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中심] 디즈니 꿈꾼 팝마트의 추락

경제

이데일리,

2026년 4월 11일, 오후 02:10

세계 최대 생산기지이자 아시아 금융의 중심지인 중화권으로 글로벌 투자은행(IB)과 자본시장의 시선이 향하고 있습니다. ‘자본中심’ 은 중국과 중화권 자본시장 소식을 전하는 시리즈입니다. 상하이·선전의 본토 시장부터 홍콩의 달러 유동성 창구, 대만의 반도체 밸류체인까지 중화권을 관통하는 자금의 흐름을 짚고, 아시아 금융 허브로서 중화권 시장의 현재 온도와 방향을 담습니다. [편집자주]

[이데일리 마켓in 원재연 기자] 중국 완구제조업체 팝마트는 라부부를 앞세워 중국 캐릭터 산업에서 보기 드문 자리에 올라섰다. 중국에서 출발한 자체 IP를 대형 소비재로 키우고, 그 열기를 해외 시장으로까지 넓힌 사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때 시장에서는 팝마트를 두고 ‘중국식 디즈니’라는 기대까지 내놨다. 그러나 이번 실적 발표 뒤 자본시장이 던진 질문은 달랐다. 라부부의 흥행을 확인한 시장은 이제 팝마트의 '다음'을 보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한 레스토랑이 지난 6월 라부부 모습을 본뜬 디저트 케익을 선보였다. (사진=뉴스1)


팝마트가 지난 3월 홍콩거래소에 공시한 2025년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회사는 지난해 매출 371억2000만위안(8조 724억원), 지배주주 귀속 순이익만 127억8000만위안(2조 7792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184.7% 늘었고, 순이익은 3배 넘게 뛰었다. 숫자만 놓고 보면 흠잡기 어려운 성적표였다. 그런데 실적 발표 직후 홍콩 증시에서 주가는 장중 20% 넘게 밀렸다. 업계에서는 지난 4분기 성장 둔화 우려와 배당성향 축소, 라이선싱과 테마파크 등 확장 전략에 대한 부담이 함께 반영됐다고 해석했다.

가장 먼저 도마에 오른 것은 라부부가 포함된 ‘더 몬스터즈(THE MONSTERS)’ 쏠림이다. 이 시리즈는 지난해 팝마트 전체 매출의 38.1%를 책임졌다. 흥행만 놓고 보면 단연 성공이지만, 시장은 여기서 다른 신호를 읽었다. 회사가 여러 IP를 고르게 키운 결과라기보다, 라부부 한 개가 실적을 밀어 올린 구조에 가깝다는 점이다. 다른 대표 IP들의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옅어지면서 팝마트는 ‘여러 캐릭터를 보유한 기업’보다는 ‘라부부에 기대 급성장한 회사’로 비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라부부 열풍은 '중국 소비의 변화'라는 더 큰 흐름을 보여준 사례로 볼 수 있다. 과거 중국인들의 소비가 명품이나 전자제품처럼 비싸고 확실한 브랜드를 한 번 구매하는 데 무게가 실렸다면, 최근에는 취향과 정체성을 중심으로 반복적으로 지갑을 열게 만드는 소비가 빠르게 늘고 있다. 블라인드박스(랜덤박스)로 시작한 라부부가 봉제인형, 키링, 생활형 굿즈로 확장되고, 오프라인 매장 방문과 한정판 수집 문화까지 이어진 것은 이런 변화의 단면이다. 한 번 큰돈을 쓰는 소비보다, 같은 IP를 두고 여러 차례 결제하게 만드는 구조가 힘을 얻고 있다는 뜻이다.

팝마트는 이제 단순히 완구 회사 한 곳의 실적 호조로만 보긴 어렵다. 중국 소비재 기업이 자체 캐릭터를 앞세워 팬덤을 만들고, 이를 상품 판매와 매장 방문, 굿즈 소비로 연결해 몸집을 키운 드문 사례이기 때문이다. 라부부 열풍은 중국 기업이 더 이상 해외 브랜드를 들여와 파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만든 IP로 글로벌 소비자를 상대로 승부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실제 팝마트의 성장에는 내수 둔화 속에서 해외로 눈을 돌린 중국 기업들의 전략 변화도 반영돼 있다. 중국 안에서만 과거와 같은 성장률을 기대하기 어려워지자 소비재 기업들은 대륙 밖에서 새로운 수요를 찾기 시작했다. 팝마트의 지난해 중국 본토 매출 비중은 56.2%로 낮아진 반면 해외 비중은 더 커졌다. 중국에서 검증한 캐릭터와 브랜드를 미국, 유럽, 동남아 시장으로 옮겨 심은 셈이다. 중국 제조업이 오랫동안 하드웨어와 공급망 경쟁력을 앞세웠다면, 이제 일부 소비재 기업은 IP와 팬덤, 오프라인 경험까지 함께 수출하려는 단계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자본시장이 이번에 확인하려 한 것은 ‘라부부가 얼마나 크게 성공했는가’보다 ‘그 성공이 다음 단계로 이어질 수 있는가’다. 한 캐릭터의 흥행이 다른 IP 육성으로 연결될 수 있는지, 블라인드박스 중심의 소비가 더 넓은 상품군과 수익원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 그리고 해외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반복 소비를 만들 수 있는지가 핵심이다. 실적 발표 이후 주가가 급락한 것도 결국 흥행의 크기보다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더 크게 반영된 결과로 읽힌다.

해외 확장도 그 자체로 시험대다. 중국 안에서 통했던 캐릭터와 소비 방식이 다른 문화권에서도 그대로 작동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밖으로 나갈수록 브랜드는 더 촘촘한 품질 관리와 유통 통제, 공급망 운영 능력을 요구받는다. 동시에 중국 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저가 이미지나 '짝퉁' 문제를 함께 떠안는 경우도 적지 않다. 팝마트가 2025년 한 해 동안 전 세계 세관에서 적발된 위조 상품이 약 791만개에 달했다고 밝힌 점은 이런 부담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영국 정부 역시 지난해 압수한 가짜 장난감 가운데 90%가량이 라부부였고, 수량만 20만개를 넘는다고 발표했다.

결국 팝마트를 둘러싼 평가는 한 회사의 주가 조정으로만 볼 일이 아니다. 라부부 열풍은 중국 소비가 취향·팬덤·반복 구매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줬고, 동시에 중국산 자체 IP가 해외 시장으로 뻗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도 입증했다. 다만 자본시장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묻고 있다. 라부부의 성공이 중국 소비 변화의 상징에 그칠지, 아니면 여러 IP와 글로벌 사업으로 이어지는 장기 성장 모델의 출발점이 될지에 대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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