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가상자산 통행료로 제재 회피…“월 최대 1.2조원 수익”
이처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결제 수단으로 가상자산을 사용하는 것은, 국가 차원의 제재 회피 수단으로 가상자산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겠다는 계산으로 받아들여진다.
실제 지난달 중순 이후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는 선박 운영사들에 해협 통과 대가로 선박당 최대 200만달러를 부과해왔으며, 결제 수단으로는 중국 위안화와 비트코인, 또는 부분적으로 테더의 달러 스테이블코인인 USDT까지 받아온 것으로 전해진다. 아울러 이란 의회가 제정한 법안은 수수료를 리알화 기준으로 명시하면서, 이란 기업들이 참여해 개발한 디지털 통화를 사용하는 것도 허용하고 있다.
이란은 지난달 30~31일 ‘호르무즈 해협 관리 계획(Strait of Hormuz Management Plan)’을 승인하며, 이미 운영 중이던 체계를 법제화했다. 현재 통행량 기준으로 공개 추정치를 적용하면, 이 통행료 시스템은 원유 운반선에서만 하루 최대 2000만달러의 수익을 올릴 수 있으며,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까지 포함할 경우 월 6억~8억달러(원화 약 8880억~1조1840억원) 수익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혁명수비대가 화물정보 판단…우호도 따라 통행료 차등부과
일단 미국과의 휴전 합의가 단기적으로 이 통행료 체계에 영향을 줄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8일(현지시간) 기준으로 일부 선박들은 다시 해협을 통과하기 시작했다.
전 세계 교역량과 호르무즈 해협 통과하는 교역량 추이 (자료=액시오스)
이란은 국가별로 1~5등급의 우호도 분류 체계를 적용하며, 더 우호적인 국가일수록 더 낮은 통행료율을 부과한다. 통행료는 협상을 통해 정해지는데, 유조선의 경우 원유 1배럴당 약 0.50~1달러 수준에서 시작되며, 만재 VLCC(초대형원유운반선·약 200만배럴 적재)는 약 200만달러를 낸다. 컨테이너선과 기타 선박의 수수료는 개별 협상 대상이다.
결제는 중국 위안화 또는 가상자산으로 이뤄져야 한다. 결제가 완료되면 선박은 초단파(VHF) 무전으로 통항 암호를 부여받고, 라라크섬 주변 북쪽 항로를 따라 IRGC 해군의 호위를 받는다.
◇통행료 중개자 철저 비공개…실시간 동결·차단도 사실상 불가
이란이 호르무즈 통행료 징수에 가상자산을 수용하기로 한 것은 IRGC의 기존 금융 운영 방식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연장선에 있다. TRM이 올 1월 미국 재무부 해외자산통제국(OFAC)의 제드섹스(Zedcex) 및 제드시온(Zedxion) 제재 지정에 앞서 문서화한 바에 따르면, IRGC는 이미 역외의 거래소형 스테이블코인 인프라를 통해 약 10억달러를 우회 송금한 전력이 있다.
여기에는 낮은 거래 비용, 높은 처리량, 깊은 브로커 유동성, 중동 지역 전반의 광범위한 채택 등 합법적 이용자들에게도 매력적인 특성들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미국의 환거래 은행 시스템 바깥에서 이뤄졌다. 호르무즈 통행료 체계는 바로 이 같은 구조를 활용해, 기존의 제재 회피용 결제 레일을 이란 국가의 실시간 수익 징수 메커니즘으로 전환한 것이다.
가상자산 거래는 미국 환거래 은행 시스템을 거치지 않고도 빠르게 결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동결하거나 차단하기가 어렵다.
이란 의회 법안은 결제 수단으로 리알화, 위안화, 디지털 통화를 언급하고 있다고 이란 국영 매체들은 전했다. 그러나 법안 전문이 아직 공개되지 않아, 실제 법안에 어떤 구체적 통화 단위가 명시됐는지는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란 국영 매체와 일부 당국자들은 특히 비트코인을 지목했지만, 서방 언론은 해운업계 소식통을 인용해 IRGC가 실제 현장에서는 USDT를 받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USDT 사용은 IRGC의 기존 행태와 잘 부합하지만, 중앙화된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자금을 동결하거나 법 집행기관과 협력해 불법 수익을 압류할 수 있기 때문에 실무적인 측면에서는 IRGC가 오히려 비트코인을 더욱 선호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통행료, 수익 아닌 주권행사”…케슘섬에 전용 환전창구도 설치
이란의 국영·친정부 성향 매체들은 이 통행료 체계를 전시 수익 확보 수단이라기보다, 주권 행사 차원에서 주로 설명하고 있다. 호르무즈 관리 계획의 의회 발의자들은 이 해협이 “다른 어떤 통항로와 다를 바 없으며, 우리가 그 안전을 보장하는 만큼 선박과 유조선이 통행료를 내는 것은 자연스럽다”고 주장했다.
또 IRGC 연계 매체는 이 제도를 “세계 무역의 목을 쥔 이란의 톨게이트”라고 표현하며, 오랫동안 미뤄졌던 영토적 권한 행사의 일환으로 묘사했다. 이란은 국제해협에서의 통항료 부과를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해양법협약(UNCLOS)을 자국이 비준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안보 호위, 항행 유도, 환경 모니터링 같은 제공된 서비스에 대해 요금을 부과할 자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호세이니 대변인도 통행료 체계는 “해협을 드나드는 물자를 감시해 해당 통로가 무기 이전에 사용되지 않도록 보장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즉 가상자산 결제를 단순한 금융 수단이 아니라, 선별과 감시 메커니즘의 일부로 규정한 것이다. 이란 관세당국은 가상자산 수납 대금을 신속히 리알화로 환전하거나 해외 계좌로 송금할 수 있도록 케슘섬(Qeshm Island)에 전용 디지털 통화 환전 창구를 설치했다. 이는 대규모 가상자산 처리를 위한 인프라를 의도적으로 구축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란의 한 금융 전문 매체는 이 통행료 체계가 완전 가동될 경우 연간 최대 1200억달러의 수익을 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서방 보도에서 제시된 월 6억~8억달러 추정치를 훨씬 웃도는 규모로, 해당 매체는 이를 평화 협상 국면에서 이란이 쥔 ‘최후의 지렛대’라고 평가했다.
◇이란의회는 이미 법제화까지…국가수익창출 상설화 우려도
이란이 이 통행료 체계를 주권의 영구적 행사 수단으로 규정하고 있고 이미 법제화했으며, 상설 IRGC 지휘 체계 아래 운영하고 케슘섬에 전용 가상자산 환전 인프라까지 구축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후에 이를 깔끔하게 철회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목소리다.
특히 가상자산은 빠른 결제와 미국 환거래 시스템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특성을 가진 만큼 휴전이 이뤄져도 사라지지 않으며, OFAC가 이 결제 인프라를 제재하려해도 현재 통행료 징수를 운영하는 익명의 중개자를 자금이 흩어지기 전에 식별해 제재 대상에 올려야 한다. 그러나 그 중개자의 정체는 아직 공개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만약 이 통행료 체계가 지속된다면 이는 세계 주요 해상 요충지에서 스테이블코인 인프라가 국가 수익 창출 메커니즘으로 지속적으로 활용된 첫 사례가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