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옥죈다고 중기에 이익 안 가…1% 성장시대 규제 재설계해야

경제

이데일리,

2026년 4월 08일, 오전 05:01

[이데일리 김소연 송재민 기자] “이병철 회장, 정주영 회장, 김우중 회장이 살아계신 당시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은 9.7%였습니다. 지금은 2% 성장도 쉽지 않고, 앞으로는 1%대 성장이 일상이 될 것입니다. 이런 저성장 국면에서 규제가 과거와 같아선 안 됩니다.”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7일 서울 동작구 중앙대 연구실에서 진행한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규제의 강도가 아닌 설계 자체의 관점을 변경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가 27일 서울 동작구 중앙대 연구실에서 진행한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답변하고 있다. (사진=김태형 기자)
정 교수는 “대기업을 규제한다고 해서 반드시 중소기업에 이익이 돌아가는 구조가 아니다”라며 “같은 가치사슬에 묶여 있는 만큼 오히려 중소 협력업체가 더 큰 부담을 떠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예컨대 정부가 노트북 가격 인상을 억제하면, 그 부담은 결국 부품·협력사로 전가된다”며 “산업 생태계를 중심에 두고 규제 체계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유 횡재세도 예로 들었다. 정 교수는 “이익 규모를 기준으로 규제하는 방식은 과거에는 유효했을 수 있지만, 지금은 그 이익이 어떻게 활용되는지가 더 중요하다”며 “기업이 불확실성과 예측 불가능한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투자한다면, 이를 세금으로 환수하는 것보다 산업 가치사슬을 강화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일률적인 주 52시간제 역시 기업의 생존을 갉아먹는 규제로 지목했다. 그는 “모든 산업에 동일하게 적용하는 방식이 문제”라며 “반도체는 특정 시기에 집중적으로 일을 해야 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률적으로 평균에 맞춘 52시간 기준을 유연하게 전환하면 오히려 기업의 생존력을 높이는 규제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최근 시행된 노란봉투법과 상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정 교수는 “해당 제도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하는 기업은 많지 않다”면서도 “문제는 이들 제도가 기업의 불확실성을 줄였는지, 오히려 키웠는지에 있다”고 짚었다. 그는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기업은 투자를 미루게 되고, 이는 결국 사회 전체의 기회비용 손실로 이어진다”며 “설익은 규제가 가장 위험하다”고 했다.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가 7일 서울 동작구 중앙대 연구실에서 진행한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답변하고 있다. (사진=김태형 기자)
다음은 정 교수와의 일문일답이다.



-지금을 ‘초저성장+구조적 불확실성의 시대’로 규정했는데.

△정주영 회장, 이병철 회장, 김우중 회장이 살아계신 당시에는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이 9.7%였다. 우리가 살아갈 시장은 1%대다. 10개 기업 중 3개 살아남는 시대에서 이제 1개만 살아남는 시대가 됐다. 규제가 기업의 발목을 잡으면 안 된다. 기업의 리스크 구조 자체가 달라졌다. 과거처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리스크를 분리해 규제하기도 어렵다. 같은 가치사슬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을 규제하면 중소기업이 힘들어질 수 있다. 오히려 중소기업도 대기업 규제를 원하지 않을 수 있다. 초저성장 시대에 과거와 같은 동일한 규제가 가능한가.

-어떤 규제가 문제인가.

△원유 횡재세가 대표적이다. 단순히 이익을 많이 낸다고 과세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그 이익을 어떻게 쓰이는지를 봐야 한다. 기업이 불확실성이나 예측할 수 없는 리스크에 그 돈을 쓴다면 횡재세로 걷어가는 것 보다는 정유업계의 가치사슬망을 단단하게 하는 효과가 난다. 주 52시간제를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도 문제다. 불확실성이 큰 환경에서 ‘일반화의 오류’를 경계해야 한다. 평균에 맞춘 52시간이라는 규제를 유연하게 전환하면 기업 생존력을 높이는 규제가 될 수도 있다.

-불확실한 규제에 대한 지적도 했는데.



△대외 환경도 불안정한데 내부 규제까지 불확실하면 기업 경영은 더욱 위축된다. 노란봉투법이나 상법 개정을 전면 부정할 수는 없다. 필요성은 인정한다. 문제는 이 규제가 불확실성을 줄인 것인지, 늘린 것인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기업이 느끼는 두려움과 정부의 정책 간 괴리가 생긴다. 불확실성이 큰 규제가 늘어나면 기업은 투자하기 어렵다. 기업 입장에선 기다리는 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다. 결국 사회의 기회비용을 날리는 것이 된다. 설익은 규제가 가장 위험하다.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나.



△규제의 강도가 문제가 아니라 ‘설계 방식’의 문제다. 이를 ‘레짐 시프트’라고 부른다. 과거에는 규제를 세게 해서 소비자 혹은 산업을 보호하려 했다면 지금은 규제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이제는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이익을 내는 기업이 계속 투자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세제·금융 측면에서 유인하는 규제 방식이 필요하다.

-왜 지금인가.

△제도에 정답은 없다. 지금 시점에 규제를 되돌아봐야 하는 이유는 당장의 경제 성장률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기업을 둘러싼 환경이 ‘성장’이 아닌 생존 중심으로 바뀌었다.

-기업의 생존을 돕는 규제는 무엇인가.

△규제가 시장의 역동성을 훼손하지 않는지 점검해야 한다. 특히 산업 생태계 단위로 접근해야 한다. 케미칼 산업은 이미 구조조정에 들어갔는데, 중국이 원가 경쟁력을 통해 공격적으로 나올 것을 예측하지 못했다. 화학 산업이 독과점 산업이다보니 개별 기업을 규제 대상으로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치사슬이 긴밀한 산업을 중심으로 규제를 재설계해야 한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분야다. 생태계 전반을 살피는 규제가 필요하다.

정도진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가 7일 서울 동작구 중앙대 연구실에서 진행한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답변하고 있다. (사진=김태형 기자)
◇정도진 교수는…

△서강대 경제학 학사 △미국 켄터키대 경영학 박사 △웨스트 텍사스 A&M 대학교 조교수 △금융감독원 회계제도실 기업회계 팀장 △기획재정부 공기업·준정부기관 경영평가위원 △금융위원회 감리위원회 감리위원 △한국조세재정연구원 국가회계재정통계센터 소장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 공시위원회 위원장 △행정안전부 중앙투자심사위원회 위원 △IPSAS(국제공공부문회계기준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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