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선 '기준 없다' 거절, 미국선 '혁신적' 러브콜

경제

이데일리,

2026년 4월 16일, 오후 07:04

세계 무대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은 우리 중소·벤처 기업들이 국내 규제에 막혀 사업을 포기하거나, 전혀 다른 업종으로 발길을 돌리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잣대로 미래를 재단하는 각종 규제들은 기업 생존을 넘어 국가 경쟁력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매년 수많은 규제 애로가 접수되고 정부마다 ‘손톱 밑 가시’를 뽑겠다고 외치지만, 현장의 체감 온도는 여전히 차갑기만 합니다. 이에 이데일리는 K혁신의 심장을 멈추게 하는 낡은 규제의 실태를 정밀 진단하고 고군분투하는 중소·벤처 기업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이데일리 김혜미 기자] “싱가포르에서 2000억원 투자 제안을 받았지만 경영권 관련 요구가 있었고, 세계 최초의 원천기술을 국내에 뿌리내리고픈 마음에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미국에서도 대규모 투자 의향이 있었지만 정권 교체 등의 영향으로 무산됐죠. 해외에선 이렇게 큰 관심을 보이는데 국내에서는 산업 분류조차 어렵고 스타트업인데도 매출이 없으면 투자와 기술평가조차 받기 어렵습니다.”

안현우 소프트피브이 대표(사진=소프트피브이)
안현우 소프트피브이 대표는 최근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이같이 어려움을 토로했다. 소프트피브이는 1㎜ 내외의 3차원 구슬 모양 실리콘을 이용해 전자부품으로 사용할 수 있는 태양전지 ‘소프트셀’을 개발한 업체다. 이 회사가 만든 구슬형 태양전지는 다양한 각도에서 들어오는 빛을 받아들이는 것은 물론 투명 기판 기반의 단위 모듈을 적층하거나 수직 배열할 수 있어 발전량을 높일 수 있다. 2021~2022년 세계 최대 가전·IT전시회 CES에서 2년 연속 혁신상을 받은 소프트피브이는 2022년 미국 에디슨 어워드에서 동상을 받기도 했다.

소프트피브이가 개발한 구(球) 모양 태양전지 소프트셀.(사진=소프트피브이)


안 대표는 “구슬형 태양전지는 일본에서도 시도된 적이 있었지만 안정성이나 경제성이 뒷받침되지 못했다”며 “우리는 레이저 기반 실리콘볼 생산 기술과 다수의 소프트셀을 짧은 시간 내 한꺼번에 설치하는 ‘번들 마운팅’ 기술을 개발해 시간을 단축했다. 이 덕분에 경제성과 양산성을 동시 확보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혁신기술은 상용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소프트셀은 직사광과 산란광, 반사광까지 활용할 수 있는 구조인데 이를 포용할 수 있는 새로운 국내 평가 기준 없이, 평면 기준으로 성능을 평가하는 일반 태양광 모듈과 같은 방식으로만 평가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인된 측정·인증 체계가 충분히 정립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실험실 데이터 만으로는 신뢰를 얻지 못했고, 신생 스타트업으로 의미 있는 매출을 올리지 못하다 보니 정부 과제에도 번번이 탈락했다. 안 대표는 “세계 최초 기술 일수록 기존 인증 체계 밖에 있는 경우가 많은데 특허나 원천기술성, 기술 파급력 등을 함께 평가할 수 있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국내에서는 여전히 태양광 기술이라고 하면 중국보다 뒤처진 기술이라거나 한국이 무슨 최초냐는 선입견이 많다”며 “인공지능(AI) 시대에는 빅데이터가 있어야 하고 데이터를 모으려면 전력이 필요하다. 소프트셀은 실내 조명으로도 작동하고 빛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바꿔주기 때문에 AI 시대에 더 경쟁력 있는 제품이다.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만들려면 이 같은 플랫폼형 딥테크를 평가할 수 있는 시각과 제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공동기획=이데일리·법무법인 세종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