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은 조사관들의 출입을 막거나 증거를 인멸하는 식의 노골적인 방해 대신, 최근 들어 자료 제출을 지연하는 등 교묘한 방식으로 조사를 방해하고 있어 현행 제도로는 제재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뉴시스)
앞서 공정위 기업집단감시국·시장감시국·기업거래결합심사국이 현장 조사를 진행한 쿠팡 사건에서는 자료를 수개월에 걸쳐 나눠 제출하거나, ‘재택근무로 자료 확보가 어렵다’는 등의 사유를 들어 제출을 지연하는 사례가 반복된 것으로 파악됐다. 겉으로는 협조하는 형태를 취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조사 진행을 늦추는 방식이다.
실제 지난달 김범석 쿠팡 Inc 의장의 동일인 지정 여부를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조직도 등 기초자료 제출이 지연되거나 “회사 내 대응 실무자가 없다”는 이유로 조사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으면서 기업집단감시국 조사만 일주일가량 연장되기도 했다. (이데일리 2월 6일자 「“실무자 없다”며 공정위 무시 ‘쿠팡 비협조’에 조사 늘어져」 참조)
이는 과거 조사방해와는 양상이 다르다. 이전에는 조사관의 현장 진입을 막거나 관련 자료를 폐기하는 등 명확한 위법 행위가 주를 이뤘지만, 최근에는 법망을 교묘히 피해가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 때문에 현행 규정으로는 ‘조사방해’로 인정하기 어려운 사례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위 내부에선 지난달 쿠팡 현장조사 과정에서 나타난 비협조 행위에 대해 제재 적용이 쉽지 않다는 인식이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공정위가 직면한 가장 큰 한계는 ‘조사방해’의 정의가 상대적으로 추상적이라는 점이다. 현행 제도에서는 명백한 거부나 허위자료 제출 등은 제재가 가능하지만, 반복적인 지연이나 소극적 대응을 조사방해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판단이 엇갈린다.
이에 공정위 안팎에서는 조사방해 개념을 보다 명확히 하고, 반복적·의도적 지연 행위까지 포함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를테면 ‘조사방해’의 정의를 구체화하고 ‘반복 지연’ 등을 명문화해 조사 회피·지연 의도까지 판단 기준에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제도 보완이 현실화되더라도 ‘고의성 입증’이라는 난제가 남는다. 조사 지연이 불가피한 사정인지, 의도적 방해인지 구분해야 하는데, 이를 공정위가 입증해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결국 조사방해 인정 범위를 넓히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한편에선 공정위 조사 방식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공정위 조사는 법적 강제력이 제한된 ‘임의조사’ 성격이 강해 기업이 비협조적으로 나올 경우 대응 수단이 현실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주진열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 등 주요국은 법원의 영장을 기반으로 한 강제 조사 권한을 활용하는데, 한국은 임의조사 체계에 머물러 있다”며 “조사방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강제 조사권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은 앞서 작년 12월 9일 법제처에 “경제제재를 통한 처벌을 현실화하기 위해 ‘강제조사권’을 주는 방안을 검토해달라”고 지시하며 공정위 강제조사권 도입 논의를 수면 위로 끌어 올렸다.
여론 역시 우호적이다. 리얼미터에 따르면 지난 12월 11일 전국 만 18세 이상 50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8.4%가 공정위에 강제 조사권을 주는 데 찬성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