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지난달 10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린 민주노총 투쟁 선포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6.3.10 © 뉴스1 최지환 기자
노란봉투법(개정 노동조합법) 시행 이후 한 달 간 노동위원회가 '형식적 고용관계'가 아닌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을 기준으로 사용자 책임을 인정하는 판단을 잇따라 내리면서, 원·하청 간 교섭 구조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따라 그동안 제한됐던 하청노조의 원청 교섭이 본격적으로 확대되며, 14만여 명이 300여 개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고, 관련 사건 269건이 노동위원회에 접수되는 등 제도가 시행 초기부터 빠르게 작동하는 양상이다.
다만 사용자성 인정 범위와 교섭단위 분리를 둘러싼 해석이 엇갈리며 현장에서는 교섭 방식과 범위를 둘러싼 혼선도 나타나고 있다.
10일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박홍배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노란봉투법이 시행된 지난달 10일부터 이달 7일까지 987개 하청 노조 소속 14만 4805명이 368개 원청 사업장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했다. 같은 기간 노동위원회에 접수된 노란봉투법 관련 사례도 269건에 달하며 지난해 연간 접수 건수(279건)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증가했다.
노란봉투법 시행 한달, 교섭요구 '봇물'…현장은 노동위로 판단 요청 '쏠림'
법 시행 직후부터 하청노조의 교섭 요구는 빠르게 확산됐다. 시행 첫날에만 407개 노조(8만 1600명)가 221개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했고, 이틀 만에 453개 노조(9만 8480명)가 248개 사업장으로 확대되는 등 초기부터 집단적 교섭 요구가 급증했다. 이후 한 달 만에 교섭 요구 규모는 987개 노조·14만여 명 수준으로 확대됐다.
이처럼 교섭 요구는 빠르게 늘었지만 상당수 원청 사업장이 교섭요구 사실 공고를 유보하면서, 실제 교섭은 노동위원회 판단을 거치는 구조로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교섭 관련 사건이 노동위원회로 집중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한 달간의 흐름을 종합하면, 사용자성과 교섭 구조 모두에서 '폭넓은 인정' 기조가 나타나는 가운데 제도의 실제 작동 방식이 초기 단계에서 구체화되고 있다는 평가다.
이 과정에서 일부 하청노조가 제기했던 사건을 스스로 취하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노동위원회에 접수된 교섭요구 사실 미공고 시정신청과 교섭단위 분리 신청 가운데 일부는 철회(지난달 30일 기준 약 12%)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충분한 입증자료 없이 판단을 받을 경우 사용자성이 부정되는 불리한 선례가 남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전략적 대응으로 해석된다. 실제 일부 사건에서는 노동위원회가 자료 보완을 요구하거나 재신청 가능성을 안내하면서 노조가 사건을 정리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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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성·분리교섭 잇단 인정…판단 기준은 원청의 운영 구조를 근거로 한 '지배력'
한 달간 가장 주목되는 변화는 원청의 사용자성 판단이 실제 사례를 통해 빠르게 축적되고 있다는 점이다.
첫 사례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소속 공공연대노조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 공공기관을 상대로 제기한 사건이다. 충남지방노동위원회는 용역계약과 업무 구조를 근거로 "안전관리와 인력배치 등 핵심 운영 영역에서 원청이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며 사용자성을 인정했다.
이어 경북지노위는 한국산업단지공단 자회사 노동자 사건에서도 사용자성을 인정했고, 서울지노위는 성공회대학교·인덕대학교 사건에서 근로시간 통제와 작업환경 개선 등 교섭 의제에 대한 원청의 구체적 개입을 근거로 사용자성을 인정했다.
또 한국공항공사 사건에서는 연장근로 승인·지시 체계 등 운영 구조를 근거로 원청의 실질적 지배력을 인정했다.
이들 사례를 종합하면 노동위원회는 원청이 업무 수행 방식과 근로조건에 직접 관여하고 있는지, 특히 안전관리·인력운영 등 핵심 운영 영역에서 구조적인 통제력이 있는지를 중심으로 사용자성을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동안 사용자성 논의는 주로 임금, 인사권, 직접적인 지휘명령처럼 전통적인 사용자 권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원청이 하청노동자의 안전과 인력 운용이라는 운영 영역에 개입한 점이 핵심 근거로 작용했다. 이는 사용자성 판단 기준이 더 이상 좁은 인사노무 범위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 작업 현장을 지배하는 운영 방식까지 확대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교섭 구조 측면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경북지방노동위원회는 8일 포스코 하청노조 사건에서 한국노총 금속노련과 민주노총 금속노조·플랜트건설노조 간 교섭단위를 분리하도록 결정했다. 이에 따라 동일 원청 아래에서도 복수 하청노조가 각각 교섭을 진행할 수 있는 구조가 처음으로 현실화됐다.
이번 결정은 노조 간 이해관계 차이와 업종 특성, 갈등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교섭단위를 분리한 것으로, 향후 유사한 분리교섭 요구가 확산될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된다.
반면 모든 분리교섭 신청이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다. 노동위원회는 전날(9일) SK에너지,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 에쓰오일, 고려아연 등을 상대로 제기한 교섭단위 분리신청을 기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교섭단위 분리 신청에 대해 노동위원회가 기각 결정을 내린 첫 사례다.
쿠팡의 경우, 민주노총 전국택배노조는 한국노총 계열 노조와 별도로 교섭하겠다며 분리 신청을 제기했지만, 노동위원회는 노조 간 이해관계와 교섭 필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분리 요건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의제별 책임·노조별 교섭", 복잡해진 교섭 구조…정부 "합리적 범위서 설정"
한 달간 나타난 흐름을 종합하면, 원청 책임과 교섭 방식 모두에서 기존과 다른 양상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우선 사용자성은 '실질적·구체적 지배력'이 확인되는 의제를 중심으로 예전보다 인정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현재까지 인정된 사례 대부분은 안전관리, 작업환경, 인력운영 등 원청의 구조적 개입이 확인되는 영역들이다.
교섭은 하청노조 간 분리 가능성이 열리면서 노조별로 나뉘는 구조가 등장했다. 이처럼 의제별 원청의 책임과 노조별 교섭이라는 이중 구조가 형성되면서, 원·하청 교섭은 기존보다 복잡하고 다층적인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 제기되는 '기업이 사실상 무제한으로 쪼개진 교섭을 해야 한다'는 우려에 대해 정부는 과도한 해석이라는 입장이다. 특히 포스코 사례 역시 단순히 노조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업무 성격과 기존 교섭 관행, 노조 간 갈등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한 결정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노동부는 "하청업체별로 교섭단위가 무제한 분리되는 구조가 아니라, 현장 여건을 고려해 합리적인 범위에서 교섭단위가 설정된다"며 "연중 개별 교섭이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는 과도하다"고 밝혔다.
노동계, 법 시행 계기로 원청 책임↑…"원청교섭 원년" 총파업 예고
현장에서는 제도 초기 혼선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노동계는 노란봉투법 시행을 계기로 원청 책임이 본격적으로 확대되는 전환점으로 보고 있다. 특히 사용자성 인정과 교섭단위 분리 결정이 잇따르면서, 그동안 요구해온 '원청과의 직접 교섭'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기대감도 커지는 분위기다.
노동계는 노란봉투법이 시행된 올해를 원청 교섭의 원년으로 삼고 원청 교섭을 쟁취하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노총은 원청 교섭 촉구와 근로기준법 개정안 발의 등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오는 7월 15일 총파업을 단행할 계획이다.
민주노총은 "원청 사용자들은 하청노조의 교섭 요구에 즉각 응답하고 절차에 따라 성실히 교섭에 나서야 한다"며 "실질적 사용자 책임이 현장에서 구현될 때까지 대응을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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