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투자한다더니…우량채만 쓸어담은 IMA

경제

이데일리,

2026년 4월 10일, 오전 06:04

[이데일리 마켓in 이건엄 기자] 모험자본 공급이라는 명분으로 도입된 종합투자계좌(IMA) 자금이 정작 가장 안전한 곳으로만 몰리고 있다. 한국산업은행이 발행한 최고 신용등급(AAA) 첨단전략산업기금채권(첨단채)에 자금이 대거 쏠리면서 혁신 기업의 마중물이 되겠다는 제도의 취지가 사실상 퇴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9일 이데일리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달 발행된 3000억원 규모의 첨단채 가운데 국내 증권사들이 IMA를 통해 매입한 비중은 30%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모험자본 공급이라는 IMA의 본래 도입 취지와 실제 자금 운용 행태 사이에 괴리가 발생했다는 평가다.

여의도 증권가 전경. 사진=연합뉴스


IMA는 고객 자금을 통합 운용하면서 일정 비율 이상을 벤처·중소기업 등 모험자본에 투자하도록 한 계좌로, 증권사의 기업금융 기능 강화를 위해 도입된 제도다. 모험자본으로 분류되는 투자처는 △A등급 이하 회사채 △프라이머리 채권담보부증권(P-CBO) △상생결제 및 벤처캐피탈·신기술사업금융사·하이일드펀드 등이 있다.

이 같은 쏠림은 첨단채가 지닌 이중적 성격에서 비롯된다. 첨단채는 ‘AAA’급에 해당되는 사실상 무위험 자산이지만, 국가 첨단전략산업 지원이라는 정책 목적에 따라 예외적으로 모험자본 투자 실적으로 인정된다. 인가 요건 유지를 위해 일정 비율을 모험자본에 투자해야 하는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 입장에서는 수익률이 낮더라도 안정성과 실적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는 첨단채가 최적의 투자처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국내 모험자본 시장의 척박한 환경도 이러한 쏠림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풍부한 유동성과 다양한 투자 경로를 갖춘 글로벌 시장과 달리, 국내에는 뭉칫돈을 투입할 만한 검증된 혁신 기업이나 벤처 투자처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당장 회사채 시장만 보더라도 모험자본에 해당하는 BBB급 회사채 발행 규모는 올해 1분기 기준 약 395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6820억원 대비 42.1% 줄어든 수치다. 1분기 전체 회사채 발행액이 36조4573억원에 달하는 점을 고려하면 BBB급의 비중은 1%에 지나지 않는 셈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과 달리 국내는 대규모 자금을 투입할 만한 매력적인 모험자본 타깃 자체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수익률 극대화보다는 어떤 식으로든 비중을 맞춰야 하는 상황에서 실적과 안정성을 동시에 챙길 수 있는 자산에 자금이 몰리는 것은 증권사 입장에서도 불가피한 고육지책”이라고 말했다.

시장 일각에서는 모험자본 활성화라는 명분을 무색하게 만드는 이같은 자금흐름을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이름만 모험자본일 뿐 철저하게 위험을 외면하는 투자 행태가 묵인될 경우 혁신 기업의 마중물 역할을 하려던 IMA 제도의 존재 이유마저 퇴색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다른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마땅한 투자처가 없다는 현실적 고충을 감안하더라도, 모험자본 생태계로 흘러가야 할 돈이 우량채로 대거 흡수되는 것은 우려스럽다”며 “제도가 본연의 목적을 잃지 않도록 엄격하게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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