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투자 혹한기 길어지자…스타트업 ‘현금 체력’ 따지는 VC들

경제

이데일리,

2026년 4월 14일, 오후 07:27

[이데일리 마켓in 원재연 기자] 벤처캐피털(VC) 업계가 스타트업을 들여다보는 방식이 달라지고 있다. 자금 조달 여건이 예전 같지 않다 보니 시장 크기나 성장 기대감만으로 기업가치를 판단하기보다 현금 보유력과 비용 통제 능력, 후속 투자 없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런웨이)를 더 세밀하게 따지는 분위기다.



14일 벤처투자 업계에 따르면 최근 투자사들이 스타트업의 재무 구조를 성장성보다 생존 가능성 측면에서 더 들여다보는 분위기다. 투자 유치 간격이 길어지고 후속 투자 시점을 예측하기 어려워지면서, 지금 가진 현금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를 따지는 흐름이 강해졌다는 의미다. 최근 VC들은 기업 실사 과정에서 월별 현금 소진 규모와 잔존 현금, 인건비와 마케팅비 등 고정성 비용 비중, 자금 집행 계획을 이전보다 세밀하게 점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과거 초기 창업 업계에서는 1년 남짓 정도의 런웨이만 확보해도 다음 투자 라운드로 넘어갈 수 있다는 기대가 통했다. 제품을 내놓고, 초기 매출이나 이용자 지표를 만들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후속 투자를 받는 데 통상 1년 안팎이면 충분하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스타트업 지분관리 플랫폼 카르타(Carta) 집계에 따르면 지난 2021년 4분기 기준 시드 투자 이후 시리즈A까지 걸린 중앙값은 420일로 약 1.2년 수준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투자 심사와 집행에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후속 투자 일정도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24~30개월 수준의 런웨이를 요구하는 분위기가 커졌다. 카르타에 따르면 지난 2024년 4분기 시리즈A를 유치한 기업의 직전 라운드와의 중앙값 간격은 774일로, 3년 전보다 약 84% 길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변화는 실제 투자 지표에도 드러난다. 더브이씨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비상장 스타트업·중소기업 투자 건수는 238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4% 감소했다. 초기 라운드인 시드~시리즈A 투자 건수는 167건으로 23.7% 줄었다. 반면 전체 투자금은 2조1784억원으로 55.4% 늘었고, AI 분야 투자금은 9838억원으로 전체의 45% 이상을 차지했다. 투자 건수는 줄어든 반면, 일부 후기 라운드와 검증된 기업으로 자금이 집중된 것으로 풀이된다.

거래가 소수 기업에 집중되면서 투자 유치에 성공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의 격차도 더 벌어지고 있다. 후속 투자 시점이 조금만 밀려도 현금흐름이 흔들릴 수 있는 만큼 투자자들도 성장 가능성만으로 베팅하기보다 실제 재무 체력을 먼저 확인하려는 분위기다. 더브이씨에 따르면 투자 유치 이력이 있는 스타트업 폐업 건수는 2023년 120건, 2024년 196건, 2025년 194건이었고 올해도 지난달까지 약 26곳이 문을 닫았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예전에는 일단 성장률을 보여주면 다음 투자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며 “매출이 조금 늦게 나오더라도 회사가 버틸 수 있는지, 비용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자금이 언제 다시 필요한지까지 숫자로 설명하지 못하면 투자자들을 설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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