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키우는데 20년 이상 걸려…긴 호흡 필요"

경제

이데일리,

2026년 3월 31일, 오전 06:04

[도쿠시마=이데일리 마켓in 박소영 기자] “지역 벤처 생태계 구축은 약 20년이 걸리는 장기 포로젝트입니다. 단기적인 성과를 기대해선 안 됩니다.”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돈 풀기에 돌입한 한국에 전해줄 말이 있느냐 묻자 일본 현지에서 만난 벤처캐피털(VC) 관계자들이 전한 말이다. 이재명 정부가 ‘지역 활성화’ 기치를 내걸자 최근 각 지방자치단체는 기금 조성에 나서고 있다. 전남광주특별시는 30조원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1조 5000억원 규모 도민성장펀드를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지역으로 유입되는 자금이 늘어난 면은 긍정적이나, 투자금 집행 후 실제 인력이 정착하고 실증까지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부족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보다 10년가량 앞서 지역 활성화 정책을 펼친 일본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일본은 VC들이 지역에 포진한 대기업과 협력해 펀드를 조성하고 관련 스타트업을 키우고 있다.

일본 IT 기업 산산의 가마야마정 오피스 모습. (사진=산산 홈페이지)


도쿠시마현 대표 기업 중 하나인 오오츠카제약은 대기업 출자자(LP)로 지난 2024년 글로벌 VC인 AN벤처파트너스 펀드에 3000만달러(약 452억원)를 출자했다. 이 펀드는 일본 과학 기술을 활용해 글로벌 바이오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조성됐다. AN벤처파트너스는 일본 도쿄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기반을 둔 하우스로 일본에서 시작된 생명과학 분야 극초기 단계 기업에 투자하고 글로벌 투자는 후기 단계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일본 대표 초기 스타트업 투자 전문 VC인 사무라이 인큐베이트는 지역 스타트업 육성 프로젝트 ‘스타트업 런웨이(Startup Runway)’를 운영한다. 지역 금융기관, 지방정부, VC와 협력해 지역 기반 스타트업을 지원한다. 스타트업이 커가는데 필요한 모든 성장 노하우를 무료로 공유한다. 참가비나 회원비도 따로 받지 않는다. 현재 일본 전역 7개 지역에서 운영 중이다. 올 봄까지 9개 지역, 300개 기관이 참여하는 사업으로 확대한다.

사카키바라 겐타로 사무라이 인큐베이트 CEO는 “지방에 기술, 인재, 산업 기반 등 스타트업이 활용할 자원이 많아도 자본과 네트워크 부족으로 사업화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일본은 지역 기반 제조·딥테크 대기업이 많아 잠재력 크지만, 상대적으로 지역 기반 스타트업이 부족하다는 점에 착안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부여하고자 해당 프로그램을 만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신한벤처투자와 한일 최초 민간 주도 공동운용(Co-GP) 펀드를 결성한 바 있는 글로벌 브레인 사례도 있다. 글로벌 브레인은 본사가 있는 도쿄 외에도 교토에 딥테크 VC 4명이 포함된 팀을 꾸렸다. 딥테크 개발자와 과학자가 관서지방에 많다는 점을 파고들었다. 곧 기업형 벤처캐피털(CVC) 펀드 조성도 준비한다. 카마쿠라 지로 글로벌 브레인 제너럴 파트너는 “지역 통신사나 은행이 LP로 참여한 지역 상생 CVC 펀드를 조성해 지역별 사업을 개발하고 지원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다”고 전했다.

도쿠시마현 도쿠시마시 상징인 비잔(눈썹산) 공원 전망대에서 바라본 시내 전경. (사진=박소영 기자)


일본 현지 관계자들은 지역 활성화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청년층 유입과 지역경제·사회를 지속 가능하게 만들 모델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안경테 산업이 쇠퇴하며 지역경제 기반이 크게 약화한 후쿠이현 사바에시 사례가 모델이다. 기존 산업 쇠퇴로 25~39세 청년층이 지역을 떠나자 사바에시는 산학협력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매년 약 200~250건 공동연구와 기술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700~800개 행정사업 중 100개는 주민들이 직접 제안한 내용을 기반으로 정책화했다. 그러자 지역 기업 주도로 세계 1위 제품 14개가 탄생했고, 일본 내 1위 제품·기술을 51개 생산해내는 결과를 얻었다.

일본 현지 VC 한 대표는 “수도권 중심 모델에 의존하지 말고, 지역 금융기관·기업을 핵심 주체로 참여시켜야 한다”며 “지역 생태계 구축은 제도보다 민관이 합심해 꾸준함과 의지가 더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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