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연구원이 최근 은퇴 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은퇴 후 1년간 생활비가 부족하다고 느낀 가구는 32.5%에 달했다. 또 통상 은퇴 가구의 평균 월소득은 은퇴 직전의 절반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추가 소득원이 없는 한 생활비 부족 현상에 시달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사진은 서울 명동에 부착된 카드대출 관련 광고물. (사진=연합뉴스)
전문가들은 늘어나는 기대수명을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기대 수명이 80~90세인 점을 고려하면 20~30년간의 생활비 마련 계획이 뒷받침돼야 하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만 60세 정년제로 퇴직 후 재고용이 쉽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자영업에 뛰어들었다가 빚만 지는 60대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년이 60세인데, 그마저도 50대에 조직 퇴직하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퇴직금으로 자영업에 나서는 사람들이 많다”며 “대부분 결국 실패해 대출에 손을 대는 악순환 고리가 반복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은퇴 후 정기 소득이 끊긴 상태에서 고물가와 고금리가 겹치자 접근성이 높은 카드론이나 보험약관대출을 ‘비상금’처럼 사용하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만의 캥거루 문화도 고령층 대출 압박을 가한 요인으로 거론된다. 노후 자금을 자녀 학자금이나 결혼 자금 등으로 투입해 생활비 부족 현상이 심화됐다는 해석이다. 김대종 교수는 “청년층의 취업난과 주거비 상승으로 고령 부모가 자녀의 결혼 자금이나 생활비를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며 “본인의 노후 자금을 자녀에게 투입하고, 정작 본인은 대출로 연명하는 구조적 문제가 기저에 깔려 있다”고 봤다.
그는 “이러한 현상은 구조적 요인으로 인한 것으로, 당분간 지속되거나 오히려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1차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에 이어 신체가 건강한 편인 2차(1964~1974년생) 은퇴가 본격화하면서 이 같은 우려는 더 커지고 있다.
◇연금제도 재설계·역모기지론 확대 등 필요
전문가들은 대안으로 연금제도 보완과 금융교육이 필요하다고 봤다. 황 교수는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연령을 좀 유연하게 바꿔 50대나 60대 초반에도 생활비 걱정을 덜 수 있게 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그는 또 “100세 시대를 살아내는데 있어 자산운용 등 금융교육이 너무 안돼 있다”며 “교육적인 부분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윤영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최근 은퇴인구의 급격한 증가와 100세 시대가 열리면서 은퇴금융설계 중심이 자산축적이 아닌 자산인출로 바뀌고 있다”며 “은퇴시점과 사망시점 기간차가 길어지고 있는 만큼, 자산을 안정적인 소득으로 어떻게 전환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자산이 부동산으로 쏠려있다는 점에서 역모기지론이 방법으로 제시된다. 부동산을 자녀에게 상속할 생각으로 고령층은 대출로써 생활을 영위하는데, 이를 역모기지론(주택연금)으로 접근해보자는 취지다. 신윤아 우리투자증권 이사는 “집 1채를 자녀들이 공동명의로 지분을 나눠 갖게 되는데 이런 방식보다는 집을 현금으로 풀어 유동성 자산으로 확보해두는 것이 생활과 상속을 모두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라며 “역모기지론을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사회 구조적 변화도 병행돼야 한다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김석기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방자치단체나 각 정부 부처 차원에서 퇴직자 재고용 등 고령층 일자리를 확대해야 한다”며 “소액이라도 꾸준한 근로 소득이 들어와야 안정적인 경제 활동이 가능하다”고 했다.
김대종 교수는 “고령층 자산의 대부분이 부동산에 묶여 있어 유동화가 쉽지 않다보니 대출로 생활비 조달을 하는 것”이라며 “부동산 자산가치의 하락세과 부채 상환 불능이 맞물리면 ‘역자산 효과’가 발생해 금융 시스템 전반의 리스크로 전이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또 “신속채무조정이나 프리워크아웃 등 현재 운영중인 채무조정 프로그램이 중장년층 위주로 설계돼 있다”며 “고령층의 특수성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서지용 상명대 교수도 금융부실 우려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서 교수는 “카드론은 전형적인 불황형 대출로 연체 가능성이 높은데, 고령층에서 빠르게 증가한다는 것은 결국 (대출원금) 상환이 쉽지 않다는 것”이라며 “더 심각한 상황이 오기 전에 정책적으로 금리를 낮춰 갈아타기를 쉽게하는 등의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