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중동 전쟁 탓에 국제유가가 치솟으면서 원재료 매입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역대 최고치인 배럴당 150달러대를 기록할 수 있다는 관측마저 나온다. 공급 측면의 인플레이션은 기업 입장에서 손 쓸 수 없는 변수인 만큼 당분간 비용부터 줄이는 ‘허리띠 졸라매기’가 줄을 이을 전망이다.
◇칩플레이션에 커진 비용 부담
15일 삼성전자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원재료 매입액으로 99조9475억원을 지출했다. 삼성전자 완제품(DX)부문, 반도체(DS)부문, 자회사 하만 등을 포함한 수치다. 이는 지난 2023년 89조1246억원, 2024년 91조8398억원과 비교하면 큰 폭 늘어난 것이다.
비용 부담이 가장 컸던 곳은 스마트폰, TV, 생활가전 등을 생산하는 DX부문이다. 지난해 원재료 매입 규모는 74조5693억원으로 전년(67조7958억원)과 비교해 9.99% 증가했다. 특히 DX부문이 지난해 미국 퀄컴, 대만 미디어텍 등으로부터 사들인 중앙처리장치(CPU) 규모는 13조8272억원이었다. DX부문 전체에서 18.5% 비중을 차지했다. 2024년 10조9326억원(16.1%) 대비 26.48% 늘었다.
CPU 매입액이 증가한 것은 인공지능(AI) 시대 들어 반도체의 전략적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프리미엄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설계할 수 있는 회사 자체가 몇 군데 없는 데다, 이들의 칩을 위탁 생산하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 대만 TSMC는 공정 가격은 계속 올리고 있다. 이 와중에 이들의 칩을 필요로 하는 완제품 제조업체들은 늘고 있다. 모바일 AP 가격이 상승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삼성전자 DX부문이 DS부문으로부터 매입하는 각종 메모리 가격 규모 역시 더 커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픽=김정훈 기자)
삼성전자뿐만 아니다. 삼성디스플레이의 경우 13조592억원으로 전년(12조4966억원)보다 4.50% 늘었다. 핵심 스마트폰 부품인 연성회로기판실장부품(FPCA), 강화유리용 커버글라스의 가격이 모두 비싸졌기 때문이다. LG이노텍(16조4794억원→17조4096억원) 역시 원재료 부담이 커졌다. LG이노텍은 이미지센서, 렌즈, 액추에이터 등을 사들여 카메라모듈로 조립한 이후 이를 스마트폰업체에 납품하는데, 1년새 이미지센서, 렌즈 등의 가격이 모두 뛰었다.
◇“기업들 비용 절감, 줄 이을 것”
주목할 건 산업계의 비용 부담이 올해 더 커질 게 유력하다는 점이다. 반도체 가격 폭등이 완제품 원가 상승을 압박하는 칩플레이션의 파고가 이어지고 있는 탓이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달 PC용 D램 범용 제품(DDR4 8Gb)의 평균 고정거래가격은 13.00달러로, 한 달 만에 13.04% 급등했다. 지난해 2월(1.35달러)과 비교하면 불과 1년 만에 거의 10배 치솟았다. 반도체 가격 폭등을 견디지 못해 글로벌 IT·가전 공급망 위기가 올 것이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여기에 중동 전쟁까지 덮치면서 원자재 쇼크는 더 심각해졌다. RBC 캐피털마켓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브렌트유 가격이 향후 3~4주 안에 배럴당 128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고 내다봤다. 월가 일각에서는 2008년 사상 최고치인 147달러를 넘어 150달러를 돌파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유류비 외에 물류비 리스크 역시 만만치 않다. 기업들이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을 떠안을 수 있다는 의미다.
한 대기업 고위인사는 “공급 측면에서 인플레이션이 만연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손 쓸 방법이 마땅치 않다”며 “당장 줄일 수 있는 비용부터 줄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공급 견인 인플레는 수요가 높아져서 가격이 오르는 수요 견인 인플레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삼성전자는 DX부문을 중심으로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섰다. DX부문은 최근 최고재무책임자(CFO) 회의에서 여러 비용 절감 대책을 논의했다. 부사장급 이하 임원들의 경우 10시간 미만 비행 때 이코노미 클래스를 이용하기로 한 게 대표적이다. 기존에는 임원들은 비즈니스 클래스를 이용했다.
또 다른 재계 인사는 “완제품 업체들은 중국이라는 파고가 덮치고 있는 와중에 비용 부담까지 커진 만큼 수익성 확보에 비상이 걸린 상태”라며 “울며 겨자 먹기 식의 비용 절감이 줄줄이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