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바오 빈자리에 백사자…"사자·호랑이 합사는 옛말이죠"[인터뷰]

경제

뉴스1,

2026년 4월 17일, 오전 09:49

정동희 에버랜드 동물원장(에버랜드 제공)
동물에게는 더 넓고 자연에 가까운 환경을, 방문객에게는 멸종위기 동물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싶었습니다. 코앞에서 맹수의 숨결을 느끼는 짜릿함은 여전하지만, 풍경은 확 바뀌었다. 한국호랑이가 쏟아지는 폭포에 몸을 맡기고 불곰들은 웅덩이에 몸을 반쯤 담근 채 느긋하게 여유를 즐긴다.

1976년 에버랜드(당시 자연농원) 개장과 함께 탄생한 사파리월드가 50주년을 맞아 전면 새단장했다. 약 1년간의 준비 끝에 다시 문을 연 이곳의 변화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더 와일드'(The Wild), 즉 '더 야생에 가깝게'다.

지난 15일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사파리월드에서 <뉴스1>과 만난 정동희 에버랜드 동물원장은 "조금 거리를 두고 멀리서 보더라도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야생의 모습 자체가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리뉴얼(재단장)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사자에겐 사바나를, 호랑이에겐 폭포와 대나무 숲을"
이번 리뉴얼의 핵심은 동물별 맞춤 서식지 테마다. 물을 좋아하는 벵갈호랑이에게는 거대한 자연석 폭포와 대나무 숲을, 한국호랑이에게는 소나무와 자작나무 숲을 조성했다. 사자에게는 탁 트인 사바나 초원을, 불곰에게는 시베리아 숲을 연상시키는 모래장·풀장·메타숲을 만들었다. 동물마다 제각각의 '집'이 생긴 셈이다.

공간도 대폭 넓어졌다. 정 원장은 "기존 나무와 쉘터(주거지) 위주의 환경에서 벗어나 폭포, 계곡, 바위, 사목 등 자연 요소를 곳곳에 배치했다"며 "동물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면적이 기존 대비 약 2배 이상 넓어졌다"고 설명했다.

겨울과 여름 등 계절 대응도 세심하다. 동물들이 쉬는 쉘터에는 겨울철 열선을 깔았고 여름에는 그늘막과 냉풍을 제공한다. 이번에 불곰 구역에 새롭게 조성한 대형 풀장은 여름철 시원한 놀이터로 활용될 예정이다.

정 원장은 "외부 기온에 따라 설비를 가동해 적정 온도를 유지하고, 비타민제 등 영양 관리에도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고 말했다.

동물들의 반응도 기대 이상이었다. 정 원장은 "생각보다 훨씬 잘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며 "특히 새롭게 조성된 폭포나 풀장, 모래 놀이터를 동물들이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아 많은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이번 리뉴얼을 통해 백사자도 처음으로 관람객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현재 사파리월드에는 사자, 호랑이, 불곰, 반달가슴곰, 하이에나 등 백사자·백호·한국호랑이·벵갈호랑이 등 아종을 포함해 총 8종 50여 마리가 생활 중이다.

친환경 EV버스(에버랜드 제공)

사자·호랑이 한 공간에?…"그건 옛날 얘기"
과거 에버랜드 사파리는 사자와 호랑이를 한 공간에 두는 '합사' 방식으로 운영했다. 공간이 좁았던 탓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자체가 볼거리였다. 하지만 정 원장의 생각은 달라졌다.

그는 "예전에는 많은 종을 보유하고 새끼를 많이 낳는 것이 동물원의 미덕처럼 여겨졌지만, 지금은 각 종의 고유한 행동을 보여주고 개체 하나하나의 복지를 챙기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제 각 맹수는 철저히 분리된 공간에서 생활한다. 관람객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구역마다 넘어오지 못하도록 구획이 나뉘어 있다. 반달곰과 불곰 역시 겉보기에는 같은 공간처럼 보여도 서로 만날 수 없도록 보이지 않는 경계가 설치돼 있다. 사파리 곳곳에는 '패트롤 차량'이 상시 순찰하며 동물들이 싸우거나 이상 행동을 보이면 즉각 대응하고, CCTV로도 전 구역을 24시간 모니터링한다.

번식 관리도 달라졌다. 원치 않는 교배를 막기 위해 수컷과 암컷을 분리하고, 필요한 경우 피임 시술도 진행한다. 정 원장은 "여기서 15년, 20년을 함께 살아가야 하는 친구들이기 때문에 번식은 계획적으로 줄이고 공간에 맞는 적정 개체 수를 유지하는 것이 동물복지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사파리에는 한국호랑이 가족의 사연도 담겨 있다. 태호·건곤이 부부는 원래 '타이거밸리'에서 생활하다 새끼 '오둥이'를 낳은 뒤 이번 리뉴얼을 계기로 사파리로 자리를 옮겼다. 오둥이를 포함한 네 마리 새끼는 현재 타이거밸리에 머물고 있다.

"지루하면 안 돼"…맹수들의 놀이터 설계
동물의 정신 건강을 위한 '행동풍부화'도 이번 리뉴얼의 핵심 키워드다. 야생에서라면 먹이를 찾아 하루 종일 움직여야 할 맹수들이 동물원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자칫 무료해지기 쉬운 환경이다.

정 원장은 "먹이를 숨겨두거나 구조물을 설치해 동물이 스스로 찾고 탐색하게 만든다"며 "호랑이와 곰은 물을 워낙 좋아해서 폭포, 연못, 풀장 같은 수경 요소를 대폭 늘렸고, 곰들이 모래사장을 파헤치는 습성을 고려해 그 공간도 따로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고양이과 동물들이 높은 곳을 선호하는 습성을 감안해 사자 구역에는 기존보다 크고 높은 바위 쉘터도 새로 설치했다.

관람 차량도 달라졌다. 내연기관 트램에서 친환경 EV버스로 교체되면서 소음과 진동이 크게 줄었다. 덕분에 버스가 바로 옆을 지나가도 동물들이 크게 개의치 않는 편안한 모습을 보인다. 정 원장은 "실제로 동물들의 행동이나 반응을 보면 보다 편안해진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고 말했다.

EV버스는 사자, 호랑이, 반달곰 콘셉트로 외관을 꾸며 그 자체로 포토존 명물이 됐다. 에버랜드 명예 주키퍼인 신수성 작가의 동물 그림을 활용한 사파리 아트웍이 대기 동선에 전시되고, 사자·호랑이 실제 크기의 대형 동물 그래픽이 곳곳에 설치돼 입장 전부터 야생 탐험의 분위기를 끌어올린다. 하루 최대 수용 인원은 약 7000~8000명이다.

먹이 주기 체험은 이미 2019년에 폐지됐다. 정 원장은 "현재는 주키퍼가 직접 운영하는 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필요한 경우에만 사료량과 빈도 등 엄격한 기준에 따라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파리월드 포스터(에버랜드 제공)

아시아 최초 AZA 재인증 성공… "교육의 장으로 거듭날 것"
한편,에버랜드 동물원은 동물의 영양·환경·건강·행동·감정 등 복지 전반을 평가하는 미국 동물원수족관협회(AZA) 기준을 토대로 동물복지 수준을 주기적으로 점검한다. 2019년 서울대공원과 함께 아시아 최초로 AZA 정회원 인증을 획득했고, 지난해 갱신 심사에서 재인증에도 성공했다.

정동희 에버랜드 동물원장은 "이번 리뉴얼을 통해 현대 동물원이 갖춰야 할 기능미와 생태적 미학을 조화롭게 이뤘다고 생각한다"며 "함께하는 모든 동물들의 행복을 위해 계속 고민하고 노력하는 동물원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seulbi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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