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잠한 중동 리스크 금융지원…20조 프로그램 ‘대기 모드'

경제

이데일리,

2026년 3월 15일, 오후 07:19

[이데일리 최정훈 기자] 정부가 중동 지역 지정학적 긴장 고조에 대비해 20조원 규모 정책금융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했지만 실제 지원 실적은 아직 제한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금융당국은 기업 피해가 본격화하기 전 단계인 만큼 당분간은 자금 지원보다는 상황 모니터링과 현장 대응에 무게를 두고 대응한다는 입장이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금융감독원, 연구기관 및 금융시장 전문가 등과 함께 개최한 금융시장 리스크 점검회의를 주재했다.(사진=금융위원회)
15일 금융위원회와 정책금융기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중동 지역 리스크 확대에 대비해 산업은행·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을 중심으로 약 20조3000억원 규모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해 가동 중이다. 중동 지역 수출이나 사업을 진행하는 기업이 물류 차질이나 거래 지연 등으로 유동성 어려움을 겪을 경우 긴급 자금 공급, 대출 만기 연장, 신규 대출 등을 지원한다는 구상이다.

다만 현재까지 실제 지원 실적은 크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만기 연장이나 상담이 이뤄진 사례는 있지만 전체 지원 건수는 미미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책금융기관 가운데 수출입은행은 직접적인 피해 지원은 아직 없고, 위기대응 지원도 아직 미미하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역시 지원 규모가 제한적인 상황이다.

금융당국은 기업들이 당장 자금 지원을 요청할 만큼 피해가 현실화된 단계는 아니라는 판단이다. 현재 기업들이 겪는 어려움도 자금 부족보다는 물류 차질이나 항로 불확실성 등 현장 대응 성격이 더 강하다는 설명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중동 상황과 관련해 기업 애로를 일일 단위로 점검하고 있다”며 “지금은 선박 항로 변경이나 항구 운영 불확실성 등 물류 차질이 먼저 나타나는 단계로 기업들이 곧바로 자금 지원을 요청하는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 내부 회의에서도 금융지원보다는 현지 상황 공유와 대응 방안 논의가 중심이 되고 있다. 관계 부처들은 중동 지역 항만 운영 상황과 항로 변화 등 물류 관련 정보를 공유하며 기업 대응을 지원하고 있다. 금융지원 프로그램도 안내되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기업들의 관심이 자금 지원보다 물류 대응에 더 쏠려 있는 상황으로 전해졌다.

다만 금융당국은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기업들의 유동성 부담이 커질 가능성에 대비해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프로그램은 중동 관련 사업을 하는 기업이라면 비교적 폭넓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설명이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금융위 관계자는 “지원 요건을 크게 까다롭게 두지 않아 중동 관련 사업이 있으면 대부분 지원 대상이 될 수 있다”며 “만기가 도래하는 대출은 상담을 통해 즉시 연장하고 필요하면 추가 대출도 신속하게 지원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향후 물류 차질이 장기화하거나 거래 지연이 누적될 경우 기업들의 자금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 경우 현재 마련된 정책금융 프로그램 활용도도 확대될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가능성에도 대비하고 있다. 금융위는 최근 금융정책국장 주재로 관계기관 회의를 열고 자금시장 동향과 대응 방안을 점검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장 상황이 악화할 경우 ‘시장 소방수’로 불리는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 운용 규모 확대도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채안펀드는 은행·증권·보험 등 금융권이 공동 출자해 회사채와 여전채 등을 매입하는 시장 안정장치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금은 기업들이 자금 부족을 호소하는 단계라기보다 물류와 거래 일정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단계에 가깝다”며 “상황이 길어지면 운전자금 부담이 커지면서 금융지원 수요도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중동 정세와 금융시장 상황을 계속 점검하면서 필요할 경우 추가 대응 방안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현재 금융지원 프로그램은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있고 일부 지원도 이뤄지고 있다”며 “상황 변화를 보며 기업 지원을 이어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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