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 꺾인 여행업계]④ "취소 7만명, 신규 예약 0…줄도산 공포 온다

경제

뉴스1,

2026년 4월 10일, 오전 06:10

8일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 여행사 카운터에서 여행객들이 안내를 받고 있다. 2026.3.8 © 뉴스1 안은나 기자
출근과 동시에 취소 전화가 빗발칩니다. 여행사 직원들은 신규 예약 알람 대신 '예약 취소' 통보를 받는 데 허탈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유럽행 하늘길은 막혔고 동남아행 좌석은 증발했다. 유류할증료까지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우며 '성수기 특수'를 기대했던 여행업계가 사면초가에 빠졌다.

10일 주요 패키지 여행사 5곳(A~E사)을 취재한 결과, 중동 전쟁발 유가 급등과 항공 공급망 붕괴가 업계를 강타하며 2분기 실적 역성장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대형 여행사조차 상품 구성에 차질을 빚는 가운데, 기초 체력이 약한 중소 여행사는 줄도산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취소는 쏟아지고 신규 예약은 '실종'
현장의 위기감은 수치로 증명된다. 이미 들어온 예약이 무더기로 빠져나가는 동시에, 새로 들어와야 할 수요는 완전히 끊겼다. 여행사 C에 따르면 올해 4~5월 해외 패키지여행 취소 건수만 7만 2000명에 달한다.

신규 예약 상황은 더 처참하다. 여행사 A 관계자는 "유류할증료가 본격 적용된 이후 유럽 여행 신규 예약이 전주 대비 50% 급감했다"며 "한 달 전만 해도 일주일에 2,315명에 달하던 주간 신규 예약 유입량이 지금은 1042명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고 말했다. 여행사 B 역시 직항 유럽 상품의 주간 신규 예약이 전년 대비 40% 감소했다.

취소보다 더 큰 변수는 '신규 수요의 실종'이다. 여행사 C 관계자는 "취소 증가보다 신규 예약이 전반적으로 둔화하고 있는 점이 더 치명적"이라며 "현재 흐름이 이어지면 2분기 해외여행 수요는 전년 대비 역성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곳은 단거리 노선이다. 여행사 B에 따르면 2~3분기 전체 해외 패키지 예약은 전년 대비 약 20% 증가했다. 지역별로는 베트남(73%), 필리핀(57%), 중국(37%), 일본(25%) 등 단거리는 늘었지만, 유럽은 오히려 줄었다. 장거리와 단거리 사이의 수요 양극화가 갈수록 뚜렷해지는 모양새다.

© 뉴스1 양혜림 디자이너

유럽도 동남아도 막혔다… 상품 구성 자체가 불가능
여행사들을 가장 곤혹스럽게 만드는 건 새 상품을 짤 수가 없다는 점이다. 중동 경유 노선 차단으로 유럽 상품은 가격 경쟁력을 상실했고, 가성비를 책임지던 동남아는 항공편 자체가 부족한 실정이다.

여행사 C는 중동 경유 이집트·스페인 상품 운영을 선제적으로 중단했다. 대체편을 안내해도 직항과의 가격 차가 워낙 커 고객을 유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행사 D는 베트남·필리핀 노선 등 동남아 주력 노선의 2분기 공급석이 전년 대비 30% 감소했다고 밝혔다. 여행사 A 역시 "중동 경유 3~5월 상품은 대부분 취소됐고 이후 신규 예약이 전무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나마 한 여행사는 오는 17일부터 썬푸꾸옥항공의 '인천~푸꾸옥' 신규 취항을 활용해 수급 불안 해소에 나설 계획이지만, 시장 전체의 공급 부족을 메우기엔 역부족인 상태다.

항공사 줄결항에 여행사 상품 '도미노 붕괴'
항공사들의 감편·결항 도미노는 여행 상품의 '도미노 붕괴'로 이어지고 있다. 비엣젯항공은 4월 '인천~나트랑·다낭·푸꾸옥' 등 주요 노선의 일부 운항편을 취소했고 특히 '인천~푸꾸옥' 노선은 5월 1일까지 전면 중단했다. 제주항공 또한 5~6월 '인천~방콕·하노이·싱가포르·다낭·푸꾸옥·비엔티안' 등 핵심 6개 노선 운항을 전면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이스타항공, 진에어, 에어부산 등도 잇따라 동남아 노선을 줄이고 있다.

문제는 단순히 '좌석 실종'에 그치지 않는다. 항공유 수급 불안으로 인해 남아있는 노선의 왕복 항공권 가격은 이미 이전 대비 최대 3배 가까이 폭등했다. 여기에 5월 유류할증료가 역대 최고 수준인 '33단계'까지 추가 인상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비행기 값보다 기름값이 더 무섭다"는 말이 현실화되고 있다.

미국과 이란이 8일 2주간의 임시 휴전에 합의하면서 이라크·바레인 등 중동 국가들이 폐쇄했던 영공을 속속 재개방하고 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이번 휴전이 여행업계의 타격을 즉각 되돌리기는 어렵다고 본다. 2주짜리 임시 휴전인 데다 이미 확정된 감편 계획이 번복될 가능성도 낮다. 유가가 실제 항공권 가격에 반영되기까지는 최소 2~3개월의 시차가 발생한다.

중동 사태로 국제유가가 치솟으면서 이번 달 발권하는 항공권에 부과되는 유류할증료가 전달과 비교해 일제히 최대 3배 이상 올랐다. 할증료 산정 기준이 되는 국제유가가 계속해서 오르면서 5월 적용되는 유류할증료가 사상 최고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5월 유류할증료는 3월 16일∼4월 15일 싱가포르 항공유 평균값에 따라 오는 16일 이후 발표될 예정이다. 사진은 이날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 출국장의 모습. © 뉴스1 이호윤 기자

"팬데믹 겨우 버텼는데 또 불황"…중소여행사 줄도산 우려
업계에서는 이번 위기가 팬데믹 당시보다 더 무섭다고 입을 모은다. 코로나는 정부 지원이라는 버팀목이 있었지만, 지금은 중동 전쟁·고유가·고환율(환율 1500원 육박)이라는 '트리플 악재'가 끝을 알 수 없이 겹쳐 있기 때문이다.

여행사 A 관계자는 "어렵게 팬데믹을 거쳐 겨우 정상화되고 있는 여행업계에 다시 긴 불황이 온다면 중소여행사들은 대부분 폐업으로 내몰릴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벌써 '제2의 코로나가 오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여행사 E는 "종전 이후에도 유가가 항공 운임에 반영되기까지 시차가 존재하는 만큼 단기간 내 수요 반등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다.

여행사들은 정부에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여행사 C 관계자는 "일방적인 감편으로 여행객 피해를 초래한 항공사에 대해 보다 분명한 책임과 제도적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여행사 A 관계자는 "아웃바운드 여행 역시 대한민국 국민의 삶과 생활인 만큼 여기에도 배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행사 B 관계자도 "주요 노선의 안정적인 운항을 위한 정부 차원의 협의와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번 사태가 국내 관광 산업 생태계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윤혜진 경기대 관광개발경영학과 교수는 "유류비 상승으로 해외 수요가 위축되면 국내 프리미엄 여행으로 소비가 전이되거나, 큰맘 먹고 한꺼번에 가는 고가의 장거리 여행과 가성비 중심의 근거리 국내여행으로 수요가 극명하게 양분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해외 송출 역시 국내 항공사나 지상조업사 등으로 부가가치가 순환되는 경제의 중요한 축인 만큼, 저금리 대출 등 금융 지원과 함께 출국납부금을 재원으로 한 '해외여행 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며 "특화 상품을 공급하는 중소 여행사의 붕괴는 전문 인력 유실과 소비자 선택권 제약으로 이어져 결국 한국 관광 산업 전체의 경쟁력 저하로 나타날 것"이라고 제언했다.

seulbi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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