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중소기업인과의 대화에서 참석자의 발언에 웃음을 터트리고 있다. 2026.3.20 © 뉴스1 허경 기자
단순한 제도 신설을 넘어 기술탈취 문제 해결을 위한 사법 구조의 전환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연 300건 기술탈취…현장에서 시작된 문제의식
4일 관가에 따르면 이번 제도는 기술보호 정책을 담당해 온 중기부 기술보호과 차상훈 사무관이 중심이 돼 추진됐다. 차 사무관은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에서 10여년간 기술보호 분야를 경험한 뒤 공직에 입직해 관련 정책을 맡아왔다.
그는 "현장에서 중소기업이 기술탈취 피해를 입고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사례를 수없이 봐왔다"며 "소송 부담이 너무 크고 제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실제 중소기업 기술 유출은 연간 300건에 달하고, 건당 평균 피해액은 약 18억 원 수준이다. 누적 피해 규모는 5000억 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손해배상 청구 금액 대비 법원의 인용 비율은 17.5% 수준에 그치며 실질적인 구제가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정보 비대칭과 입증 책임 부담, 증거 확보의 한계가 중소기업의 발목을 잡는 구조였다.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 김용선 지식재산처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26일 서울 영등포구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중소기업 기술탈취 신문고 출범식 및 간담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6.3.26 © 뉴스1 김도우 기자
번번이 무산…"증거 없으면 소송도 못 한다"
기술탈취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 도입 논의는 과거에도 있었지만 번번이 좌초됐다.
피해 기업이 직접 증거를 확보해야 하는 구조에서 소송 자체가 성립되기 어렵다는 점이 가장 큰 장벽이었다. 특히 일부 업계에서는 조사 과정에서 영업비밀 유출 가능성을 우려하며 제도 도입에 신중한 입장을 보여왔다.
이 같은 이해관계 충돌로 제21대 국회에서 발의된 법안이 폐기되는 등 논의는 장기간 교착 상태에 머물렀다.
차 사무관은 "기술분쟁에서 가장 큰 문제는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패소하는 구조였다"면서 "결국 증거 확보를 지원하는 제도가 핵심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5년 논의 끝 입법…'한국형 증거개시' 탄생
전환점은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였다. 기술보호 제도 개편이 국정과제로 채택되면서 증거개시제도 도입 논의가 다시 속도를 냈다.
입법 과정에서는 국회 공청회와 업계 간담회, 설명회 등 20차례 이상 논의가 진행됐고, 관계부처 협의도 10차례 이상 이어졌다. 국회 설득 과정에서도 15차례 이상의 협조 요청이 이뤄지는 등 장기간의 조율이 이어졌다.
그 결과 2026년 1월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한국형 증거개시제도가 도입됐다.
해당 제도는 법원이 지정한 전문가가 조사한 내용을 증거로 인정하는 방식으로, 기술분쟁 소송에서 중소기업의 정보 불균형을 해소하는 핵심 장치로 평가된다.
차 사무관은 "5년 넘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던 제도가 실제로 도입됐을 때의 감정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며 "함께 고생한 동료들과 현장의 기업인들이 떠올랐다"고 돌아봤다.
그는 "제도 개선 과정에서 많은 부침과 반대도 있었지만, 중소기업을 위한 가장 큰 역점과제라는 점이 포기하지 않게 했다"고 덧붙였다.
"24개월→6개월"…분쟁 구조 변화 기대
제도 도입으로 기술탈취 분쟁 처리 구조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기존에는 소송 기간이 평균 24개월 이상 소요됐지만, 제도 도입 이후에는 약 6개월 수준으로 단축될 것으로 전망된다. 상대방 자료 제출 요구가 가능해지면서 손해액 산정의 현실화도 기대된다.
법원의 손해배상 인용률 역시 개선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객관적 증거 확보가 가능해지면서 재판 부담도 줄어들 전망이다.
해외 사례에서도 유사한 효과가 확인된다. 미국은 증거개시제도를 통해 약 80%의 사건이 조정으로 이어지고, 이 중 90% 이상이 합의로 종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기부의 특별성과 포상 정책평가회 수상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가운데가 차상훈 사무관. (중기부 제공)
"이제 시작"…운영 체계 정교화로 현장 안착 관건
다만 제도 도입만으로 문제 해결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장에서 제도가 실제로 활용될 수 있도록 운영 체계를 정교화하고 기업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과제로 꼽힌다.
차 사무관은 "중소기업이 체감할 수 있는 제도로 자리 잡는 것이 중요하다"며 "앞으로도 현장 중심에서 제도를 지속적으로 보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포상으로 상금을 받은 그는 "생각하지 못했던 큰 상을 받아 기쁘다"면서도 "수고한 가족과 선후배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고, 나머지는 부모님께 드릴 계획"이라고 웃었다.
alexei@news1.kr









