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조 자금 떠났다...韓 디지털자산 시장 경고등

경제

이데일리,

2026년 5월 01일, 오전 06:02

[김태림 AXIS Law 대표변호사·한국웹3블록체인협회 사무총장] 지난해 한 해 동안 한국 투자자들이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해외 거래소로 이체한 자금이 약 160조원(1100억 달러)에 달한다. 코인게코와 타이거리서치가 지난 1월 발표한 공동 보고서 추산이다. 2023년 45조5000억원과 비교하면 2년 만에 3배 이상 증가했다.

이 수치는 국회에서도 확인된다.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재정경제기획위원회 간사)이 5대 거래소(업비트·빗썸·코빗·코인원·고팍스)의 해외 입출고 내역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1~9월 동안 해외 거래소로 출고된 금액만 124조3000억원이었다. 거래소별로는 업비트(두나무)가 74조3000억원으로 전체의 60%를 넘었고, 빗썸이 44조1000억원으로 뒤를 이었다. 금융정보분석원(FIU)·금융감독원의 실태조사에서도 반기 기준 해외 이전 금액은 101조6000억원으로 확인된다.

같은 기간 해외에서 국내 거래소로 유입된 금액은 123조5000억원으로, 출고액보다 8000억원 적다. 순유출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2024년에도 순유출 규모는 약 2조8000억원이었다. 규모 자체도 문제이지만 추이가 더 문제다. 한국의 가상자산 투자 자금은 해마다 더 빠르게 해외로 이동하고 있다.

왜 떠나는가…규제 비대칭이 만든 구조적 이탈



(사진=챗GPT)
투자자들이 해외 거래소로 이동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한국에서 금지된 것들이 해외에서는 허용되기 때문이다.

우선, 국내에서 엄격히 금지된 가상자산 파생상품 거래가 투자자들을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국내에서는 가상자산 선물·레버리지 등 파생상품 거래가 전면 금지돼 있다. 그러나 해외 거래소에서는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다. 파생상품은 레버리지 투자와 하락 베팅이 가능해 변동성이 큰 가상자산 시장에서 수익 기회를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 투자자 수요가 높다.

바이낸스의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는 약 41만명으로, 국내 3위 거래소 코인원(49만명)과 근접한 수준이다. 사실상 한국 투자자들에게 바이낸스는 이미 ‘국내 거래소’와 다름없는 존재가 됐다.

둘째, 금가분리(금융과 가상자산업 간 분리) 규제다. 글로벌 금융사들이 디지털자산 사업에 속속 진출하는 가운데, 한국 금융사들은 금가분리 규제에 막혀 있다. 미국에서는 증권사 로빈후드가 가상자산 거래 서비스를 시작하고 예측 시장까지 진출했다. 가상자산 거래소 코인베이스는 주식 거래 서비스를 출시했다. 전통 금융과 디지털 자산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이 경계가 아직 공고하다.

셋째, 신규 코인 상장 속도와 투자 상품의 다양성이다. 해외 거래소는 새로운 프로젝트의 토큰을 빠르게 상장하고, 스테이킹·대출·유동성 공급 등 다양한 수익 상품을 제공한다. 국내 거래소는 각종 규제로 인해 새로운 서비스를 선보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같은 자산이라도 해외 거래소가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셈이다.

이 세 가지 요인의 공통점이 있다. 이 모든 현상은 ‘법적 공백’에서 비롯된다. 디지털자산기본법(2단계 입법)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파생상품의 허용 범위도, 금가분리의 완화 기준도, 새로운 투자 상품의 설계 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

떠나는 것은 돈만이 아니다…인프라·생태계·인재 이탈

160조원이라는 숫자를 단순한 ‘자금 유출’로만 해석하는 것은 현상의 절반만을 보는 것이다. 돈이 떠나면 그 돈 위에 세워지는 인프라, 인재, 생태계가 함께 떠난다.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은 거래소와 금융의 경계가 빠르게 사라지는 수렴의 시대에 들어섰다. 로빈후드는 아비트럼과 협업해 토큰화 주식 및 상장지수펀드(ETF) 거래 서비스를 제공하고, 코인베이스는 주식 거래에 진출했다.

페이팔(PayPal)은 자체 스테이블코인 PYUSD를 발행했고, 스트라이프(Stripe)는 100개국에 스테이블코인 기반 금융계좌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것은 단순한 서비스 확장이 아니다. 결제·송금·투자·대출이 하나의 플랫폼 위에서 통합되는 ‘금융 슈퍼앱’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디지털자산 산업은 이 수렴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 거래소는 원화 마켓에서 현물 거래만 제공하고, 금융사는 가상자산 사업에 참여할 수 없으며, 실물자산(RWA) 토큰화·스테이블코인 발행·블록체인 기반 결제 등은 모두 법적 근거가 없는 상태다. 이런 환경에서 160조원의 자금이 해외로 나가는 것은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그 근본 원인은 매력적인 시장 환경을 조성하지 못한 데 있다.

부동산·증권 등 실물자산을 디지털 증권으로 만드는 토큰화, 블록체인 기반 결제·송금 등은 이미 상용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 생태계가 해외에서 먼저 자리 잡으면 한국은 소비자로만 참여하게 될 뿐 공급자·설계자의 지위를 갖기 어렵다.

한국이 밀어낸 기업과 인재가 해외에서 만들어내고 있는 것들

160조원의 유출은 투자자 자금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에서 시작된 웹3(Web3) 프로젝트들이 해외로 거점을 옮기고, 사업을 본격화했다.

대표적인 사례들이 있다. 카카오 계열 블록체인 클레이튼은 라인의 핀시아와 합병해 ‘카이아(Kaia)’ 재단을 설립했는데, 그 본거지를 아부다비에 뒀다. 위메이드의 위믹스는 두바이로 이전했다. 넥슨의 블록체인 사업부 Nexace도 해외로 거점을 옮겼다.

이들은 모두 한국에서 시작된 프로젝트지만, 규제의 명확성과 사업 운영의 용이성을 이유로 UAE·싱가포르 등으로 이동했다. 타이거리서치는 이 현상을 “한국 웹3 기업들의 해외 엑소더스”라고 분석했다.

이들이 터전을 옮기는 이유는 개별 기업의 선택을 넘어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한다. 한국에서는 기업이 가상자산 거래를 위한 법인 계좌를 개설할 수 없다. 2017년 이른바 ‘박상기의 난’ 이후 사실상 금융회사와 법인의 가상자산 거래 참여가 금지됐다. 해당 행정지도가 종료된 뒤에도 이 관행은 계속됐다.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2월 ‘법인의 가상자산시장 참여 로드맵’을 발표하며 단계적 허용을 예고했지만, 7년간 고착된 제약이 풀리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사이에 기업들은 이미 떠났다.

떠난 것은 기업만이 아니다. 개발자, 기획자, 프로토콜 설계자 등 웹3 핵심 인재들이 싱가포르·두바이·홍콩으로 이동하고 있다. 헨리앤파트너스(Henry & Partners)의 ‘2024 개인 자산 이동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아시아에서 고순자산 개인(HNWI)의 해외 이주 비율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로 나타났다. 웹3 산업에 국한된 수치는 아니지만, 한 국가의 비즈니스 환경 변화를 알리는 신호탄으로 읽힌다.

결과적으로 타이거리서치가 지적한 대로, 한국은 ‘산업 생태계’가 아니라 ‘유동성 창구(liquidity outlet)’로 전락할 위험에 놓여 있다. 한국의 거래량은 세계 최상위권이지만, 그 거래량을 만들어내는 프로젝트·기술·인재는 해외에 있다. 투자자의 돈은 한국에서 나가고, 그 돈으로 만들어진 가치는 해외에 쌓인다. 한국은 소비자로만 참여하고, 공급자·설계자의 지위는 잃어가고 있다.

‘유동성 창구’에서 ‘생태계 형성’으로…아직 늦지 않았지만, 빨라야 한다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 위치한 금융위원회. (사진=이데일리DB)
변화의 조짐이 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아발란체·톤·리플·솔라나 등 글로벌 웹3 프로젝트들이 한국에서 단순 마케팅을 넘어 현지 빌더 생태계 구축과 해커톤 개최 등 실질적인 산업 기반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코리아블록체인위크(KBW)는 아시아 최대 블록체인 행사로 성장해, 2024년에는 참석자의 66% 이상이 국내 기반이었다. 한국 시장의 잠재력은 여전히 세계가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잠재력만으로는 생태계가 형성되지 않는다. 생태계가 형성되려면 ‘이 나라에서 사업을 할 수 있다’는 법적 확신이 필요하다. 디지털자산기본법을 통해 파생상품의 허용 범위를 정하고, 금가분리를 단계적으로 완화하며,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토큰화·RWA 등 새로운 금융 상품을 설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외국인 투자자가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한국 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문도 열어야 한다.

아부다비·두바이·싱가포르가 한국 기업을 유치한 것은 세제 혜택이나 지리적 조건 때문만이 아니다. ‘이 나라에서는 이런 사업을 할 수 있다’는 규제의 명확성 때문이다. 반대로, 한국에서 기업이 떠나는 이유도 ‘이 나라에서는 이 사업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조차 모르겠다’는 불확실성 때문이다. 떠난 기업과 인재를 되돌리는 방법도, 아직 남아 있는 기업과 인재를 붙잡는 방법도, 결국 하나다. 명확한 법을 만드는 것이다.

160조원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한국 디지털자산 시장이 보내는 경고다. 금융당국의 고민은 충분히 이해한다. 투자자 보호와 시장 안정은 포기할 수 없는 가치다. 그러나 보호의 방식이 ‘제한’에만 머물면, 보호하려던 투자자도 기업도 인재도 먼저 떠난다. 이제는 규제가 ‘금지’를 넘어 ‘진흥과 질서’의 영역으로 확장돼야 한다. 1077만명의 투자자, 수백개의 웹3 프로젝트, 수천명의 블록체인 개발자 등 이들을 국내 시장에 머물게 하는 것도, 떠난 자금과 인재를 되돌리는 것도, 결국 법이 해야 할 일이다.

티모시 신 INSIGHT3 Inc. 창립 파트너·미국 변호사. (사진=티모시 신 미국 변호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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