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공급과잉 이어 나프타 쇼크...잘 버티던 스페셜티 기업도 '위기감'

경제

이데일리,

2026년 3월 16일, 오전 06:45

[이데일리 김성진 기자] 국내 석유화학 업계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졌던 스페셜티(고부가) 기업들에도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로 나프타 수급에 차질이 생기자, 기초유분을 공급하는 NCC(나프타분해설비) 업체들이 연달아 ‘불가항력(Force Majeure)’을 선언하면서 원료 공급망이 끊길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중동 정세 불안으로 인한 나프타 수급 대란 위기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NCC 업체들은 이미 고객사에 계약 물량을 공급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통지를 한 상태이며, 이들 NCC로부터 원료를 납품받는 석화 업체들은 현재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상황이다.

연기 피어오르는 여수 국가산업단지.(사진=연합뉴스.)
국내 석화업체들은 최근 몇 년 전부터 중국발(發) 공급과잉 직격탄을 맞으며 전례 없는 부진을 겪는 중이다. 특히 에틸렌과 프로필렌, 그리고 부타디엔 등 기초유분을 생산하는 기업들은 연속 적자를 피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정부는 여수, 대산, 울산 등 주요 석화 산단을 중심으로 자율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으며, 1분기 내 구체적인 NCC 감산 규모와 합작 구조 등을 발표할 계획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고부가 제품을 생산하는 스페셜티 기업들은 꾸준히 흑자를 내며 수익성을 방어해왔다. 국내 대표 스페셜티 기업 금호석유화학은 역대급 불황 속에서도 지난해 2718억원의 이익을 냈다. 이는 전년 대비 불과 0.37% 소폭 줄어든 수치다. DL케미칼은 전년 대비 53.8% 감소한 901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지만, 기초유분 사업들이 적자에 허덕이는 것과 비교하면 선방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NCC 공장 가동이 중단될 위기에 놓이며 스페셜티 기업들도 더 이상 안전지대에 있지 않다는 분석들이 나온다. 석유화학 제품은 일반적으로 ‘원유→나프타(Naphtha)→NCC→기초유분(에틸렌, 프로필렌)→중간재·합성수지→최종 제품’의 밸류체인 구조를 갖추고 있다. 스페셜티 기업들은 보통 NCC 업체가 생산하는 에틸렌과 프로필렌 등 기초유분을 구매하고 이를 가공해 다양한 산업군에 원재료를 공급하는데, 현재 나프타 수급난 탓에 NCC 단계부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금호석유화학은 세계 최대의 합성고무 생산 능력을 보유한 곳으로, 타이어와 고무장갑의 주원료인 SBR과 NB라텍스를 만들기 위해서는 부타디엔(BD)과 스티렌모노머(SM)의 안정적인 수급이 필수적이다. 부타디엔은 나프타를 열분해해 나오는 부산물로 에틸렌, 프로필렌과 함께 대표적인 기초유분으로 꼽힌다. 한국화학산업협회에 따르면 여수에서는 여천NCC를 비롯해 LG화학, 롯데케미칼 등이 BD를 제조하며, SM은 여천NCC가 유일하게 생산한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세계 점유율 1위인 폴리부텐(PB) 제조업체 DL케미칼도 안심할 처지는 아니다. PB의 주원료는 C4로, 불가항력을 선언한 여천NCC와 울산에 소재지를 둔 대한유화 두 곳이 주로 원료를 공급하는 회사다. 폴리부텐은 무색, 무취, 무독성의 투명한 액체로, 윤활제와 화장품뿐 아니라 엔진오일, 절연유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된다.

에틸렌 기반의 저밀도폴리에틸렌(LDPE) 등을 생산하는 한화솔루션은 이미 불가항력 가능성을 고객사에 고지했다. 한화솔루션은 여천NCC가 생산하는 에틸렌을 바탕으로 LDPE와 폴리염화비닐(PVC) 등을 만드는데, 최근 나프타 수급 문제로 폴리올레핀(PO)계열 일부 제품의 공급 차질 가능성이 발생한 것이다.

스페셜티 기업들은 상황이 시시각각 급변하는 만큼, 비상 체계를 가동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피해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공장 가동이 멈춰 해외에서 원료를 조달해야 할 경우 물류 비용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NCC처럼 지금 당장 급박한 문제가 있는 상태는 아니지만, 원료 조달 다변화 정책을 통해 대비를 하고 있다”며 “해외에서 원료를 들여오게 될 경우에는 원가 상승 압박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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