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같은’ 4년 임기 마치고 떠나는 이창용 총재의 마지막 당부

경제

이데일리,

2026년 4월 20일, 오전 10:59

[이데일리 장영은 기자] 격동의 시기 통화정책을 이끌었던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0일 임기를 마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에 따른 인플레이션 충격 속에 취임해 비상계엄 사태와 미 관세정책의 파고를 겪고 중동 전쟁 와중에 물러난다. 예상치 못한 외부 충격이 연속적으로 밀어닥친, 그야말로 전쟁 같은 시간이었다. 그는 “아직 중동전쟁이 끝나지 않아 외환·금융시장이 충분히 안정되지 못한 채 자리를 넘기게 돼 마음이 무겁다”며 소회를 밝혔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20일 4년 임기를 마치고 총재직에서 물러난다. 이 총재는 이날 "여러분과 보낸 시간은 제게 보람이자 무엇보다 큰 영광이었다"고 말했다.[사진=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 물가 잡고 가계부채비율 하락…구조개혁 보고서도 주요 성과

이 총재는 이날 이임사에서 “지난 4년은 우리가 예상했던 범위 안에서의 시간이 아니라, 그 경계를 끊임없이 넘어야 했던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취임 직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 세계 물가 상승세가 가팔라지면서, 한은은 역사상 처음으로 두 차례의 ‘빅스텝( 0.5%포인트 인상)’을 단행하는 등 기준금리를 3.5%까지 끌어올렸다. △부동산 금융 불안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수도권 집값 상승과 가계부채 급증 △비상계엄 사태와 경제 역성장 △미국 행정부의 관세정책 급변 △중동전쟁에 따른 환율 급등까지, 잇단 ‘복합위기’ 속에서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쫓아야 했던 숨 가쁜 시기였다.

이 총재는 그 과정에서 인플레이션 억제 성과에는 일정 부분 자부심을 내비쳤다. 그는 “높아진 인플레이션을 금리정책을 통해 주요 중앙은행보다 먼저 2%대 목표 수준으로 되돌린 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난 20여 년간 상승하기만 했던 가계부채 비율을 처음으로 하락세로 돌려세운 것과, 한국형 ‘포워드 가이던스’(선제적 안내) 도입을 통해 시장과의 소통 방식을 개선한 점, 스무 편이 넘는 구조개혁 보고서를 통해 ‘싱크탱크’로서의 정책 자문 역할을 강화한 점 등을 주요 성과로 꼽았다.

한은의 국제적 위상 강화 역시 한은 내부에서도 이 총재 임기 중 대표적인 성과로 꼽는 부분이다. 특히 이 총재는 비기축통화국 중앙은행 총재로서 처음으로 BIS 글로벌금융시스템위원회(CGFS) 의장을 맡았는데, 주요 7개국(G7) 국가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자리다. 한은 총재 최초로 미 연준 잭슨홀 경제정책 심포지엄, 유럽중앙은행(ECB) 신트라 포럼, 국제통화기금(IMF) 미셸 캉드쉬 중앙은행 강연에 패널 토론자와 강연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 총재는 아직 끝나지 않은 중동전쟁과 그로 인한 외환·금융시장의 불안 요인이 여전하다는 점에는 우려를 표했다. 다만,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여러분이 보여준 위기 관리 능력은 어느 선진국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다”며 “신임 총재님과 함께 외환·금융시장을 빠르게 안정시킬 것을 믿는다”고 직원들을 독려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 총재는 금통위원들의 3개월 내 금리전망을 도입하고, 이를 6개월 후 금리 수준으로 발전시켜 통화정책방향결정문에 포함시키는 등 시장에 선제적 안내(포워드가이던스)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했다. (사진= 한국은행)
◇ “통화·재정만으론 한계… 구조개혁 필요”

이 총재는 이임사의 상당 부분을 구조적 과제와 정책수단의 한계에 할애했다. 임기 내내 강조했던 부분으로, 변화하는 환경 속 국민 경제 발전과 한은의 앞날을 걱정하는 마음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통화·재정정책만으로 우리 경제의 안정과 성장을 이뤄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경제구조의 변화와 함께 통화·재정정책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는데도, 과거의 성공 경험으로 정책당국에 대한 국민 기대는 여전히 높아 양자 간 괴리가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외환시장 구조 변화도 짚었다. 그는 “과거 외국인 투자자의 자본 유출입에 크게 좌우되던 외환시장에서 이제는 국내 기업, 개인, 국민연금 등 거주자의 영향도 크게 확대됐다”며 “내국인 해외 투자가 내외 금리차뿐 아니라 노동시장, 조세, 연금제도, 글로벌 지정학적 위험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크게 변동하는 시대”라고 설명했다. 이런 현실을 제도 개선 없이 과거처럼 외환시장 개입이나 금리정책으로만 관리하려 하면 “더 큰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저출생·저성장 문제에 대해서도 ‘통화·재정정책과 같은 단기 처방’으로 해결할 수 없다며 노동·교육 등 구조개혁을 통한 이해관계·갈등 조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반도체 호황에 기대고 있는 현재 경기 국면에 대해선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점은 다행이지만, 특정 산업에 대한 과도한 의존과 양극화라는 구조적 문제를 더 심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총재는 취임 당시 내세웠던 ‘통화·금융정책의 울타리를 넘어 국내 최고의 싱크탱크가 되자’는 비전을 다시 꺼내 들었다. 그는 “구조개혁은 현재진행형인 만큼 앞으로도 한은이 교육, 주거, 균형발전, 청년고용, 노인빈곤 등 우리경제가 당면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장기 과제를 계속 연구해 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 총재는 중앙은행의 존재 이유를 ‘신뢰’에서 찾으면서, 그 기반이 실력임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한은 행가(行歌)의 첫 구절인 “국민의 믿음으로”를 언급하며 “중앙은행에 대한 국민의 믿음은 결국 중앙은행의 실력이 결정한다”고 강조했다.

추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