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發 물가공습①]원가 쇼크에 가격 압박…식품업계, 퇴로 없는 사면초가

경제

뉴스1,

2026년 4월 08일, 오전 06:00

6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에 유제품이 진열되어 있다. 중동 전쟁 장기화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110달러를 넘어선 가운데, 환율과 금리까지 동반 상승하며 물가 압력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정부 진단이 나왔다. 2026.4.6 © 뉴스1 임지훈 인턴기자


#한 대형 식품기업은 올해 초 제품 가격 인하 가능성을 여부를 검토했지만,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냈다. 업계 최저 수준인 영업이익률을 고려할 때 수익성이 극도로 떨어진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정부가 기업을 소집해 물가 안정에 동참해달라는 메시지를 내자 불가피하게 가격을 내렸다.

#유제품과 음료를 판매하는 한 유가공기업은 페트병 신제품에 포장 패키지를 씌우지 않는 방안을 찾고 있다. 묶음 박스 겉면에만 영양성분을 표기하거나 스티커 형태로 부착하는 방법도 모색 중이다. 비닐 포장재의 원재료인 나프타 수급이 차질을 빚을 경우를 대비해서다.

중동 전쟁 장기화에 따른 고환율과 원자재 수급 불안에 더해 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가 겹치면서 식품업계가 진퇴양난 상황에 빠졌다. 안정적인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해외 시장을 개척하려는 K-푸드 기업들의 전략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서울 중구 명동거리의 환전소 전광판에 환율 정보가 나오고 있다. 2025.11.23 © 뉴스1 김민지 기자

환율 급등에 식품업계 직격탄…10% 상승 시 순이익 100억 넘게 줄어
8일 업계에 따르면 중동 전쟁으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하면서 식품기업의 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다. 원재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높은 환율은 고스란히 원가 부담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서울외국환중개에 따르면 지난해 말 1434.9원이던 원·달러 환율은 이달 6일 1507.6원으로 5% 넘게 올랐다. 3월 말에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1520원을 넘기도 했다.

내수 위주인 식품업계는 고환율에 직격탄을 맞게 됐다. 실제 한 식품기업은 환율이 10% 오르면 140억 원가량의 순이익이 감소한다는 자체 진단을 내놨다. 이 회사가 지난해 거둔 이익의 십분의 일 수준에 이른다.

전쟁에 따른 수급 불안으로 원자재 가격도 널뛰고 있다. 경제지표 플랫폼 트레이딩이코노믹스에 따르면 말레이시아 팜유 선물 가격은 1톤당 4811링깃(myr)으로 1년 전보다 15.04% 올랐다. 식물성 기름인 팜유는 라면, 과자, 빵 등 가공식품의 튀김유로 쓰인다.

통상 제과·제빵·라면 기업은 수개월 단위 팜유 대량 구매 계약을 맺고 있어 당장 비용 부담이 늘진 않는다. 하지만 2월 말 전쟁 발발 이후 가격이 급등하면서 차기 계약에는 높은 원가가 반영될 요인이 커졌다.

업계 관계자는 "식음료업 특성상 내수산업 비중이 절대적이어서 환율 변동에 취약하다"며 "팜유는 현지에서 직접 매입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국제 시세에 더욱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인천 연수구 인천신항에서 컨테이너 선적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2022.7.11 © 뉴스1 조태형 기자

나프타·알루미늄 수급 차질에…TF 꾸려 재고 파악·신규 거래처 모색
더 큰 문제는 플라스틱과 비닐 등 포장재 원재료인 나프타 수급 차질까지 빚어지는 데 있다. 통상 식품사들이 보유한 포장재 재고는 2개월 안팎에 불과해 전쟁 장기화 시 식품을 만들더라도 담을 용기가 없는 상황까지 일어날 수 있다.

한 식품회사는 자체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유통 중인 1000여개 제품의 포장재 비축분을 파악하고 추가 생산 방안을 찾고 있다. 포장재 생산 공장을 운영하는 제과업체는 기존 공급사 외 다른 거래처 발굴을 모색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식품기업에 20년 넘게 근무했지만 포장재 문제가 불거진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원가 부담을 감수하고 제품을 만들더라도 담을 곳이 없다면 유통업뿐만 아니라 산업 자체가 멈추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음료와 맥주 캔의 원재료인 알루미늄 가격도 전쟁 후 한 달여 간 약 15%, 1년 전보다 40% 넘게 올랐다. 음료회사는 알루미늄 캔 제조사와 1년에 네 차례 분기 단위 계약을 맺는 만큼 인상분은 2분기 가격에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2020 세법 개정안'을 발표한 22일 서울 남산타워에서 높은 빌딩숲이 보이고 있다. 2020.7.22 © 뉴스1 이성철 기자

농업시장 흔들리며 원가 부담 장기화…이익 줄었는데 '가격 인하' 압박까지
나아가 전쟁 장기화로 농업시장이 흔들리면서 식품업계의 위기가 고착화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달 새 30% 가까이 오른 국제 비료 가격이 전 세계적으로 농산물 생산량을 감축하는 결과를 낳게 돼 전쟁 종식 후에도 원가 부담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식품업계는 대내외 환경 위기에 더해 정부의 가격 인하 압박까지 받으며 '사면초가'에 빠졌다. 원가 부담은 커졌지만 외려 제품 가격을 낮춰 이익 감소가 불가피해서다. 이미 주요 식품기업은 경기침체 여파로 지난해 실적 한파를 겪었다.

매출 4조 원 이상 식품기업 가운데 지난해 영업이익이 증가한 곳은 1곳(동원F&B)에 불과하다. 식품업계의 맏형인 CJ제일제당을 비롯해 대상, 롯데웰푸드,롯데칠성음료 등의 이익이 일제히 감소했다.

업계 관계자는 "조 단위 이익을 벌어들이는 통신사나 은행을 두고 식품 가격을 몇백몇십원씩 낮추라고 하는 건 그야말로 전시행정"이라며 "K-푸드 경쟁력 제고를 위한 투자는커녕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라고 말했다.

ausur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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