025년 3월 기준 휘발유가 1700원 내외, 경유가 1550원 내외에서 안정적으로 거래되던 것과 비교하면 불과 1년 만에 1리터당 250~380원가량 폭등한 셈이다. 이처럼 유류 가격이 크게 뛴 상태가 유지될 경우, 기저효과가 더해져 당장 이달(3월)에 발표될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당초 예상을 훌쩍 뛰어넘어 크게 높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한은이 당초 제시한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 2.2%는 브렌트유 연평균 가격이 1배럴당 64달러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제하에 산출됐으나, 최근 국제유가는 한때 120달러 선을 위협할 정도로 전제치를 크게 웃돌고 있다.
금융시장에서는 갈등 장기화로 유가가 120달러 이상으로 치솟을 경우, 올해 4분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를 훌쩍 넘길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120달러까지 오를 경우 물가 상승 압력이 2.02%p까지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제유가가 급등한 12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브렌트유, 두바이유 선물 가격이 표시되고 있다. 2026.3.12 © 뉴스1 김도우 기자
"단기 하향 안정화 효과 뚜렷…수급 및 행정 부담은 과제"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단기적인 물가 상승세를 진화하는 데는 분명한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정유사의 도매가격을 선제적으로 묶음으로써 주유소 판매가 상승 압력을 즉각적으로 덜어내고, 궁극적으로 인플레이션 심리를 억제하는 '방파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최고가격제를 통해 유류 가격이 단기적으로 하향 안정화되는 효과는 뚜렷하게 나타날 것"이라고 짚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역시 "지금과 같이 급등하는 이례적인 상황에서는 정부가 개입할 필요성이 있다"며 "정부가 차액을 보전해 준다면 소비자들은 당장 싼 가격의 혜택을 볼 수 있어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제도의 실효성과 시장 안정을 위해 꼼꼼하게 짚어봐야 할 과제들도 함께 거론된다. 최종 판매가(소매가)가 아닌 도매가 통제인 만큼, 그 혜택이 소비자에게 온전히 닿을지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이다.
민세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유사를 통한 도매가 통제라 정작 소비자들의 체감도가 기대만큼 높지 않을 수 있다"며 "가격이 어느 정도 유지되어야 자발적인 에너지 절약 유인이 생기는 측면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행정적 효율성을 고려할 때 유류세 인하 등 활용하는 방안이 더 나을 수 있다는 조언도 나왔다. 김정식 교수는 "원가 이하로 최고가격을 매기고 손해를 재정으로 보조하는 방식은 행정 절차가 복잡해질 수 있다"며 "시장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향후에는 유류세 인하 폭을 확대해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이 더 간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수급 측면의 불확실성도 주시해야 할 대목이다. 강성진 교수는 "수입 가격이 계속 변동하는 상황에서 시장 균형 가격을 인위적으로 조정하면 일부 사재기나 수급 불안이 나타날 여지가 있다"고 언급했다.
min785@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