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의 퇴직금을 사내에 쌓아두지 않고 외부 금융기관에 적립해 운용하는 '퇴직연금' 방식으로 개편되면서 500조 원 규모로 커진 시장을 두고 증권사들의 선점 경쟁이 치열하다. 30년 후에는 최대 500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증권사의 장기적인 미래 먹거리가 될 전망이다.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키움증권은 지난 8일 금융위원회에 퇴직연금 사업자 등록을 완료하고 상반기 내에 서비스를 개시할 계획이다. 키움증권은 미래에셋증권의 퇴직연금 시장 1위를 이끈 표영대 상무를 영입해 시스템을 구축했다.
기존 강자들도 전선을 확대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연금운영본부를 연금혁신본부로 개편하며 시장 대응 역할을 강화했다. 삼성증권도 디지털 서비스 확대 등을 통해 2024년 4위였던 시장 점유율을 2025년 말 2위로 끌어 올렸고, 현대차증권도 현대차의 캡티브 물량에 더해 비계열사 영업을 강화하고 있다.
이들을 비롯한 주요 증권사들은 저렴한 수수료를 앞세워 법인 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일선 영업점에도 퇴직연금 전문 PB가 상주해 퇴직연금 고객과 연결하는 등 개인 고객 확보에도 총력을 다하고 있으며, 퇴직연금에 ETF적립식 자동투자 서비스, 인공지능 활용 등을 도입하는 등 서비스 차별화에도 주력하고 있다.
이는 500조 원에 달할 정도로 큰 퇴직연금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은 전년 대비 15.1% 증가한 496조 8021억 원으로 집계됐다. 2016년(147조 원)과 비교하면 9년 만에 약 350조 원 늘어난 것이다.
통상 퇴직연금 수수료율은 다른 사업에 비해 낮지만, 시장 규모가 워낙 크기에 전체 수수료 규모도 막대해질 수 있다는 평가다. 이에 따라 퇴직연금 수수료 수익은 2020년 처음 1조 원을 돌파한 이후 매년 증가세다.
증권사들의 수익도 커지고 있다. 증권업계 내 퇴직연금 시장점유율 1위인 미래에셋증권의 지난해 퇴직연금 수수료 수익은 869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 증가했다. 지난해 한국투자증권과 삼성증권도 각 400억 원대, NH투자증권은 150억 원대의 퇴직연금 수수료 수익을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시장 규모 확대 속도가 가파른 만큼 향후 수수료 수익도 크게 늘어날 수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은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가 보수적인 시나리오(운용수익률 2.07%)에서 2040년 1172조 원, 2055년에는 1858조 원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운용수익률이 4.5%로 높아진 시나리오에선 2040년 1540조 원, 2055년 2726조 원이 되고, 퇴직연금 제도 개편까지 원활하게 이뤄진 시나리오에선 2040년 2063조 원, 2055년 5074조 원이 될 것으로 본다.
특히 그동안 DB(확정급여)형이 중심이었던 퇴직연금 시장이 DC(확정기여)형·IRP(개인형퇴직연금)로 재편되고 있다는 점은 증권사에 기회라는 평가다. 고용노동부 퇴직연금 비교 공시에 따르면 2024년 말 퇴직연금 시장에서 점유율이 50.2%였던 DB형은 2025년 46.1%로 낮아졌다. 같은 기간 DC형은 26.7%에서 27.6%로, IRP는 23.1%에서 26.3%로 비중이 확대됐다.
이에 따라 증권사를 통한 퇴직연금 투자형 운용도 증가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 중 증권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9년 20%에서 2025년 26.5%로 상승했다. 같은 기간 은행은 51.5%에서 52.4%로 소폭 증가했고, 보험사는 28.5%에서 21.1%로 감소했다. DB와 달리 DC·IRP는 개인이 직접 투자할 수 있기에, 증권사로 '머니 무브'가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 투자자들이 퇴직연금 자산은 사업자를 쉽게 바꾸지 않는 만큼 증권사는 이렇게 유입된 고객들을 장기 고객으로 확보할 수 있다. 특히 퇴직연금 자산 관리를 계기로 고객의 다른 투자 자금까지 유치할 수 있는 만큼 리테일 유입 창구가 될 수도 있다.
장영임 SK증권 연구원은 "예·적금 중심의 은행보다 실적 배당형 자산 비중이 높은 증권사로 퇴직연금 유입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며 "신규 수익원으로서 퇴직연금 관련 수수료 수익과 관련 상품 판매 보수가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themoon@news1.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