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후 강원 영월군 청령포에 여행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조선 6대 임금 단종을 다룬 영화 '왕과 사는 남자'(왕사남)의 누적 관객 수가 1000만 명을 넘어선 가운데, 단종 유배지였던 청령포에 영화 관람객을 비롯한 관광객들이 배를 타며 여행을 즐기고 있다. 2026.3.8 © 뉴스1 신관호 기자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관객 수 1200만 명을 돌파한 가운데 스크린 속 서사에 따른 전국의 역사 유적지가 누군가에겐 '추모의 성지'로 누군가에겐 '분노의 배출구'로 재편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14일 관광업계 및 관련 지자체 등에 따르면, 영화의 주요 배경이 된 강원 영월군과 악역들의 유적지가 위치한 경기 남양주, 충남 천안 일대의 방문객 데이터와 온라인 평점이 극명한 대비를 보이고 있다.
강원 영월군 시내 일원에서 제53회 단종문화제 단종국장 야간행렬이 펼쳐지고 있다. 2019.4.27 © 뉴스1
"단종의 눈물 닦아주러"…영화 속 그곳, 영월로 향하는 발길
영화가 흥행하면서 관객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단종의 마지막 숨결이 머문 영월로 향하고 있다.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육지 속 섬'으로 불리는 청령포는 영화 속에서 단종이 한양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던 장소로 묘사되어 팬들의 필수 방문 코스가 됐다.
단종의 시신이 안치된 '장릉'과 그가 유배 생활 중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관풍헌, 그리고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루는 선돌 등은 영화 속 비극적 서사와 겹쳐지며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선 '정서적 성지'로 부상했다.
이에 따라 여행업계는 단종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전용 상품을 쏟아내고 있다.
승우여행사는 오는 6월까지 '왕사남 촬영지 투어'를 운영한다. 선돌, 장릉, 관풍헌 등 영화 속 주요 배경지를 가이드와 함께 걷는 트레킹 상품이다. 코레일관광개발이 내놓은 무궁화호 연계 상품도 인기다. 청령포와 장릉, 선돌 등을 도는 이 패키지는 지역 특산물인 다슬기 해장국 식사를 포함한다.
영월 인근 하이원리조트 역시 유적지 입장권 지참 시 숙박권을 할인해주는 '가치 상생' 프로모션을 통해 영화 특수를 이어가고 있다.
광릉을 다녀온 관광객들의 후기(네이버지도 후기 갈무리)
"나쁜 놈 묘는 어디냐"…지도 앱에 번진 '별점 1점'의 분풀이
반면, 영화에서 악역으로 묘사된 인물들의 유적지는 때아닌 '분노의 성지'가 됐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울창한 숲길로 사랑받던 경기 남양주 광릉은 영화 속 '빌런'의 정점인 세조(수양대군)가 묻힌 곳이라는 이유로 때아닌 별점 테러를 치르는 중이다.
충남 천안에 자리한 한명회 묘소(충남도 기념물 제108호) 역시 평소에는 한적한 향토 유적이었으나, 최근 영화 팬들 사이에서는 반드시 거쳐 가야 할 '빌런 투어'의 필수 코스가 됐다.
주요 포털 지도 앱과 여행 후기 사이트에는 "조카 죽인 왕의 무덤이 너무 과분하다", "영화 보고 화나서 여기까지 찾아왔다"는 등 분노 섞인 관람평과 함께 1점 평점이 실시간으로 이어지고 있다.
박제된 역사가 아닌, 현재 흥행 중인 영화의 서사에 감정을 이입한 관객들이 실제 현장을 찾아가 일종의 '화풀이'를 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천안시청 인스타그램 갈무리)
"무관심보다 악플이 낫다"…지자체, '역발상 마케팅'
이 같은 비호감 여론에도 불구하고, 관련 지자체들은 오히려 이를 적극적인 홍보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특히 천안시는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영화 속 그 빌런의 실제 흔적을 직접 확인하러 오라"며 한명회 묘소를 전면에 내세웠다. 잊혔던 유적지가 영화 덕분에 '빌런의 성지'로 회자되는 현상을 노이즈 마케팅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이승현 천안시 주무관은 "천안에서 서울로 가는 고속도로에서도 한명회 묘소를 볼 수 있어 이동하는 관광객들에게 잠시라도 들리시라는 의미로 재미있게 풀어냈다"며 "영월이 최근 크게 주목을 끈 만큼, 영화 속 주요 인물인 한명회 관련 유적지도 천안에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seulbin@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