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아닌 기술 판다"…롯데케미칼, '체질 개선' 심장 가보니

경제

뉴스1,

2026년 4월 27일, 오전 11:00

롯데엔지니어링플라스틱 율촌 공장 전경.(롯데케미칼 제공)

"우리가 만든 제품은 시장에서 쉽게 살 수도, 구할 수도 없습니다. 고객이 원하는 기능과 컬러를 구현해 내는 배합 기술이 곧 우리의 본질입니다."
지난 23일 방문한 전남 율촌 산업단지의 롯데엔지니어링플라스틱 공장. 장영규 공장장이 가리킨 생산라인 위로 쌀알 크기 펠릿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사일로에서 뻗은 은빛 도관은 혈관처럼 원료를 실어 나르고, 수백 도의 열을 거친 소재는 순식간에 굳어 형태를 바꿨다. 기계음과 열기가 뒤섞인 공간에서 '플라스틱 공장'이라는 말은 더 이상 단순한 의미로 들리지 않았다.

펠릿은 플라스틱과 고무, 화합물 등을 가공하기 쉽도록 일정한 크기의 작은 알갱이 형태로 만든 중간 원료를 말한다. 알갱이 크기가 일정해 녹는 속도가 균일하기 때문에 최종 제품의 품질을 일정하게 유지해 준다.

포장 로봇이 25㎏ 지대백을 들어 올리자 무인 운반차가 자동 창고로 이동해 적재했다. 사람 대신 기계가 움직이는 공장은 흡사 미래형 생산기지를 연상케 했다. 롯데케미칼의 체질 전환은 이곳에서 현실이 되고 있었다.

롯데엔지니어링플라스틱 율촌 공장에서 스페셜티 소재 압출 생산공정이 작동하고 있다.(롯데케미칼 제공)


국내 최대 '스페셜티 거점'…롯데케미칼 체질 개선의 심장

롯데엔지니어링플라스틱 율촌공장은 롯데케미칼(011170)이 추진하는 '고부가 스페셜티 소재 중심' 사업 구조 전환의 핵심 생산 거점이다. 3000억 원 이상이 투입된 이 공장은 연간 50만 톤 생산이 가능한 국내 최대 규모의 단일 컴파운딩 시설이다. 지난해 10월 가동을 시작해 올해 하반기 최종 준공을 앞두고 있다. 향후 생산량은 최대 70만 톤까지 늘릴 계획이다.

장영규 공장장은 "예산·아산 공장이 자동차용 고강성 소재에 특화됐다면 이곳 율촌은 가전, IT, 모빌리티를 아우르는 고부가 EP(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제품을 100% 생산하게 될 핵심지"라고 설명했다.

공장은 원료 저장 '사일로', 공정을 통제하는 '컨트롤룸', 실제 생산이 이뤄지는 '생산동', 그리고 '자동 창고'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원료가 들어오면 계량·혼합·압출·냉각·절단을 거쳐 곧바로 포장되고 출하까지 이어지는 '원스톱 시스템'이다. 생산·이송·포장·보관 전 과정이 자동화돼 작업자들은 설비를 직접 다루기보다 모니터링에 집중한다.

장 공장장은 "거의 모든 프로세스가 자동화돼 사람의 손을 많이 타지 않는다"며 "품질과 생산성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최첨단 설비"라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롯데엔지니어링플라스틱 율촌 공장에서 포장 로봇이 25㎏ 지대백을 들어 올리고 있다.(롯데케미칼 제공)


"기성복 아닌 맞춤복"…3만 종 컬러 구현하는 '테일러 메이드'

컴파운딩 공정의 핵심은 고객사가 원하는 미세한 물성과 색상을 100% 구현하는 배합 기술이다. 장 공장장은 이를 옷에 비유해 설명했다. 그는 "우리가 만드는 제품은 쉽게 구할 수 있는 기성복(커스텀 메이드)이 아니라 고객의 요구에 딱 맞춘 맞춤복(테일러 메이드)에 가깝다"고 강조했다.

실제 공장에는 3만여 종에 달하는 컬러 샘플이 전시돼 있었다. 장 공장장은 "가전제품의 세련된 컬러부터 불에 타지 않는 난연성, 금속처럼 단단한 강성까지 고객의 요구는 무궁무진하다"며 "단순히 첨가제를 섞는 것을 넘어 얼마나 고르게 분산시키고 그 기능을 장기간 유지하느냐가 우리만의 독보적인 배합 기술력"이라고 강조했다.

율촌공장은 이러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이미 글로벌 일류 기업들에 맞춤형 소재를 공급하고 있다.

롯데엔지니어링플라스틱 율촌 공장에서 생산하는 스페셜티 소재.(롯데케미칼 제공)


'슈퍼 EP'로 영토 확장…"글로벌 넘버원 스페셜티 컴퍼니"

율촌공장의 궁극적 목표는 스페셜티 소재 글로벌 1위다. 현재 기준으로 스페셜티 분야에서 세계 3위 수준이지만 '슈퍼 엔지니어링 플라스틱(Super EP)'을 앞세워 2030년 글로벌 1위에 오르겠다는 포부다.

슈퍼 EP는 금속을 대체할 정도의 강도와 내열성을 갖춘 고성능 소재다. 300~400도 고온에서도 성능을 유지하고, 정밀 부품이나 반도체, 로봇 부품 등에 쓰인다. 생산 난도가 높은 만큼 고도의 설비와 기술이 필요하다.

장 공장장은 "LCP, 피크(PEEK) 등 고성능 소재는 로봇 부품이나 정밀 전자 칩 트레이 등에 사용된다"며 "이 분야는 훨씬 정밀한 제어가 필요해 관련 설비를 추가로 구축하고 있다"고 밝혔다.

율촌공장은 이미 수출 비중이 60%를 넘는다. 생산된 펠릿은 컨테이너에 실려 미주, 유럽, 동남아 등 전 세계로 수출하며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사빅(SABIC) 등 굴지의 기업들과 경쟁하고 있다. 장 공장장은 "일반 플라스틱은 어디서나 만들 수 있지만, 특수 기능 소재는 아직 쉽게 만들 수 없다"며 "그 차이가 우리가 해외에서 경쟁력을 갖는 이유"라고 짚었다.

이어 "우리의 목표는 글로벌 넘버원 스페셜티 소재 컴퍼니가 되는 것"이라며 "단순한 생산량 1위를 넘어 고객이 원하는 가장 까다로운 품질과 가치를 구현해 내는 세계 최고의 소재 파트너로 도약하겠다"는 포부를 다졌다.

자동 창고를 빠져나온 컨테이너가 줄지어 항만으로 향했다. 쌀알 크기의 펠릿 안에 담긴 기능과 물성은 그렇게 국경을 넘어간다. 율촌 공장에서 시작된 변화는 이미 글로벌 시장으로 번지고 있었다.

khan@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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