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진 금융감독원 원장이 24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시민·소비자단체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2026.3.24 © 뉴스1 이호윤 기자
이찬진 금융감독원장 취임 이후 금융당국이 보험소비자 보호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법원 판결이 난 보험금 분쟁까지 재검토에 나서면서 보험사의 부담은 커지고 있다. 최근 이 원장은 "법원의 판결에 따른 보험금 지급 관련 변동 사항에 대한 소비자 알릴 의무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31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원발암 관련 설명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보험사에 대해 소액암의 전이로 발생한 일반암 보험금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보험사들은 관련 지급 규모와 현황을 파악 중이다.
소액암에서 전이된 일반암…미지급 보험금 각 사별 700~800억원 수준
보험업계에서는 대형사 기준 700~800억 원 규모의 보험금과 지연이자가 추가 지급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대형사 기준 700~800억 원 수준으로 집계된 것으로 알려졌다"며 "보험사별 암보험 판매 규모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중소형사까지 포함한 전체 생·손보사의 보험금 규모는 수천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동안 보험업계는 소액암에서 전이된 이차성 일반암에 대해서도 원발암이 소액암이라는 이유로 일반암 보험금이 아닌 소액암 보험금만 지급해 왔다. 하지만 최근 금감원은 상품설명서에 원발암 기준에 대한 설명이 없는 계약의 경우 설명의무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보험사에 과거 소액암 기준으로 지급된 보험금에 더해 일반암 보험금과 지연이자를 추가 지급할 것을 요청했다.
소액암은 갑상선암, 기타 피부암, 경계성 종양, 제자리암 등 비교적 치료 예후가 좋은 암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일반암 진단비가 5000만 원 수준이라면 소액암 진단비는 500~1000만 원 수준으로 일반암의 10~20%만 지급된다.
금감원의 이 같은 요청은 지난해 대법원이 보험금 지급 시 암의 원발부위를 기준으로 보험금을 지급한다는 분류 약관에 대해 가입자에게 설명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한 데 따른 후속 조치로 풀이된다.
구체적으로는 지난 2018년 12월 한 보험가입자가 갑상선암과 림프절 전이암 등을 최종 진단받고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했다. 이에 보험사는 원발부위 분류 특약을 근거로 소액암 보험금 440만 원을 지급했다. 그러나 보험가입자는 림프절 전이암은 갑상선암과 별개의 일반암이며 보험계약 체결 당시 해당 특약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며 보험금 2200만 원 지급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1심에서 보험가입자의 손을 들어줬지만 항소심에서는 이를 뒤집고 보험사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지난해 3월 원발부위 특약을 가입자에게 설명하지 않은 것은 약관법상 설명의무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결국 갑상선암과 동시에 또는 이를 원발부위로 하는 이차성 일반암이 진단될 경우 일반암을 기준으로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봤다.
억울한 소비자 찾기 위해…금감원, 법원 판결도 다시 본다
금감원은 최근 일부 백내장 실손보험금 분쟁 건에 대해서도 재검토를 요청했다. 금감원은 관련 민원인 20여 명과 직접 면담을 실시하고 일부 계약과 관련된 보험사 담당자들과도 면담을 진행했다. 이후 양측의 입장을 청취한 뒤 일부 민원에 대해 보험사에 재검토를 요청했다.
백내장 실손보험금 사태는 법원에서도 대부분 보험사가 승소했다. 이번 재검토 요청에 대해 금감원은 "극소수의 억울함이 있는 일부 계약에 대해서만 재검토를 요청한 것이다"라며 "전체 민원에 대한 재검토 요청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찬진 원장은 취임 직후부터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를 감독업무의 최우선 목표로 두고 있다"고 밝혀왔다. 이에 금감원은 금융상품 설계·제조 단계부터 금융사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등 사전 예방적 금융소비자 보호에 적극 나서고 있다.
여기에 최근 금감원은 접수된 민원과 분쟁뿐 아니라 이미 법원 판결이 난 분쟁에 대해서도 재검토하고 있다. 이는 보험 민원·분쟁을 단순히 법원의 판단에 맡겨두지 않고, 판결 이후에도 억울한 개별 계약을 최소화하기 위해 재점검하고 있는 셈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감원은 기본적으로 법원의 판결을 따르는 조직으로 판결을 뒤집을 수는 없다"면서도 "보험 관련 수백 건의 소송이 있는 만큼 소비자의 억울함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판결을 이후 조치에 대해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보험사는 부담은 커지고 있다. 보험사 민원·분쟁 중 법원의 판단을 받는 계약은 대부분 보험금과 직접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금감원이 최근 강화된 소비자 보호 관점에서 기존 민원·분쟁을 다시 들여다보는 것 자체가 부담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금감원이 과거 보험 민원·분쟁뿐 아니라 법원 판결이 난 계약까지 재검토하는 것은 보험사 입장에서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며 "금감원의 결정으로 어떤 분쟁에서 어느 정도 규모의 보험금이 빠져나갈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이 원장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보험금 지급과 관련해 법원에서 비교적 혁신적인 판결이 나오고 있고, 이에 따라 보험금 지급 환경도 변화하고 있다"며 "이 같은 변화는 소비자에게 즉시 알릴 필요가 있어 이와 관련돼 의무화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jcppark@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